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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halo Oct 13. 2021

스물일곱 번째 날.

끝없이 이글거리던 땅, 스페인

A said : 

 

7.19 Madrid PM 23 : 54


오늘부터 자전거를 타지 않는다. 


 수일 전부터 T형과 계속 이야기를 해 오던 일이 금세 다가왔다. 달리며 겪는 사건, 사고들의 피해 정도가 계속 쌓이면서, 우리가 예정했던 여행 일정이 비틀어지기 시작하고 목적지까지의 거리에 비해 남은 시간이 부족해진다. 리스본에서 나가는 비행기 날짜는 휴가철인 시기 때문에 바꿀 수 있을 리 만무하고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결정을 내린다. T형은 계속 자전거로 리스본으로 향하고 나머지 한 명은 안장에서 내려오기로 한다. 멀고 험한 길을 혼자 보내는 것이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지만, 목표로 한 곳에 이르지 못함이 못내 찝찝하지만, 더 이상 스스로의 힘이 리스본으로 가는 길에 미치질 못한다. 몸으로든, 마음으로든 안장 위에서 더 이상 있을 힘이 부족하다. 마땅한 각오나 준비 없이 자전거 위에서 탱자탱자 놀려던 생각으로는 닿기 힘든 길인 듯하다. T형도 며칠 전에 와서야 마음을 정한 터라 또 줏대 없이 생각이 흔들리면서 고민이 이어지지만, 머릿속에 한 번 떠오른 편한 길은 어느새 마음 한 켠에 콱 박혀 불가항력이 되어 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보니 Antonio는 어느새 일터에 나가고 보이지 않는다. Victoria와 함께 아침을 간단히 먹고 잠깐 동네를 방황한다. 그리곤 마치 내일 금방 볼 사람처럼 아무렇지 않게 T형과 갈라지는 길목에서 인사를 한다. 그렇게 T형을 보내고 홀로 기차역으로 향한다. 기차역으로 가는 길에 Francois 아저씨에게 받은 자전거 뒤에 매달린 가방 하나를 떼어낸다.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가방을 작게 구겨 쓰레기통에 쑤셔 넣는다. 온 힘을 다해 구기면서 가방에 붙어 있는 플라스틱들이 부러지는 소리가 날카롭게 귓전을 때린다. 쓰레기통 한구석에 박혀 버린 때가 잔뜩 낀 가방을 바로 옆에서 쭈그려 앉아 멍하니 바라본다. 눈에서는 영문 모를 눈물이 고이고 다리에는 힘이 빠진다. 파리가 한껏 앵앵대는 쓰레기통 옆에 한동안 멍하니 주저앉아 있는다.

 자전거를 실어야 하는 덕에 빠른 고속열차보다 2-3배는 족히 시간이 더 걸릴 완행열차에 몸과 자전거를 싣는다. 차장인 듯 보이는 할아버지가 낑낑대며 자전거를 들고 오르는 검은 눈 이방인을 보더니 영 달갑지 않은 표정으로 따라오라고 손짓한다. 할아버지는 기차의 맨 앞칸으로 데리고 와서는 알 수 없는 스페인어를 내뱉으며 표에 적힌 자리가 아닌 다른 좌석 한편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직접 자전거를 가져다 운전실 문 옆 창가에 놓는다. 여기다 묶으라는 소린가보다 싶어 얼른 쫓아가 자물쇠를 채우고 표 검사를 받는다. 하필이면 종점까지 가는 귀찮은 손님을 보고 한 번 더 혀를 차더니 쌩 하고 사라진다. 자리에 앉아 묶여 있는 자전거를 한참 쳐다본다. 여태껏 열심히 주인을 실어 나르다 이제는 바로 그 주인이 끙끙대며 나르는 가장 큰 짐이 되어버린 상황이 되다 보니, 자전거가 한껏 민망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진다. 사람이나 물건이나 한 치 앞 보기 힘들다. 


 철길 위에 있는 역이란 역은 다 들르고 가는 듯한 기차가 Cuenca라고 적혀있는 큰 도시에 도착한다. 내내 알아들을 수 없는 안내 방송이 유난히 길던 터라 조금 더 오래 있다 가나보다 싶어 다시 눈을 감는다. 그렇게 한참 시간이 지났을 무렵, 여전히 출발하지 않는 모양새가 영 이상하다. 시간을 보아하니 정차한 지 1시간이 다 되어간다. 괜히 불안해져 기차 안의 승무원을 찾아 손짓 발짓으로 이야기를 나눠보니 기차의 목적지가 바뀌거나 한 것은 아닌 듯하다. 자리에 앉아 기다리라고 하는 듯한 손짓에 자리로 돌아가 기다리길 또 1시간이 지난다. 계속 앉아있는 것도 답답하고 출발하지 않는 기차의 사정이 너무도 궁금해 이번엔 닫힐 줄 모르는 차문 밖으로 나간다. 마침 차문 밖에 서 있는 아까 그 차장 할아버지에게 두 팔을 벌리며 무슨 일이냐는 눈빛을 보낸다.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기차를 고치는 시늉을 하고는 역 안에 있는 식당을 가리키며 먹는 시늉을 한다.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마침 허기도 지고 마땅히 할 일이 없어 식당에 들어간다. 이미 식당에는 같은 기차를 탔던 사람들이 흥청망청 먹고 마시고 있다. 주문한 음식을 먹으며 시간을 때우고 있는 와중에 맥주 한 병을 손에 들고 계산대 앞에 서 있는 차장 할아버지와 눈이 마주친다. 익숙해진 얼굴을 마주 보며 한쪽 눈을 찡긋하는 할아버지의 표정에 실소가 새어 나온다.


 무려 4시간이나 그곳에서 보낸 끝에야 기차는 출발하고, 당연히 그만큼 도착시간은 늦어진다. 해가 질 때쯤이었던 예정시간보다 4시간이나 늦게 도착했을 때 마드리드의 하늘은 한밤중이다. 미리 예약한 호텔의 체크인 시간이 훨씬 지난 덕에 마음이 급해져 자전거를 타고 처음 온 도시의 도심을 멋모르고 힘껏 달린다. 큰 호텔이 아닌 주택가의 작은 호텔이었던 터라 찾기도 힘든 데다 겨우 입구를 찾아가니 거대한 철문이 떡하니 움직이지를 않는다. 조그맣게 나 있는 창문 속의 로비에는 사람은 보이지 않고 불빛만 환하다. 문을 두들기고 실컷 벨을 눌렀지만 숨소리 하나 없는 반응에 머릿속이 하얘진다. 이 시간에 아는 이 하나 없는 큰 대도시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딱히 방법도 떠오르지 않는다. 딱 30분만 기다려보기로 마음먹고 애꿎은 철문을 계속 발길질해댄다. 그렇게 얼마간 몸부림을 쳤을 무렵 졸린 눈을 비비며 주인장이 문을 열어준다. 갑자기 열린 문에서 튀어나온 주인을 만나니 한껏 안아주고 싶은 마음뿐이다. 키를 받아 오래간만에 홀로 침대 두 개 달린 넓은 방을 차지한다. 자전거를 세워두고 침대로 몸을 쓰러뜨린다. 침대와 침대 사이의 공간이 넓어 보이는 것이 영 보기 싫다. 공연히 두 침대를 조금씩 밀어 기어코 넓은 틈을 없앤다. 침대 사이를 메우고 한껏 넓어진 침대 위에 대자로 뻗어본다. 크게 기분은 달라지지 않는다. 얼른 자고 싶다.


P.S.1. 호텔에 도착해 잠을 청하지만 쉽사리 잠에 들지 못했다. 알코올의 힘에 기대볼 요량으로 밖으로 나가 슈퍼를 찾았다. 골목의 구멍가게를 발견하고 맥주를 집어 들자 이 시간에는 술집 말고는 주류를 판매할 수 없단다. 맥이 빠져 다시 주점을 찾아 나선다. 여기 술집이오라고 외치는 불빛의 주점을 찾아냈지만 그 입구에 경찰차도 있고 왠지 모르게 시끌벅적했다. 가까이 가 보니 취객이 난동을 부렸는지 경찰이 와 있다. 주점에는 계속 사람들이 드나들었지만 그 광경을 보고는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다. 경찰에 한껏 기대 비틀거리는 취객을 보니 대상을 모를 넌덜머리가 났다. 처음 보는 장면도 아니지만, 왜 그랬는지 지금도 모르겠지만 그저 풀이 죽어 호텔로 돌아가 침대 위로 다시 쓰러졌다. 

T said :

 

DAY 25 


업힐? 그럴 수 있어. 

오프로드? 그럴 수 있어. 

두 개가 합쳐지면?


하하 

인간은 나약하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다시 한번 구글 맵에 당해버렸다. 

업힐+오프로드 길이 끝나고, 그냥 포장된 업힐을 오르는데 마-냥 행복하다. 

-

라이딩 중엔 괜찮았다. 

호텔에 와서, 넓은 방, 욕조 딸린 화장실 

그리고 트윈베드를 보니 많이 외롭고 쓸쓸하다.


그 간 여행에서 제일 즐거웠던 시간은 

라이딩을 마치고 숙소에 도착해서 샤워를 하고, 

찬희랑 먹을거리 볼거리 찾아서 마실을 나갔던 시간들이었던 것 같다.


먹을 걸 잔뜩 사서 돌아왔는데 방은 텅 비어있다. 

내일부터는 웬만하면 싱글베드를 찾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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