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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halo Oct 14. 2021

귀향.

A said : 

 

7. 29 돌아가는 EK 192 편 안에서


 마지막까지 이 날들은 나의 발목을 쉽사리 놓지 않는다. 


 잠도 오지 않고 여유 있게 출발하려 숙소를 나섰다. T형이 다른 곳으로 가 버린 터라 자전거 두 대와 함께 고국 길에 올라야 하는 만큼 걱정도 되고 확실히 하기 위해 출발 3시간 전쯤 공항에 도착한다. 휴가철인 터라 공항은 북적북적하다. 자전거 두 대를 포장한 큰 박스를 수레에 싣고 밀려드는 인파 사이를 용감하게 뚫고 지나간다. 마침내 도달한 체크인 카운터에서 쳐다보는 시선이 영 따갑다. 박스 무게를 재 보는데 이게 웬걸 저울의 숫자가 무게 한도를 초과한다. T형과 머리를 맞대고 규정을 다 확인하고 자전거 무게도 다 재 봤던 터라 이럴 리 없는데..라고 버벅대 보지만 틀림없는 숫자에 당황한다. 자전거를 포장하는 박스의 무게가 생각보다 무거웠나 보다. 무게가 초과되는 만큼 추가 비용이 든다는 말에 머리가 복잡해진다. 집에 간다고 전날까지 실컷 돈을 써 버린 터라 주머니에는 비행기를 타기 전에 먹으려던 점심값 정도뿐이다. 



 우선 T형의 자전거 박스를 끌러서 부품 몇 개를 집어 메고 있던 가방에 구겨 넣는다. 그리고 희망에 가득 찬 눈으로 저울에 박스를 올려보지만 여전히 초과다. 이 짓을 몇 번 반복해 보지만 여전히 저울의 숫자는 잘 줄어들지를 않는다. 저울을 독점한 것 마냥 계속 쓰다 보니 뒤에서 알아듣지 못할 원성이 들려온다. 급한 마음에 바퀴 하나와 안장을 빼 보고 올리니 얼추 무게가 한도 내에 들어온다. 됐다 싶어 얼른 박스를 내린다. ‘한국에 가서 바퀴 하나 사 줄게’ 마음속으로 사과를 하고 바퀴 하나를 쓰레기 통 옆에 세워둔다. 안장은 손에 들고 탈 요량으로 대충 테이프로 두른다. 다시 자전거 박스를 싸려는데 붙어있던 테이프가 잘 붙지를 않는다. 급한 마음에 풀어헤쳐 놨던 터라 엉망진창이다. 출발 시간은 다가오고 마음은 급해진다


 테이프를 찾아야겠다 싶어 온 짐을 바닥에 늘어놓은 채 주변을 돌아다니며 여기저기 물어보고 쑤셔보다가 겨우 짐을 포장해주는 상점을 찾아 꼼꼼하게 포장한다. 다시 수레에 실어 체크인 카운터로 돌아가 아까 그렇게 꾸짖던 아버지 뻘 직원에게 보란 듯 무게를 재 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는 한숨을 쉬며 어이없단 표정으로 한 마디 한다. ‘it’s closed’ 출발 시간만 생각하고 미리 닫는 체크인 카운터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 비행기 표는 처음에 받았기 때문에 몸뚱이 하나 싣는데 문제는 없었지만 자전거는 이대로 날아가는가 좌절한다.


 망연자실한 표정을 보고는 어차피 이 짐은 여기로 못 넣는다고 대형 수화물을 담당하는 곳은 따로 있다고 얼른 따라오란다. 도착한 그곳도 줄이 꽤나 길었다. 이 줄을 헤쳐주겠지 잔뜩 기대하고 그를 바라봤지만 ‘저기 뒤에 가서 서. 그리고 비행기 시간 얼마 안 남았으니 서둘러야 될 거야. 난 비행기로 가 봐야 해’라고 말하고는 자신을 데리러 온 카트를 타고 사라진다. 담당 직원에게 표를 보여주며 사정해도 역시나 단호한 표정으로 줄 뒤쪽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킨다. 다행히 줄에 서 있는 사람들의 호의로 비교적 빠르게 짐을 부치고 출국 수속을 받으러 창구로 뛰어간다. 하지만 그곳에는 더한 줄이 한 마리 뱀 같이 구불구불 둘러져 있다. 좌절할 틈도 없이 얼른 뛰어들어 줄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사정을 설명하며 앞으로 헤쳐나가 본다. 너무 고맙게도 대부분 웃는 얼굴, 걱정해 주는 얼굴로 양보를 해 주었지만 워낙 줄이 길다 보니 적잖이 시간이 걸린다. 겨우 수속을 마치고 전광판에서 탈 비행기를 찾는데 하필 가야 할 창구가 멀기도 하다. 터미널까지 가는데 걸릴 예상 시간 8~10분이라는 안내를 보고 넌지시 욕설을 내뱉는다. 너덜너덜해진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육수를 흩날리며 뛰어가다 보니 이미 시계가 가리키는 숫자는 출발 시간에 한참 가까워져 있다. 한참을 달리다 그토록 보고 싶던 터미널의 숫자가 보이는데 그 밑으로 아직 줄이 보인다. 줄에 도착해 보니 시간은 이미 출발 시간에 임박해 있다. 안내판을 보니 비행기 편 이름 아래로 delayed라는 글자가 보인다. 30분이라는 시간이 그렇게 소중할 수가 없다. 표를 확인하는데 창구에 아까 그 직원 아저씨가 서 있다. 눈이 마주치자 씩 웃으며 표와 여권을 받아 들더니 머리를 툭 한 대 친다. 대꾸할 힘도 없어 실없이 웃기만 한다. 

 자리를 찾아 앉으려는데 옆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이 놀란 눈으로 내 손을 쳐다본다. 그의 시선 끝에는 마치 도끼처럼 한 손에 지워진 자전거 안장이 떡 하니 지워져 있다. 밀려드는 민망함에 얼른 바닥에 내려놓고 어깨를 으쓱한다. 엉덩이가 자리에 닿자마자 몸이 축 늘어진다. 수많은 장면들이 룰렛이 돌아가듯 머릿속을 휘감는다. 어째 마지막까지 일관성 있는 이 날들에 적잖이 감탄한다.

 

 그렇게 의자에 몸을 흘려놓다 이륙을 알리는 방송에 몸을 일으켜 이젠 끝일 줄 알았던 기록을 이어간다. 마지막 희극을 한참 마무리해 가는 중에 승무원이 마실 음료를 묻는다. 잘 마시지도 않는 위스키를 무려 더블로 주문한다. 곧 나올 위스키를 마시면 눈이 감기고, 그리고 눈을 다시 떴을 때 집이었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이제 집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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