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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병찬 Jan 30. 2024

왜 노망기(老忘記)인가?

1. 노망기(老忘記), 산이 할머니네 이야기 2부

“~님께서는 건강검진 결과, 인지기능(기억력 판단력 사고력 등)이 다소 저하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12월 초 열흘께였으니 벌써 두 달이 다 돼 간다. 건강보험관리공단에서 지난해 11월 했던 검진 결과와 안내문이 왔다. 대부분 정상 범위였다. 다만 인지기능 검사결과가 예전과 달랐다. 추가적인 검사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지역보험 가입자에게 건강보험관리공단에서 2년에 한 번씩 제공하는 정기검진은 고맙긴 하지만, 귀찮은 경우가 많다. 대부분 검진 절차가 요식으로 하는 것 같은 느낌 때문이다. 체중 재고 시력, 청력 검사하고 혈액 검사 하는 게 고작이다. 혈액 검사도 한정돼 있어, 내가 달고 사는 통풍의 요산 수치조차 검사 항목에 없다. 별도로 돈을 내고 정밀검사를 신청해야 검사 항목에 포함된다. 그래서 대체로 비용을 더 내고 의심나는 곳에 대한 검사를 추가한다. 일반검진은 무료라지만 대체로 추가 검사 때문에 적잖은 비용을 쓰게 된다. 

게다가 검진센터에 가면 일반검진 대상자들은 자격지심 때문인지, 의료진의 태도가 못마땅하기 일쑤다. 공짜로 검사받는 이들에게는 무언가 불친절해 보이는 것이다. 그런저런 이유로 검사를 받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문자가 날아오지만, 차일피일 시간을 미룬다. 하지만 인내심을 시험하다가 결국 이겨내지 못하고 검진센터를 찾는다. 올해는 전문기관이 아니라 동네병원으로 갔다. 동네병원에선 이런저런 눈치 볼 것도 없고, 유혹받을 일도 없다. 기본만 검사하기 때문이다. 

올해 처음으로 장문의 인지기능 검사 문진표를 작성했다. 이전엔 열댓 개 항목만 o, x로 답하는 문진이었지만 이번엔 10포인트의 작은 글자로 된 문항이 세 쪽에 걸쳐 빼곡한 문진표였다. 그걸 작성하지 않으면 검진도 받을 수 없다고 했다. 작심하고 온 길, 되돌아갈 순 없었다. 돋보기도 없이 뱁새처럼 잔뜩 찌푸린 눈으로 그 작은 글씨를 읽어가며 문진표 공란을 채우다 보니 속에서 열불이 났다. 

‘인지기능 저하’를 통보하는 안내문은 그런 열불 나는 노력의 결과였다. “인지기능이 저하되는 증상은 대부분 노화에 따른 현상이지만, 질환에 의한 것일 수 있으므로 추가적인 검사가 필요합니다.” “가까운 병원에서 진료를 받으시거나, 거주지 관할 치매안심센터에서 인지기능(치매) 선별검사를 받아보시기 바랍니다.” 만 60세 이상인 경우, 치매안심센터의 치매선별검사를 무료로 받으실 수 있다는 안내까지 친절하게 적혀 있었다.

물론 지금까지 선별검사를 받지 않았다. 앞으로 받을 생각도 없다. ‘다소’라는 부사 때문에 그런 건 아니다. 내 나이 새해(2024년)로 67살, 세는 나이로 68세다. 이미 인지기능이 퇴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몸으로 느끼기 시작한 것은 제법 됐다. 그렇다고 통상 들어 알고 있는 치매 증상과는 다르다고 판단했다. 나이 들어가면서 건망증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들 하지 않는가.

19년 전 법성포. 우리는 40대 후반, 어르신들은 70대 중후반

나는 주저하지 않고 안내문을 재활용 휴지 박스에 던졌다. ‘다소’라는 표현이 없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 잠깐 멈칫하긴 했지만, 던지고 나서 금방 잊어버렸다. 내가 재활용 휴지를 뒤진 것은 ‘육아’가 이제 나의 능력 밖이라는 생각이 들고, 이제는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나의 늙어감을 기록하자고 마음먹었을 때였다. 다행히 ‘인지기능 저하’ 안내문은 휴지 더미 속에 있었다. 

나도 기억력에 고장이 생겼다는 사실은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일상에서 적잖은 불편도 겪고 있다. 집안에서 어딜 가든 전등을 켰다가 끄지 않아 다시 끄러 가는 경우는 거의 매번이다. 다시 끄러 주방에 갔다가도 물 한 잔 마셔야겠다 싶으면 물만 마시고 나온다. 거실 불을 꺼야지 생각하고 나갔다가 장갑만 챙겨온다. 대화할 때도 낱말이나 표현이 생각나지 않아, 전라도 사투리의 만국공통어인 ‘거시기’ ‘머시기’를 연발하기도 한다. 대충 알아채는 아내지만 갈수록 측은한 눈빛이 역력해진다.

18년 뒤

처음엔 매우 당황스러웠다. 단순한 기억력 저하인지, 건망증인지, 아니면 치매인지 고민하며 주위의 의견을 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일들이 일상이다 보니, 이력이 붙었고, 이력이 나자 더는 신경 쓰지 않았다. 불편에 곧잘 적응하는 게 사람이고, 늙어갈수록 그런 적응력은 좋아진다. 물론 포기가 쉬워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형편에서 내게 날아온 안내문은 내게 조그만 전기가 되었다. 무심히 ‘그러려니 했던’ 망각의 여러 국면을 되돌아보게 했다. 원하든 원치 않든 접어든 노년, 노년이 되면서 달라지는 것들, 특히 잊어버리고 잃어버리고 갈피 못 잡고 허둥대는 것들을 눈여겨보게 했다. 어쩌면 나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기억들이 어떻게 마모되고, 지워지고, 사라져가는지 살펴보고 기록하도록 자극을 주었다. 

관찰하고 기록하는 것이야 내가 평생 종사했던 일이니 ‘인지기능의 장애’가 웬만큼 깊어지더라도 어느 정도는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도 있었다. 게다가 대상은 밖이 아니라 ‘안’, ‘남’이 아니라 ‘나’이니 고달플 일도 없었다. 생활하면서 잃어버리거나 잊어버리는 것들을 챙겨 메모만 해두면 됐다. 만나기를 회피하거나, 만나도 거짓말을 해대는 취재원을 취재하는 것보다는 백 번 쉬운 일이었다. 다만 늙어가다 보면 한편으론 이런 자신에 대한 실망과 함께 연민도 강해진다. 실망이나 연민에 뒤섞인 것에서 얼마나 사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있을지는 자신할 수 없다. 열심히 메모하는 수밖에 없다. 핸드폰의 녹음 기능을 이용하면 편하다지만, 수첩에 볼펜으로 끄적이던 습관을 능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문패는 ‘로망기’라 달았다. 흔히 노망(老妄)든다고 할 때의 그 노망은 아니다. 노망은 일종의 미친 짓, 늙어서 정신이 혼미할 때 나타나는 망상, 망상으로 말미암은 행동이다. 헛것을 보고, 헛것을 쫓아다니고, 헛것에 매달려, 헛것 속에서 사는 것이다. 이 글에서 말하는 노망은 노망(老忘)이다. 두음법칙을 무시하면 로망이다. 늙어가면서 잊고 잃고 사라지는 일들이고, 그로 말미암은 작은 사건 사고다. 치매 즉 노망(老妄)이 들 때쯤이면 자판을 두들겨 문장을 만들어내지도 못할 것이니, 노망기(老妄記)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노망(老忘)은 노망(老妄)에 이르기 전단계다.

젊어간다는 것은 확장하고 늘려가는 것. 세포도 증식하고 지식도 늘리고, 관계도 확장하는 것. 반면 늙어간다는 것은 그동안 채웠던 것을 비워가는 것. 살도 빠지고 인간관계도 줄어들고 지식과 정보의 창고도 비어가는 것이다. 그렇게 빈자리가 노년의 삶에서 어떤 구실을 할 것인지는 모르겠다. 뇌의 해면체에 빈 곳이 생기면 치매로 이어지듯 노망 즉 헛것으로 채워질는지, 아량이 넓어져 인품이 너그러워질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따라서 노망기(老忘記)는 늙어가면서 잊어버리고 잃어버리는 것들에 대한 기록이다. 아울러 노망 혹은 지혜, 조급함과 느긋함, 편벽과 너그러움 등 무엇이 빈 곳을 채워가는지에 대한 관찰이다. 늙어가면서 눈, 귀, 코, 입, 마음 모두 무뎌지는 만큼 아이의 그것을 빌린다면 더 잘 보고 느끼고 알 수 있을 것이다. 아이는 이제 내가 나를 보는 창이 되고 있다.

누구는 비어가는 것을 행복이라고도 하고, 누구는 상실이자  불행이라고도 하지만, 알 수 없다. 다만 본인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활용하느냐에 따라 행불행은 갈릴 것이다. 가끔은 정신승리법도 필요하다. 그것을 관찰하고 기록하다 보면 어쩌면 성주괴공, 곧 늙어 사라지는 모든 것을 연민하고 사랑하게 될는지 어찌 알겠는가. 그렇게만 된다면야, 우연히 이 땅에 던져진 우리네 인생치고, 행복했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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