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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희 Jan 28. 2017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환자와 함께한 의사의 이야기

남들과 다른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신경과 전문의 올리버 색스는 자신이 만난 환자들의 이야기를 엮어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로 출간했습니다. 이 책은 병에 관한 연구서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 책은 환자를 만나고 느낀 생각을 담은 이야기 책이기도 합니다. 의학과 인문학의 결합인 셈이죠.

올리버 색스 박사는 왜 이런 책을 펴냈을까요? 그는 "의사란 병이 아니라 환자를 대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그는 환자를 '삼염색체백생증에 걸린 21세 여성'으로 표현하는 것은 인간을 인간으로 바라보고 기록한 병력이라고 말할 수 없다 고 이야기합니다. 그는 "인간의 병력"을 기록할 때에는 병을 가진 사람에 대해, 그 사람의 역사에 대해 말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인간이라는 주체 즉 고뇌하고 고통받고 병과 맞서 싸우는 주체를 중심에 놓기 위해서는 병력을 한 단계 더 파고들어 하나의 서사,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의 말을 따를 때, 우리는 비로소 "무엇이?" 뿐만 아니라 "누가?"를 알게 됩니다. 병과 씨름하고 의사와 마주하는 살아있는 인간, 현실적인 환자 개인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죠.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는 24명의 환자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P선생'은 그 24명의 환자들 중 한 명입니다. 심한 안면인식 장애를 앓던 음악 선생이 자기 아내의 얼굴을 모자로 착각하고 벗기려 했다는 내용이 담겨있죠.


대부분의 이야기는 슬픔이 담겨 있지만, 때로는 희극적인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극단적인 장애 속에서도 어떻게든 이겨내고 삶을 살아가려는 노력들은 매우 감동적입니다. 이야기들 중 하나인 '수평으로'를 소개해드리고 싶습니다. 


 수평으로 

저자가 성 던스틴 노인 요양소에서 근무하던 어느 날, 맥그레거 할아버지가 찾아옵니다. 

"어떤 문제로 오셨나요?"
"문제요? 아무런 문제도 없어요. 내가 아는 한...... 그런데 사람들은 내 몸이 한쪽으로 기울었다고들 해요. 마치 피사의 사탑처럼 말입니다."

93세였던 맥그레거 할아버지는 자신의 몸이 기울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올리버 색스 박사는 할아버지의 몸이 기울어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우선 할아버지가 걷는 영상을 촬영해서 보여드렸습니다. 할아버지는 그제야 자신의 몸이 기울었다는 것을 알아챕니다. 

"이럴 수가! 사람들 말이 맞군요. 정말 몸이 한쪽으로 기울었네요. 하지만 전 몰랐어요. 몸이 기울었다는 느낌이 없어요."

맥그레거 할아버지가 자신의 몸이 기울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이유는 몸의 감각과 시각을 연관 짓는 뇌의 일부분이 망가졌기 때문이었죠. 할아버지는 미간을 찌푸리고 입술을 꽉 깨문 채 깊은 상념에 빠져 들었습니다. 그리곤 한참을 고민한 후에 입을 열었습니다.

"저는 소싯적에 목수였어요. 우리 목수들은 표면이 평평한지 아닌지 알아보기 위해 언제나 수준기를 사용 했지요. 지금 내 머릿속의 수준기가 고장 난 것이군요?"

할아버지는 자신의 상태의 절망하기보다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머릿속의 수준기가 눈과 귀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공부했고, 검사를 통해 자신의 귓속 수준기가 고장 났다는 걸 알아냈습니다. 그래서 거울을 보면 자신의 몸이 기울었다는 걸 알 수 있다는 정보를 얻었죠. 하지만 늘 거울을 보며 걸을 수는 없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새로운 도구를 개발해냈습니다.

"아. 알았다. 선생님, 거울 따위는 필요 없어요. 수준기만 있으면 돼요. 머릿속에 수준기는 사용할 수 없어도 머리밖에 있는 거라면 사용할 수 있어요. 눈으로 볼 수 있는 수준기라면 말예요." 

맥그레거 할아비와 올리버 색스 박사는 안경 기술자의 도움을 받아 소형 수준기를 부착한 안경을 만들어 냈습니다. 맥그레거 할아버지는 기쁨에 젖어 말했죠.

"시계 최초의 안경입니다." 

이후 이 안경은 성 던스틴 노인 요양소에서 유행하게 됩니다. 자세 장애는 당시 치료하기 힘든 장애 중 하나였는데 맥그레거 할아버지의 안경이 큰 도움이 된 것이죠.


맥그레거 할아버지는 질병을 마주하고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새로운 성취를 해냈죠. 

우리는 살면서 만을 것을 성취해 내기도 하지만, 때로는 많은 것을 상실하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내가 갖고 있던 것들을 잃게 되었을 때, 지금까지 나라고 생각했던 모습을 잃게 되었을 때, 우리는 용기를 낼 수 있을까요?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통해 갑작스러운 상실이 나를 덮쳤을 때, 절망하지 않는 것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해 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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