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씻겨 내려가리라

무수한 통과점 중 하나일 뿐

by 챤현 ChanHyeon

꽃샘추위라는 말은 누가 지었을까? 누가 지었는지는 몰라도 참 잘 지었다. 겨울이 봄을 질투하듯 따뜻한 날씨를 잠시나마 물러가게 하는 게, 마치 어린아이가 두 뺨 가득 부풀리고 있는 씩씩 부는 모양새다. 이런 장난에 다시 두꺼운 외투를 꺼내 들며 진정한 봄은 언제 오냐며 투덜거리지만, 나는 사실 겨울이 좋다. 그래서 이 꽃샘추위도 그저 지나가는 통과점임을 안다.


오늘은 꽃샘비가 내린다. 기나긴 겨울은 어느새 기억 저 편에 사라졌다. 벚꽃이 흩날리며 봄이 왔음을 알렸는데 이를 시샘하듯 주말에는 꽤 많은 양의 비가 올 거라며 일기예보는 연신 떠들었다. 올해는 벚꽃 한 번 제대로 구경하지 못한 채 이렇게 지나가나 보다. 벚꽃나무 아래에는 이미 벚꽃 잎이 없다. 빗물에 모두 흘러 내려가 저 아래 모여있다. 봄도 이렇게 지나가겠지. 누군가의 기억 속에 잠깐 머물렀다 가버리는 게 조금 슬프지만 봄은 그저 돌고 도는 통과점.


창문을 열고 빗소리를 조용히 감상해 본다. 땅에 떨어지고, 난간에 부딪치며 빗방울 하나하나 저마다 색다른 소리를 낸다. 듣고 있노라면 단 1초도 같은 소리는 없다. 아무도 없는 거리, 조용한 북적임. 나는 이 빗소리를 사랑한다. 비를 보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나가고 싶어진다. 떨어지는 비를 고스란히 맞는 것만큼 자유로운 것도 없다. 노란 우산 하나 꺼내 들고 무작정 밖으로 나간다. 목적지도 없이. 세차게 쏟아지는 빗줄기 안에 몸을 맡기면 잠시나마 지금에서 벗어날 수 있다. 봄을 알리는 벚꽃도, 어제의 고민도 아주 잠시나마 모습을 감춘다.

아스팔트 비탈길 아래로 흘러가는 빗물을 보며 잠시 생각한다. 그래, 모든 건 저렇게 씻겨 내려간다. 지금의 복잡한 심정, 잠 못 들게 하는 고민, 나를 억누르는 감정. 그 모든 게 결국은 지나가버릴 거다. 무수한 통과점이니까. 오늘 내리는 비가 다 가져가주길. 우산 밖으로 손바닥을 펼쳐 맞는 빗방울만큼 나는 자유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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