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맞고 혼자 걸어온 날, 나는 혼자됨을 느꼈다
마지막 수업시간, 아침부터 비가 올 것처럼 하늘이 흐리더니 기어코 한 방울, 비가 떨어진다. 곧 세차게 퍼붓기 시작하는 빗방울. 쏴아- 하고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니 금방 그치진 않을 것 같다. 어쩌지, 나는 우산이 없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가만히 내리는 빗방울을 보고 있는데 옆에 있는 아이들은 하나둘씩 엄마 손을 잡고 우산을 나눠 쓰며 집으로 향한다. 나는 혼자였다. 우산도, 데리러 오는 엄마도 없이. 거세게 내리는 비를 맞고 그대로 집까지 갔다. 엄마는 맞벌이를 하고 있다. 알고 있다. 엄마도 바쁘다는 걸. 하지만 머리와 가슴은 다르다. 결국 엄마에게 감정이 앞선다.
"다른 아이들은 엄마가 데리러 왔는데, 엄마만 안 왔어!"
드라마를 보면 가끔 이런 장면이 나온다. 비 오는 날, 엄마가 데리러 오지 않아 아이가 투정 부리는 장면. 어릴 적에는 이런 장면을 볼 때면 마음이 괜스레 울컥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전혀. 이런 장면을 보면 마음이 찌르르하다. 그깟 비 좀 맞으면 어때서. 엄마가 마중 나오지 않는다고 사랑이 없는 걸까. 나는 한 번도 비 오는 날 엄마가 데리러 오지 않았다고 투정 부리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투정은 여유 있는 아이의 몫이었으니까.
1997년, IMF는 우리 집의 풍경을 완전히 바꿔놨다. 아버지가 다니고 있던 회사가 부도를 맞으며 아버지는 하루아침에 백수가 되었고, 어머니는 집안의 가장이 되어 일터로 나갔다. 아버지도 잠시 쉬었을 뿐, 곧 다시 일자리를 찾아 새벽 일찍 나갔다. 나는 알게 되었다. 부모님이 바쁘다는 건 그만큼 스스로 챙겨야 할 게 많아진다는 것을. 투정은 여유 있는 아이의 몫. 나는 유명 브랜드 신발을 사달라고 조르지도 않았고, 가족끼리 놀러 가자는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일주일 중 겨우 하루 쉬는 부모님에게 그런 말을 꺼내는 자체가 조심스러웠다. 비 오는 날 데리러 오지 않는 엄마에게 짜증내기엔, 두 분의 하루는 너무나 치열했다.
나는 그렇게 강한 아이가 되어갔다. 압력밥솥에 쌀을 씻어 안치는 법도, 계란프라이를 부치는 법도 익혔다. 준비물은 직접 챙겼고, 우산을 가져가지 않은 날 비라도 오면 그냥 맞고 집에 왔다. 친구들 중에는 혼자 라면도 끓이지 못하고, 계란프라이도 할 줄 모르는 친구도 있었다. 나는 이미 밥도 할 줄 알고, 계란프라이도 예쁘게 부칠 줄 알았다. 라면은 거의 마스터급으로 잘 끓이는 아이가 되었다.
하지만 사실, 나는 강한 아이가 되고 싶지 않았다. 엄마가 차려주는 밥을 먹으며 왜 오늘은 고기반찬이 없냐며 투정도 부리고 싶었고, 비 오는 데 왜 데리러 오지 않았냐고 짜증도 내고 싶었다. 그런 게 아이에게 허락된 일이라면 나도 하고 싶었다. 그러나 투정 부리지 않아도 사랑은 언제나 곁에 있었다. 엄마는 새벽 일찍 출근하면서도 반찬은 빼놓지 않고 만들어 뒀고, 비가 오는 날이면 우산 챙겨가라는 말을 꼭 하고 나섰다. 이제는 안다. 비를 맞으며 집으로 돌아왔던 그날, 내 곁에 엄마는 없었지만 엄마의 사랑만큼은 항상 함께 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