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이런 세상에 부모가 되어서
나의 육아 동지, 워킹 파파에게
육아를 두려워하는 사람이 참 많은 세상이다.
서로 다른 세계를 가진 두 남, 녀가 제 앞가림도 못하는 상황에서 또 하나의 무거운 생명을 짊어져야 하는 위대한 일을 하기에 지금 세상의 20, 30대는 이기적이고 철이 없다. 나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결혼 전까지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집안일 하나 제대로 해 본 적이 없고, 자고 싶을 때 자고, 놀고 싶을 때 놀며 살곤 했는데 육아의 세상을 만나면서 내 몸뚱이를 마음대로 다루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오는 정신적 충격이 이루 말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요즘의 20, 30대 부부들은 대부분 맞벌이를 하다 보니 이전 세상에서의 '가장'의 의미가 그들에게 정립되어 있을 리 없다. 남자도, 여자도 모두 가정을 위해 돈을 벌어오는 가장인데, 우리가 알고 자란 가장은 육아에서 주 양육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현실 속 육아에서는 남편과 아내가 똘똘 뭉치지 않고서는 제정신으로 헤쳐나갈 수 있는 육아가 아니다. 양가 부모님께 신세 지는 것은 기본이고, 이모님을 쓴다면 이모님을 기분 나쁘게 하지 않는 일부터 이모님이 잘 우리 아이를 잘 보살펴 주시는지 체크하는 일, 어린이집에서는 잘 지내는지 등등의 일을 함께 해나가야 한다.
남편과 아내가 절반씩의 육아를 해내야 한다는 생각이 어긋나게 되면 서로 마음 상할 일이 한둘이 아니다. 친구를 만나러 나가는 일이 잦아지거나, 아이를 재우는 일을 매일 한 사람이 하게 되거나 하는 등 육아에서의 업무 배분이 한쪽으로 치우쳐진 듯 느껴지면 이내 기분이 상하곤 한다.
나 역시 육아 초기에 남편에게 이런 마음을 느꼈다. 그런 마음이 사그라들고 온전히 남편과 동지애를 느끼며 육아를 헤쳐나갈 수 있게 되었던 계기는 내가 남편의 '워킹'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해 왔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이다. 한 가정에서 아빠가 나가서 돌을 벌어오는 일은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고, 엄마가 나가서 일을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 왔던 것이다. 남편도 일하면서, 내가 워킹맘으로서 느끼는 설움과 고단함을 똑같이 느끼지 않았을 리 없다. 나 혼자 워킹맘으로 너무 생색내며 산 것은 아닌가 하는 반성이 들었다.
남편의 하루를 생각해 보면, 새벽같이 일하러 나가 평일에는 대부분 나보다 일찍 귀가한다. 아이와 함께 온몸을 움직여서 놀다가 땀을 뻘뻘 흘리며, 아이와 함께 목욕을 한다. 내가 조금 더 늦게 집에 돌아오는 게 대부분이기에 내가 집에 오면, 아이와 시간을 보내라는 의미로 집안일을 도맡아 준다. 생각해 보니, 그렇게 같은 양의 육아를 해내고도 나의 칭얼거림도 묵묵히 들어줘야 하는 고단함도 있다. 회사에서의 일을 쏟아내며 잠들기 전까지 말이 많은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도 해줘야 한다. 참 고단한 워킹 파파다.
남편과 아내는 결코 육아에서 적이 아니다. 내가 이만큼 했으니 너도 이만큼 하라는 마음이면 언젠가는 상처가 된다. 둘은 가장 서로에게 연민이 깊고, 사랑이 가득한 동지여야 한다. 그래야 그나마 이런 세상에서 부모로서 살만 한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남편의 ‘워킹’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려 애써야 한다고 다짐해 본다. 게임을 할 때의 초등학생 같은 모습, 그게 남편의 본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우리 가족을 위해 애써 담대하고 어른스러운 척, 묵묵히 일하고 티 내지 않아 주어서 고맙습니다, 나의 육아 동지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