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믿으면서도
사랑이 막 끝났을 때의 나는 조금 자만했다.
나는 너 없이도 잘 살 수 있다고, 정말 그렇게 믿었다.
애초에 내 삶에 네가 없었는데, 그 잠깐 몇 개월, 몇 년 함께 있었다고 해서 네가 내 삶 깊숙한 곳까지 들어온 것처럼 착각하지 마,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했다.
몇 달 동안 이 인연을 붙잡아야 할지, 또는 놓아야 할지 수십 번 고민하다가 드디어 결론지었다는 생각에 왠지 모를 해방감마저 느껴 내 가슴을 툭툭 두드려주기도 했다.
그러나 몇 개월이 지난 후, 나는 그 자만이 나를 망쳤다는 걸 알게 됐다.
'붙잡으면 붙잡혀 줄래?'라고 물어봤던 너를 매몰차게 놓는 게 아니었는데.
나는 내가 이렇게까지 사랑에 마음을 꼭 닫아버릴 줄은, 그땐 미처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사랑이 두려워졌다.
사랑으로 얻는 행복보다 사랑이 스쳐 지나갈 때 마음에 남는 생채기가 더 신경 쓰였다.
함께 반짝이는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상상보다는 나중에 어떤 파편이 나를 괴롭힐까, 그것부터 생각했다.
우리는 과연 오래 행복할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물으면 답은 늘 분명하지 않았다.
그래서 1년, 2년...
다가오는 사람에게 울타리를 세우고 그 안으로 침범하지 못하게 했다.
그게 나를 지키는 일이라고 굳게 믿으면서.
잠깐씩 찾아오는 행복에 '이번에는 다를까'하며 잠시 기대했으나 그 기대도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나는 사랑을 너무 쉽게 믿는 게 단점이다.
역시 나는 사랑과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야.
그래도 이상하게, 사랑과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생각은 여전한데
언젠가 또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 게 조금은 낯설고 두려우면서도 궁금하다.
이 모든 시간을 지나오면서 남은 건 거창한 교훈이 아니다.
나는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마음 한쪽은 여전히 비워둔 상태라는 것.
바람이 스칠 때마다 유독 그 자리가 크게 느껴진다는 것.
오늘은 그냥 그 사실만 적어둘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