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어제 점심에 우리 뭐 먹었지?
어려운 질문도 아닌데 한참 생각해야 한다. 뭐였더라...? 라면? 아닌데. 김밥? 그것도 아니고. 집밥이었던가? 무슨 반찬이었지? 결국 반찬 세 가지 중 하나는 기억해내지 못했다. 아니, 이게 뭐라고. 내 기억력은 붕어만도 못한 걸까? 분명 하루도 지나지 않은 기억인데 그것조차 제대로 떠올리지 못하다니. 내 건망증은 유구하다. 요즘은 중요한 것조차 잊어버릴까 봐 아예 종이에 적어 잘 보이는 곳에 붙여둔다. 스마트한 시대라는데 스마트폰에 적어두면 스마트폰에 적어뒀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릴 것 같아 아예 예약 메시지까지 해둔다.
희한하게도, 기억해야 할 것은 쉽게 잊힌다. 기억에서 아주 사르르.
이를테면, 시험에 나온다고 이건 반드시 외우라고 한 선생님 말씀. 친구들의 생일. 내 계좌번호. 일주일 후 보기로 한 친구와의 약속. 나 스스로에게 했던 다짐. 그런 것들.
반대로 쉽게 잊히지 않는 기억도 있다. 초등학교 시절 소풍 가는 날 아침, 내 코를 간지럽혔던 고소한 참기름 향. 첫 염색과 해외여행. 뜨거웠지만 빨리 식어버린 사랑. 그건 좀 잊어도 될 것 같은데, 참 잊히지 않는다.
행복, 슬픔, 분노, 기쁨... 감정의 물결로 남은 기억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게 아닐까? 어쩌면 나를 완성하는 퍼즐 조각들일지도 모르겠다. 나라는 사람은 이런 기억들로 만들어졌다고. 지금까지 살아온 기억이 있기에 나는 이런 감정, 표정, 말투를 가지고 있는 거라고. 기억하고 싶은 건 빨리 사라지는데 반대로 아픔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그만 좀 잊어버리고 싶은데 지독스럽게 내 머리를 아프게 한다. 하지만 그것도 어쩌면 잊어서는 안 될 기억일지 모른다. 이 아픔을 잘 기억해 뒀다가, 다시는 같은 아픔을 겪지 말라는 의미로. 그렇게 생각하면 잔뜩 찡그린 얼굴로 나를 바라보던 기억이 미간에 주름을 살짝은 풀게 된다.
아, 맞다. 그때 그랬지.
오늘도 난 어제 먹은 점심 메뉴는 바로 떠올리지 못했다. 그러나 몇 년 전 친구와 함께 갔던 해외여행은 기억했다. 아주 상세하게. 새벽에 배고파서 밖에 나가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던 아주 사소한 기억까지도. 결국 잊힌 조각도, 남아 있는 조각도 모두 나를 완성하는 조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