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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병찬 Nov 23. 2020

권력을 탐한 자 망할 것이요…

31. 산이 할머니네 이야기

“아까 속상했구나?” “응.” “그 이야기 엄마한테 이야기해줄래?” “… ….”

아이는 입을 꾹 다물었다. 다시 생각하기도 싫은지 앙다문 입이 야무지다. 할머니가 대신 전했다.

아이는 일주일에 한 번씩 미술체험 교실에 다닌다. 어린이집 친구 넷이 함께한다. 바로 그날 미술 체험을 하던 중 한 아이가 보호자가 대기하는 곳으로 나왔다. 씩씩거리며 엄마에게 다가와 밑도 끝도 없이 칭얼거렸다. “주원이가 자꾸 따라 해.” 그날 아이들은 땅속 체험을 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캄캄한 텐트에 들어가 무엇을 보고 느낄 수 있는지 체험했다. 주원이도 다른 아이 뒤를 따라서 텐트에 들어갔다. 그것을 본 아이가 화를 내며 밖으로 나왔다는 것이다.

미술체험이 끝나고 아이들이 제각각 엄마와 함께 엘리베이터로 내려올 때였다. 힘이 들었는지 쪼그려 앉아 있던 주원이가 일어서려다 손잡이에 머리를 부딪쳤다. “주원아, 괜찮아? 아프지” 엄마들이 한마디씩 걱정했다. 그때 아이가 주원이에게 팔로 때리는 시늉을 했다. “따라 하지 마.” 주원이는 깜짝 놀라 할머니 손을 꼭 잡았다. 더 놀란 것은 그 아이 엄마였다. “네가 따라 하고는 왜 화를 내지? 집에 가서 혼나야겠다. 주원이 할머니 미안해요.” “크다 보면 다 그래요. 그러면서 배우는 거죠.”

집으로 돌아온 할미는 주원이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아까 우리 주원이가 참 잘했어. 친구가 화를 낸다고 같이 대들지 않았잖아. 울지도 않고. 할머니는 주원이가 참 대견하고 자랑스럽더라.”

아이 아빠가 왔다. 애 엄마는 그날 일을 아빠한테 이야기하려 했다. 그러자 아이 얼굴이 굳어졌다. “하지 마.” 엄마 아빠는 아이의 단호함에 놀랐다. “알았어. 그 얘기 하는 거 주원이가 싫구나.” 내색은 안 했지만 아이는 그 일로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

아이가 따돌림당하는 것 아닌가 싶어 걱정됐다. 아내는 그런 건 아니라며 이렇게 분석했다. 주원이 외에 다른 셋은 어린이집 같은 반 아이들이었다. 지난해 참새반 때 모두 한 반이었다. 6살이 되고 분반하면서 주원이만 반이 갈렸다. 그 아이는 제 반 친구들끼리 노는 데 주원이가 끼어드는 것이 싫었다. 다른 아이들이 주원이에게 관심을 갖고 주원이와 어울리는 것도 싫었다. 일종의 주도권 갈등이고 다툼이었다. 아이는 주원이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며, 끼리끼리 놀 때 주원이가 같이하는 것을 막으려 했다.

정치가 별건가. 어떤 사람이건 집단 안에서 주도권 잡고, 제 생각대로 집단을 끌어가려는 욕망이 있다. 그런 욕망에 따른 행위가 정치다. 주도권 잡으려면 혼자서는 힘들다. 그래서 ‘패’를 만든다. 붕당이고 당파고 정당이다. 패거리를 잘 조직하고 이끄는 자가 주도권, 즉 권력을 잡는다. 5살 짜라 예닐곱 모인 모임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안타깝지만 아이도 이제 그 세계 속으로 발을 들이고 있다.

시인의언덕에서 본 평창동. 권력을 탐한 자 망했다.

세검정엔 특별한 속설이 하나 있다. “권력을 추구하는 자 망할 것이요…,” 풍수지리에 따른 해석인지, 오랜 세월에 걸쳐 검증된 경험을 일반화한 것인지 알 수 없다. 다만 내 짧은 경험과 추론으로는 양쪽 설명이 모두 통하는 것 같다.

이 마을은 북의 비봉농선, 동의 형제봉 능선, 서의 탕춘대 능선, 남의 백악산(북악산) 능선으로 에워싸여 있다. 한양의 조산인 북한산 백운봉에 뭉쳤던 기운은 주능선을 따라 보현 문수봉에 이르고, 이곳에서 형제-백악, 비봉-탕춘대-백악 능선을 따라 흘러가다가 한양의 주산인 백악산에 다시 만난다. 네 능선에 둘러싸인 곳에 마을이 있다.

풍수에 따르면 원형의 능선을 따라 기가 흐르다보니 안쪽에는 여울이 생긴다. 흐르는 기가 세다보니 여울은 거칠다. 그런 여울을 거슬러, 출세하려다가는 열이면 아홉 전복되고 만다. 물론 여울을 이겨내면 크게 출세한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성공한 사람은 없다고 한다. 반대로 그 여울에 몸을 맡기면, 비록 영달은 하지 못하고 복락은 누리지 못하더라도, 삶을 즐길 수는 있다. 놀이와 일의 경계가 없는 문화 예술인들에겐 길지이고, 싸워서 이기려는 정치인에겐 흉지가 되는 건 그 때문이라고 한다.  

공교롭게도 풍수의 해석은 경험적으로 뒷받침된다. 인조반정 때 훈련원을 중심으로 한 쿠데타군이 창의문을 넘어 경복궁을 접수할 때 세검정에서 칼을 갈았다는 속설이 있지만, 역사적으로 신빙성이 없다. 당시 훈련원은 지금의 을지로5가 옛 메디컬센터에 있었다. 광해군 시절 정궁은 창덕궁이었다. 오히려 이귀, 김류 등 수뇌부가 반정에 성공한 뒤 세검정에서 회동, 피묻은 칼을 씻으며 다시는 그런 비극이 없기를 다짐했다는 것이 오히려 사실에 가깝다. 탈권에 성공은 했지만 모시던 왕을 내쫓았으니, 회포를 풀더라도 세상의 이목을 피할 수 있는 곳에서 해야 했다. 그만한 자리로 세검정만한 곳이 어디 있을까.  

내 눈으로 직접 본 것만 해도, 이곳에서 최고권력을 노리던 이들은 예외 없이 실패했다. 한때 세검정에는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를 비롯해 정몽준, 권노갑, 최형우, 문재인 등 최고의 권력자들이 살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대권을 노렸지만, 모두 낙선하거나 중도 탈락했다. 거대야당 총재로 대통령 이상의 권세를 누리던 이회창은 두 번씩이나 낙선했다. 그는 결국 승천하지 못한 이무기로 정치 인생을 끝냈다. 문재인도 이곳에서 대통령선거에 나섰지만 실패했다. 그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세검정에서 벗어나 서대문구 백련산 밑으로 거처를 옮기고 난 뒤 치른 선거에서였다.

김영삼 대통령의 둘째 아들이 구기동에서 살았다. 그는 한때 아버지 이상으로 권력을 휘둘렀다. 아버지는 혼미했고 아들은 탐욕스러웠으니 결말이 편할 수 없었다. 독직, 뇌물 등으로 세상을 시끄럽게 하다가 아버지의 평생 노력을 더럽히고, 자신은 감옥으로 끌려갔다. 김대중 대통령의 둘째 아들은 개천을 따라 홍지동 다음 동네인 홍은동에 살았다. 그 역시 편치 않았다. 뇌물로 그 역시 김대중 대통령 시절 징역을 살았다.

김영삼 대통령의 후계를 노리던 최형우는 내무부 장관으로서 최고의 권세를 누릴 때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대권의 문턱에까지 다가갔던 정몽준도 세상의 비웃음 속에서 정계에서 물러났다. 그는 국민 앞에서 맺은 노무현과의 약속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이회창 편을 드는 바람에 더는 발붙일 곳이 없었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 최고의 실세였던 권노갑도 세검정에 살다가 감옥살이를 했다. 박근혜 대통령 시절 ‘진짜 대통령’ 노릇을 하던 김기춘은 평창동 저택에서 사는 날보다 감옥에서 사는 날들이 더 많다.

이런 이들이 살면 좋다.

반면 문인, 예인들에게 이곳에서 실패란 없다. 물론 탐하는 게 없으니 실패할 일도 없다. 지금 세검정은 전체적으로 예술인 마을이 되고 있다. 대한민국 굴지의 예술인 학교인 서울예고가 들어선 지 40년이 넘었고, 서울미술관, 가나아트홀, 김환기 미술관 등 화랑과 미술관은 손에 꼽기 힘들다. 복합콘서트홀은 물론 공공미술센터 등까지 여럿 들어서고 있다. 주말이면 세검정 미술관을 순례하는 셔틀까지 등장했었다.

나는 아이가 세검정 외가를 좋아하는 이유가 저의 기질과 이곳의 풍수가 어울리기 때문이었으면 좋겠다. 아이는 지금 미술체험 외에 발레도 배우고 있다. 아직은 아이가 욕심내지 않고, 주도하거나 지배하려 하지 않고, 이기거나 앞서려 하지 않는 것 같다. 더 크면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지만 아직은 다행이다.

주어진 것에 만족하고, 자연의 흐름에 순응하며, 저보다 작거나 힘없는 이웃 생명을 연민하며 살면 좋겠다. 물론 세상 걱정이 많아지니 사는 게 힘들긴 할 것이다. 하지만 행복이란 더 많은 소유가 아니라 더 풍부한 삶에서 온다고 하니 마음은 평화로울 것이다. 아예 세검정 마을에서 살기를 바라는 이유다.

요즘 이삼십대까지 투기대열에 뛰어들어 자고 나면 천정부지로 오르는 아파트는 불로소득이라는 독버섯을 키우는 음습한 습지가 되어 버렸다. 돈 놓고 돈 먹는 투기판, 추첨에 잘만 걸리면 일확천금을 잡는 복권, 가진자에게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요, 못 가진 자에게는 그나마 피땀 흘려 모은 자산을 홀딱 먹어치우는 불가사리다. 멀쩡한 사람들을 욕망 혹은 절망 속으로 빠트리는 악마다. 그런 광기와 질투, 분노와 좌절의 도가니 속에서 어떻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유년의 숲이 조성될 수 있을까.

아이가 오면 평창동 느티나무 집에서 국수 먹으며 홀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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