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갈 수 없는 과거란 슬픈 것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은?
마치 비밀번호 힌트 같은 이 질문은, 의외로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든다.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이 과연 뭘까? 한참을 생각해 봐도 썩 마음에 드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 있잖아. 첫 해외여행의 추억이라던가, 가족끼리 갔던 여행에 대한 추억? 하지만 나에게는 그런 것들이 없다. 가족과 함께 갔던 여행 중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거라곤 이제는 사진으로만 '아, 내가 여기에 갔었구나'를 알 수 있는 부곡하와이 정도? 부곡하와이라고 하니까 왠지 내가 너무 늙은 것 같다.
오늘 유튜브를 돌려 보다가 윈도우 95가 설치되어 있는 컴퓨터를 켜는 영상을 봤다. 그 특유의 청아하고 맑은 시작음이며, 윈도우 95의 낡았지만 어딘가 세련되어 보이는 이미지까지. 어릴 때는 컴퓨터 본체 위에 모니터를 올려두는 게 국룰이었는데, 그것마저 똑같은 모습에 나는 한참이나 입을 다물지 못했다. 윈도우 11이 나온 시대에, 아직도 저 컴퓨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구나. 이건 마치 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던 과거를 마주한 기분이었다.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그 사실을 깨달으면 슬퍼진다. 내가 나이 들었다는 건 사실 그렇게 슬픈 일은 아니다. 그보다 더 슬픈 일은 이제 누릴 수 없는 것들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초등학생일 때는 소풍 간다고 하면 엄마가 김밥을 싸주셨다. 잠에서 깨는 건 늘 전쟁이지만 소풍날이면 평화협정이라도 맺은 듯 잠이 아주 시원하게 깼다. 엄마의 손에서 풍기는 고소한 참기름 향이 좋았고, 김밥 꽁다리 하나 입에 넣고 오물거리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재미를 느낄 수 없다. 나는 이제 나이 들어 소풍 갈 일이 없으며, 엄마는 힘들다고 김밥을 싸지 않는다.
또 하나, 내가 슬퍼지는 추억은 바로 엄마의 무릎에 누워 귀를 팠던 일이다. 한두 달에 한 번씩, 엄마는 귀를 파자며 나를 무릎에 눕혔다. 귀를 간지럽히는 그 느낌이 이상해 키득키득 웃으며 엄마 품으로 파고들었는데 엄마 냄새가 참 좋았다. 포근하면서도 푹신한 느낌. 그러나 이제 그 냄새도 느낄 수 없다. 엄마는 이제 나이가 들어 눈이 침침하다며 귀 파기 졸업을 선언하셨다. 중학생 시절이었는데, 이미 그때도 그러셨으니 지금은 아마 귀를 맡겼다가는 귀에서 귀지가 아니라 피가 날지도 모른다. 가끔 귀가 답답할 때면 한 번씩 귀를 파곤 하는데 그 시원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너무 답답하다.
사람이 늙으면 추억으로 산다고 하는데,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아직 30대인 나도 어린 시절 추억을 생각하면 어느새 내가 나이 들었다는 것도 알게 되고, 이제는 돌아가지 못하는 과거가 그리워 가끔은 눈물이 찔끔 나기도 한다. 어릴 때는 '그때가 좋을 때야'라고 말하는 어른들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알 것 같다. 왜 학창 시절이 좋고, 공부할 때가 가장 걱정 없을 때인지. 걱정이 많은 나는 이렇게 하루하루를 살다 보면 문득 아무 걱정 없었던 옛날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유튜브를 보며 엄마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엄마는 한 마디 하시고는 방으로 들어가셨다.
"울 일도 참~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