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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년의 책 읽어주기 봉사 활동을 돌아보며

by 나는나


아들이 어릴 때 잠자리에서 책을 읽어주곤 했다. 샌드라 스틴의 그림책 《자동차 목욕》을 읽어줄 때면 함께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동차가 실내세차장으로 들어가는 모험을 했다. 아이를 재우기 위해 시작한 책 읽기가 의도치 않게 흥미진진한 놀이가 된 것이다. 미아자키 히로카즈의《꿈도둑》도 수십 번 읽은 책 중에 하나다. 아이는 그 책으로 어떤 상상의 나래를 폈을까? 꿈도둑으로 인해 꿈나라로 떠나는 일이 두려웠던 것일까? 책 읽기가 계속되고, 어느새 읽은 책이 열 권이 넘어가면, 나는 피곤해져 얼른 불을 끄고 자장가를 불렀다. 아들이 좋아하는 책과 내가 좋아하는 책은 때로 달랐다. 동화책을 읽으며 가슴이 먹먹해져 눈시울을 붉히자 아들이 의아한 듯 쳐다보기도 했다. 아들과 함께 책을 읽으며 상상의 세계에서 함께 놀고 숨 쉬는 그 시간이 참 좋았다.

아침 일찍 일어나 서둘러 밥을 한다. 겨울방학을 만끽하고 있는 중학생 아들이 늦게 일어나 먹을 아침 겸 점심상을 차려놓고 출근하기 위해서다. 방학이 아직 좀 남은지라 개학 전까지만 고생하면 된다는 생각에 부지런히 몸을 움직인다. 일을 다시 시작하면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어린이도서연구회 모임과 책읽어주기 봉사를 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동안 어린 꼬마들을 만나 함께 책을 읽으며 즐거웠던 시간을 뒤돌아보니 그 시간이 내게 축복과도 같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린이도서연구회 회원으로 활동한 지 올해로 9년이 되었다. 아들이 핸드폰만 쳐다보고 책을 멀리하는 모습을 보면 나 혼자 뭐 하러 계속 동화책을 읽나 하는 생각이 든 적도 있었다. 모임에 나가는 이유도 재미도 찾을 수 없어 방황하던 중 남편의 이른 퇴직으로 자의 반 타의 반 생업 전선으로 뛰어들게 되었고, 책읽어주기 활동도 잠시 쉬어가게 되었다. 내가 한발 물러나 있는 동안에도 도서관의 책 읽어주기 시간은 계속되고 있다. 현재 분당에서는 분당도서관과 서현도서관, 무지개도서관, 운중도서관 등 네 곳의 도서관 어린이열람실에서 아홉 명의 어린이도서연구회 활동가가 활동하고 있다. 코로나 전에는 7개 도서관이었는데 많이 줄어든 셈이다.

책을 읽어주러 가는 길은 늘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한다. 내가 고른 책을 아이들도 좋아해 줄지, 책에 비해 너무 어린 아이가 오면 어쩌지, 흥미를 느끼지 못해 분위기가 엉망이 되면 어쩌지, 지난주에 재미있다고 말해준 그 아이가 또 와줄지…. 어린이 자료실로 들어서는 나는 무대 위로 올라가는 배우처럼 긴장한다. 배우가 관객의 반응에 울고 웃듯 나 역시 아이들의 표정에 따라 마음이 오르내린다. 아이들은 재미있으면 너무 좋아 까르르 웃고 재미없으면 책을 읽는 도중 “그만 읽어 주세요.”라며 직접 손수 책을 덮어버리기도 했다. 동화작가 프로이슬러는 ‘어린이는 가장 가혹하고 청렴결백한 비평가다.’라고 했던가!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새로 지은 도서관이라 책읽어주기 활동이 아직 정착되지 않아서였을까? 한창 책을 읽고 있는데 어떤 아이가 “좀 조용히 해주세요.”라고 말했다. 나는 순간 당황했지만, 당돌한 그 아이가 어쩐지 귀여워 “이것만 다 읽고 조용히 할게요.”라고 웃으며 대답했다. 그날 도서관을 나서며 담당자에게 다음부터는 미리 사람들에게 공지 한 번만 해달라고 부탁했다. 어떤 날은 아이와 함께 듣던 엄마가 “선생님 책을 너무 재미있게 읽어주시네요.”라고 말했다. 나는 짧게 “감사합니다.”라고 답했지만, 기분은 도서관 천장을 뚫고 하늘로 날아갈 것 같았다. 하지만 늘 그런 순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아이는 자리에 앉자마자 빨리 읽어달라며 아우성을 치기도 했다. 시작 시간이 조금 남았으니 친구들을 더 기다려보자고 했더니 “저는 50분에는 가야 해요.”라고 말했다. 참 바쁜 요즘 아이들이다. 그 많은 아이들 중에서도 유독 기억에 남는 아이가 있다. 자신은 모든 책을 다 좋아한다고 당당히 말하던 여덟 살 여자아이. 책읽어주기 시간에 오는 아이들의 평균 연령에 비하면 여덟 살은 적지 않은 나이였지만 그 아이는 봉사자가 매번 달라져도 빠지지 않고 찾아왔다. 어느 날은 헐레벌떡 뛰어 들어오더니 늦어서 택시를 타고 왔다며 환한 얼굴로 인사했다. 나는 천군만마를 얻은 것처럼 든든해졌고 목소리에는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그 아이를 보며 나는 새삼 깨달았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 준다는 것은 무언가를 가르치는 일이 아니라, 함께 마음을 나누는 일이라는 것을. 그래서 책을 고를 때 나는 우선 스스로에게 묻는다. ‘아이들이 이 책을 좋아할까?’
경험으로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아이들에게 무엇인가 메세지를 전달하려고 하거나 어쭙잖은 교훈을 주려고 하면 분위기는 금세 어색해지고 굳어버린다. 대신 나는 어떻게 하면 아이들과 소통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그것은 아이들에게 인정받기 위함이 아니라 그들과 하나가 되기 위한 나의 전략이다. 아이들의 순진무구한 마음에서 뿜어져 나오는 ‘동심의 은총’을 받노라면 나는 저절로 겸손해진다. 때 묻은 내 마음이 그들의 순수한 영혼으로 깨끗이 씻겨 나가는 것 같다.

그렇게 나는 그림책과 동화책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스트레스가 쌓이고 삶이 팍팍하다고 느껴지면 나는 지금도 동화책을 펼친다. 그 속의 맑은 옹달샘 한 모금을 들이키고 나면 새로운 나로 다시 태어나는 것만 같다. 돌아보면 어린이도서연구회 모임과 책 읽어주기 활동은 내 안에 있던 아이를 깨워 다시 일으켜 세우는 시간이었다. 겉만 어른인 채로 외로이 방황하던 그 아이를 아들과 도서관에서 만났던 수많은 친구들 그리고 함께 모임을 했던 회원분들이 어루만져주고 보듬어주었다. 내가 떠나도 그곳에서는 또 다른 활동가가 아이들의 반짝이는 눈망울을 바라보며 책을 읽어줄 것이다. 그는 나처럼, 아니 어쩌면 나보다 더 큰 행복을 날마다 발견하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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