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을 발판 삼아
어릴 때 내가 살던 작은 맨션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그 맨션에는 어른 키만 한 담장이 있었다. 도둑이 드나들까 두려웠던 사람들은 담장 위에 형형색색의 깨진 유리조각을 심어뒀다. 끝이 뭉툭하여 마음만 먹으면 담장을 넘어 누구라도 침입할 수 있었겠지만, 적어도 함부로 들어오지 말라는 위협은 됐을 것 같다. 다른 친구들은 담장을 곧잘 넘었지만 나는 용기가 없었다. 나보다 훨씬 큰 담장을 넘는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다. 위험하니까. 어른들이 하지 말라고 했으니까. 넘을 필요가 없었으니까. 말 잘 안 듣는 꼬맹이도 이럴 때는 말을 잘 들었다. 깨진 유리조각은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기도 했지만 안에서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막기도 했다. 그 담장에 기대 하늘을 바라보면 그야말로 좁은 하늘 밖에 보이지 않았다. 담장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며칠 전, 나는 어릴 때 살던 그 맨션을 우연히 지나쳤다.
담장은 깨끗하게 손질하여 어릴 적 나를 위협하던 깨진 유리조각은 이제 없다. 내 키와 비슷해진 담장은 이제 어린 시절의 위협감은 전혀 없었다. 넘어보라면 충분히 넘겠지만 난 지금도 여전히 그 담장을 넘지 못한다. 두려운 건 어릴 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나는 겁이 많다. 뭔가 하려고 하면 지레 겁부터 먹고 몸을 사린다. 그게 나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한다는 걸 알면서도.
담장을 넘어야 그다음이 있다. 나를 가두고 있는 그 담장에서 벗어나려면 다칠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담장을 넘지 못하지만 이제 그 밖에 무엇이 있는지 볼 수 있다. 키가 자란 게 이럴 때는 도움이 된다. 조금이라도 변한 게 있으면 세상은 달라 보인다. 어릴 때의 나는 좁은 하늘 밖에 보지 못했지만 이제는 안다. 하늘은 이토록 넓다는 것을. 담장 밖의 세상은 더 거칠고 아름답다는 것을. 그렇다면 조금은 용기를 내야 하지 않을까? 다치더라도, 담장 밖은 훨씬 가슴을 벅차게 한다. 용기가 없었던 어린 날의 나를 넘어서서, 이제는 담장을 뛰어넘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