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가다

1, 도망기(悼亡記)

by 곽병찬

사람의 장례 의식으로 치면 오늘(6일)은 삼우제다. 죽은 지 사흘이 지난 날이어서가 아니라, 세 번째로 예를 표시하는 날이다. 더는 이승을 떠돌지 말고 저승으로 돌아가 편히 쉬기를 기도하고 염원한다.

산은 3일 오후 다섯 시께 햇수로 14년 닷새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매일 오가고 때론 쉬기도 했던 단풍나무 밑에서였다. 가는 숨이 이어지다가 그친 듯 잠잠하더니 덮여 있던 아스파라거스 새파란 풀더미가 갑자기 부풀어 오르다가 꺼졌다.

산의 본관은 함경도 풍산이다. 함경도의 거친 산악을 누비며 사냥하던 것이 본업이었다. 북풍한설에도 이겨낼 수 있도록 털이 굵고 빽빽하며 몸집이 다부지다. 2000년 북쪽의 주인이 남쪽에 보내와 3대째에 경기도 가평 현리로 분양돼 그곳에서 낳으니, 본적은 현리다. 태어나고 50일이 되던 날 서울 종로구 신영동으로 왔다. 산이 오던 날, 산비탈의 오래된 곽,조씨의 집은 온몸이 설산의 만년설처럼 빛나는 산으로 말미암아 환하게 밝았다.

14년 가까이 곽, 조씨와 보연 홍철 두 자녀와 살아오는 동안 산은 북한산 보현봉에서 밀려오는 맞바람과 의연히 맞서 집안에 훈기를 보탰다. 자녀가 장성해 출가하거나 분가한 탓에 둘만 남은 부부의 늙어가는 삶은 그로 말미암아 생기를 찾을 수 있었다. 거친 삶의 현장에서 분투하는 사위와 두 자녀에게는 귀소의 이유가 되었고, 그곳에서 위로와 활력을 충전했다. 2016년 태어나 그보다 여섯 살 아래인 손녀 주원이는 얼마나 절친했던지 세검정 외갓댁을 아예 산이네라고 명명, 세대주를 바꿔버렸다.

그런 산의 이승에서 삶은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불던 바람도 멈췄다. 단풍, 라일라 가지마다 지저귀던 새의 울음도 그쳤다. 사방은 죽은 듯 적요했다.

오고 감이 무상하다는 걸 모르는 이 어디 있을까마는, 그가 정작 떠나고 보니 뼛속 깊이 저리다. 인생 팔십이라지만 견생 14년에 견주어 자랑할 것이 무엇일까. 생전 그는 무한한 믿음과 신뢰, 사랑을 비탈집 식구들에게 보여주었다. 변덕스럽기 짝이 없는 곽가도 수혜자였다. 산은 살아서는 건방질 정도로 꼿꼿했고, 죽는 날까지도 의연했다. 만물의 영장이라 오만을 떨지만, 평생을 기대어 사는 사람의 삶이란 그에 견주면 얼마나 누추한가.

그는 이미 무생의 이치를 깨달았다. 남음에 미련 두지 않았고, 떠남에 흔들림이 없었다. 그리하여 윤회를 벗어났으니, 영결에 이르러 아쉬울 것도 원망할 것도 없을 터. 다만 간절히 구하나니, 구박이 사뭇 심했고 강짜가 남달랐던 견주의 편협과 옹색을 용서하시라. 가장 오랜 시간 동행했고 또 쏘다녔던 것도 그 아니었던가. 오래도록 기억 속에 남아 있어, 그의 어리석음을 돌아보게 하는 명경이 되어주길 빈다.

일찍이 조선 순조 때 유씨 부인이 27년간 지녀온 바늘이 부러지자, 저의 회포와 바늘의 행장을 총총히 적어 영결한 바 있다. 오늘 곽씨 또한 북한산 보현봉과 문수봉 그리고 비봉능선이 보이는 단풍나무 밑에 초분을 마련해 道犬 산과의 영결을 슬퍼하며, 도망기를 바친다.

2024년 12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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