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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희 Jan 15. 2017

<플랫랜드> 편견 너머에 대하여

에드윈 A. 애보트, <플랫랜드>

도로시라는 소녀가 있었다. 도로시는 자신이 키우는 금붕어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도로시의 아빠는 금붕어가 물속에서 꼬리를 세차게 흔들면서 앞으로 헤엄친다고 설명했다. 어린 도로시는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네, 아빠. 금붕어는 머리를 흔들면서 뒤로도 헤엄쳐요.


도로시는 그게 사실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물고기가 머리를 흔들며 뒤로 헤엄친다는 걸 믿었던 것이다.

우리 인생에는 뒤로 헤엄치는 물고기가 넘쳐난다. 우리는 잘못된 추측과 논리적 비약을 일삼고 편견도 품는다. 내가 옳고 남이 틀렸다고 할 뿐만 아니라 오지 않을 최악의 상황을 두려워한다. 불가능한 걸 알면서도 완벽을 추구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스스로 제한하기도 한다. 우리 머릿속에선 물고기가 미친 듯이 머리를 흔들며 뒤로 헤엄치지만 우린 눈치채지 못한다.


우리는 보이는 만큼까지만 생각할 수 있고, 생각할 수 있는 만큼까지만 볼 수 있. <플랫랜드>는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는 한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플랫랜드>는 차원에 대한 소설이다. 2차원의 평면 세계(플랫랜드)에 사는 주인공 "스퀘어 씨"가 1차원의 선 세계(라인랜드)와 3차원의 공간 세계(스페이스랜드) 그리고 차원의 개념이 없는 점 세계(포인트랜드)를 방문해 그 세계의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플랫랜드>의 주된 내용이다.

플랫랜드 사람들은 이런 집에서 산다고 한다.

각 세계에서 그 세계의 사람은 자신의 세계가 전부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라인랜드의 왕은 하나의 선분이 온 우주라고 믿는다. 우주는 좌측과 우측으로 나뉘어 있다고 생각한다. 앞과 뒤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그런 라인랜드의 왕을 보고 플랫랜드에서 온 주인공 스퀘어 씨는 이렇게 생각한다.

이 가련하고 무지한 임금은 그 직선을 자신의 왕국이라고 불렀고, 그 안에서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직선이 이 세상의 전부이며, 정말로 모든 우주를 구성한다고 확신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 직선 이외에는 볼 수 없고, 이 직선 이외로 움직일 수 없었기에, 그는 그 직선 외에는 아무런 공간 개념이 없었습니다.  
- <플랫랜드>

스퀘어 씨는 라인랜드의 왕을 가엾게 여겨 앞과 뒤라는 방향을 설명해 주려 한다. 하지만 라인랜드의 왕은 자신이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상상한 적도 없는 그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다.


다른 랜드의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플랫랜드의 사람인 스퀘어 씨는 3차원의 공간을 이해하기 힘들어하고, 스페이스랜드 사람인 스피어 씨는 4차원 5차원이 있으리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심지어, 방향의 개념이 없는 포인트랜드의 사람은 자신 이외의 다른 사람이 있다는 사실 조차 받아들이지 못한다.



우리의 삶도 비슷한 것 같다. 비단 차원뿐만 아니라 우리가 삶에 대해 가지는 태도들 말이다. 우리는 자신이 아는 대로 세상을 제단 해서 바라본다.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가 자신의 영혼을 믿도록 격려하는 책이라면, 에드윈 A. 애보트의 <플랫랜드>는 자신이 믿어온 세상을 의심하도록 고무하는 책이다. 자신을 믿을 것인가. 아니면 의심을 거쳐 새로운 나로 거듭날 것인가. 이 둘은 반대되는 결정 같지만, 하나의 문제에서 출발한다.


"나는 누구인가, " "나를 만든 건 무엇인가, " 나아가 "무엇이 나를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들었는가."

 

헬렌 켈러는 눈이 머는 것보다 눈뜬장님이 되는 게더 나쁘다고 말했다. 눈뜬장님이 되지 않으려면, 우선 나 자신부터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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