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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병찬 Jan 26. 2023

아낌없이 주는 아이, 세뱃돈 공동체

87. 산이 할머니네 이야기

“주원아, 할아버지 설날 세뱃돈 주느라고 이제 빈털터리 됐거든. 주원이가 할아버지한테 용돈 좀 줄래?”

“세뱃돈은 할머니가 다 주던데.”

“할머니가 주는 게 할아버지가 주는 거야. 할머니도 빈털터리 됐을 거야.”

“그래? 생각해보고.”

아빠가 아이에게서 세뱃돈 일부를 받아냈다는 이야기를 듣고 할아버지도 슬그머니 숟가락 얹으려 했다. 아이 아빠는 설날 저녁 집에 돌아가, 아이의 세뱃돈을 정산하다가 우는 소리로 아이의 마음을 흔들어 그 노란 지폐 한 장을 챙겼다고 한다.

아이는 친가나 외가에서 외동이다. 길동 조부모에게도 외동 손주고, 세검정 조부모에게도 외동 손주이며 마곡동 왕할머니에게도 외동 증손주다. 그러니 아이가 받는 세뱃돈은 여느 형제가 많은 집안의 아이과 비교하기 힘들다. 취학연령 아이에게 적당하다는 1인당 3만 원 기준에서도 예외다. 그 결과 아이가 두 왕할머니를 비롯해 네 할아버지 할머니 등 열네 분에게서 받은 세뱃돈은 무려 67만 원에 이른다고 한다. 하나뿐인 손주만 바라보는 어른들의 파격적인 쾌척 덕분이다.

아이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세뱃돈을 받으면 엄마에게 다 맡겼다(줬다고 해도 된다). 그런데 올해는 제 복주머니에 차곡차곡 모아두다가 설날 일정이 모두 끝나고 집에 돌아와서야 엄마에게 주더란다. 특별한 말은 없었고, 그저 ‘엄마 여기 내꺼야’라고 했단다.

“그래, 할아버지 할머니, 이모 고모 삼촌들이 주신 귀한 돈이구나. 내일 엄마랑 은행에 가서 주원이 이름으로 저금하자. 나중에 주원이 커서 필요할 때 귀하게 써야지.” 그동안 받은 세뱃돈은 이렇게 통장 속에 담겨 있다. 아이는 통장이 뭐고, 거기에 찍혀 있는 숫자가 뭔지 모른다. 관심도 없다. 제 용돈을 조금 남겨뒀다는데, 책상 위에 널려 있다.

홍은동 왕할머니에게 세뱃돈 받은 아이들, 기분이 최고다

윷놀이 때도 그랬다. 마곡동 왕할머니네서 윷놀이는 순전히 할아버지가 아이의 돈을 긁어낼 요량으로 제안한 것이었다. “주원아, 각자 돈을 내고 윷놀이를 하면 더 재미있어. 집중해서 열심히 하게 되거든.” “좋아.” “얼마씩 낼까? 두 장씩 낼까?” “그래. 내 거 여기 있어.” 아이는 두말하지 않고 바로 두 장을 꺼내 할아버지에게 건넸다. 세팀으로 나눠 저는 아빠와 한팀이 되었는데도 아빠더러 내라고 하지 않았다.

‘쓰지도 못하는 까짓거 몇 장이면 무슨 상관이람?’ 이런 태도 같았다. 아빠는 아이 덕분에 손도 안 대고 코 풀었다.

“그러면 일등 하면 몇 장, 이등 삼등 하면 몇 장씩 가져갈까?” “세 장, 두 장, 한 장씩 가져가면 되잖아.” 운이 맞는다. 일이삼이 삼둘하나로. “그러면 일등이 너무 조금 가져가는 거 아냐? 그리고 꼴찌가 가져가면 싱겁지 않아?” 아이는 어리둥절했다. 두 장 가져가나 석 장 가져가나 그게 무슨 상관이지? 라고 묻는 표정이었다.

아이는 아직 돈에도 승부에도 관심이 없다. 주변에는 윷놀이에서 지고는 울고불고하거나, 지거나 돈 잃는 게 싫어 아예 놀이를 거부하는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과 너무 다르다. 득도했나? 아니면 아직 너무 어린가?

물론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고 친구들과 사귀다 보면 이런 성자 같은 초탈이나 무욕도 사라질 것이다. 네 것 내 것 가리는 게 ‘사회화’의 첫발이며 ‘자각’의 출발이고 어른이 되어가는 징표라는데, 그런 사회에서 무욕과 초탈을 유지할 순 없다. 받자마자 세보지도 않고 엄마 치마폭에 봉투째 던져 버리던 이야기는 머잖아 전설이 될 게 분명하다.

이 도통한 무욕 덕분인지 아이 팀은 일등을 해 한 장을 더 벌었다. 할아버지 팀은 꼴찌를 했지만 한 장밖에 잃지 않았다. 아이 팀은 한 장 벌어 기분 좋고, 할배 팀은 한 장 덜 잃어 기분이 좋았다. 아무래도 아이는 어른의 스승이다.

마곡동 왕할머니네. 하나 뿐인 손주 덕에 모두가 환하다

설날만 되면 각종 매체들은 경쟁적으로 세뱃돈의 경제학이니 세뱃돈 투자하기 따위의 기사를 통해 경제적 마인드를 키워야 한다고 권장한다. 어릴 적부터 돈 불리기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장기 복리로 예금하기, 주식에 넣어두기 심지어 코인 투자까지도 제안한다. 일해서 버는 것(근로소득)보다 돈이 돈을 버는 게(자본소득) 월등히 많은 첨단 금융자본주의에 적응하며 살아가기 위해선 어쩔 수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세뱃돈의 본래 의미를 생각하면 입맛이 씁쓸하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들 한다. 한솥밥을 먹으며 생활하고 자란 부모나 형제자매와의 관계에서나 통하는 말이다. 삼촌 사촌만 돼도 어디 사는지 모르고 1년에 한두 차례 볼 뿐인 요즘, 가까운 친척이라고 해도 끈끈한 관계를 맺기란 쉽지 않다. 자주 봐야 낯이 익고 음식을 나눠야 친해지며, 정이든 기억이든 공유해야 동질감을 갖는 법이다. 소통하지도 나누지도 공유하지도 않는데 같은 핏줄이라고 태생적으로 가까워질 수는 없다. 그건 핵가족 시대라는 요즘만이 아니라 전통사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웃사촌이란 말은 상징적이다.

사촌이면 친형제 다음으로 가까운 친척이다. 그런 사촌지간이라도 오고 가지 않으면 이웃보다 못하다. 실제로 기쁜 일 슬픈 일을 함께 나누는 이웃은 그렇지 못한 형제보다 가까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전통사회에서도 온갖 기념일 축일을 앞세워 모이고 만나고 음식을 나누는 기회를 만들었다. 각종 생일잔치나 혼례 따위의 통과의례 따위는 물론이고 돌아가신 분의 기제사 등을 통해 평균 매달 1회 이상씩 일가친척이 모였다. 이런 축일, 제일 가운데 가장 성대한 것이 설 행사다. 설날 행사는 가족 친족 차원을 넘어 이웃과 공동체로까지 확장된다. 행사의 고갱이가 세배다. 세배는 가족은 물론이고 이웃이나 공동체, 사제지간, 직장 안에서도 이루어진다. 소원했던 관계를 회복하는 간단하지만 강력한 프로그램이다. 그런 세배의 의미를 구현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바로 세뱃돈이다.

빨간 봉투의 세뱃돈, 애고 좋아라

사실 절과 덕담을 주고받고, 음식을 나누는 것만으로는 무언가 아쉽다. 까놓고 말해 정은 오고 가는 현금 속에 깊어지는 것이다. 세배가 관계를 회복하고 깊게 하는 프로그램이라면, 세뱃돈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고, 유기체로서 기능을 활성화하는 피와도 같은 구실을 한다. 피가 잘 돌아야 인체가 건강하듯, 공동체도 돈이 잘 돌아야 굳건해진다.  

조건 없이 건네는 세뱃돈으로 할아버지 할머니는 존경의 대상으로서 권위를 회복하고, 엄마나 아빠는 평소 간섭과 잔소리를 용서받을 수 있다. 할아버지 할머니 형제로부터 받는 세뱃돈, 아빠 엄마의 형제로부터 받는 세뱃돈은 직계 방계 형제와의 유대감과 결속력을 키운다. 설날 모처럼 만난 친척들은 세뱃돈 공동체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설 전날 요양병원에서 홍은동 왕할머니에게 세배를 드리고 난 뒤였다. 일찍 시집으로 떠나는 딸이 병원 마당에서 큰집 조카 5명에게 세뱃돈을 나눠주고 덕담을 했다. 그러자 아이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었다. “오늘 주원이랑 놀지 못해 너무 아쉬워요. 쉬는 날 우리 집으로 데리고 와서 함께 놀아요.” 6개월여 만에 6촌 형제들을 만나 어색함을 감추지 못하고, 데면데면했던 아이는 그제야 눈을 반짝이며 한마디 했다. “엄마, 의성이 오빠, 예슬이 언니네 꼭 가자. 알았지?” 아이의 눈에선 아쉬움이 뚝뚝 떨어졌다.

똑같은 포즈를 취한 증손주 가운데 막내만 바라보시는 왕할머니.

마르셀 모스의 저서 <증여론>에는 선물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남태평양 토로브리안드 제도의 원주민은 선물을 주고받는 게 일상인데, 한 사람이 선물을 받으면 반드시 다른 사람에게 선물하고, 받은 사람은 또 다른 사람에게 선물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선물은 돌고 돌아 마지막엔 처음 선물을 준 사람이 받게 된다. 준 만큼 돌려받는 것이니 계산상으로 0다. 그러나 이 선물 릴레이를 통해 원주민들은 모두 이웃사촌으로 맺어지며, 공동체는 유대감과 결속력을 유지하고 강화하게 된다. 그것을 0이라고 하는 자본주의 시장주의자들은 겉으로만 똑똑한 바보다. 세뱃돈이 그렇다.

흔히 이런 이야기도 한다. 가난한 엄마가, 일하며 공부하는 아들의 생일을 맞아 아들 몰래 지갑에 10만 원을 넣어줬고, 아들은 그것도 모른 채 낳고 길러주신 엄마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엄마의 앞치마 주머니에 10만 원을 넣었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주고받은 게 같으니 결과적으로 0의 교환이었을까 아니면, 20만 원어치의 선물이 오고 간 것일까. 아니면 20만 원 이상 아니 돈으로 헤아릴 수 없는 사랑과 정이 쌓인 것이라고 해야 할까. 토로브리안드 섬들의 사람들은 선물과 함께 성스러운 신령이 순환하며 공동체에 하나의 생명을 불어 넣어준다고 믿는다고 한다.

아빠 용돈 좀 줄래?

아이가 커갈수록 설교가 길어진다. 이유는 뻔하다. 아이의 지적 영적 능력을 감당하기 힘드니 짧은 지식으로 우월적 지위를 확인하려는 거다. 머잖아 그것도 바닥이 드러날 것이니 참고 들어주길 빈다.

설날 저녁 우리도 집으로 돌아와 설비용을 정산했다. 비용은 선물비, 음식비 그리고 세뱃돈과 어른 용돈 네 가지였는데, 세뱃돈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마곡동 어머니네, 큰집, 사돈네 그리고 결혼한 조카들에게 준 선물은 소략했다. 음식은 큰집이나, 마곡동에서 차리고 또 먹었기에, 집에서 요리해 가져간 잡채 재료비가 고작이었다.

세뱃돈은 봉급생활자 시절이건 퇴직 연금생활자이건 달라지지 않았다. 증액되지는 않았지만 줄지도 않았다. 아니 그럴 수 없었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자존심을 떠나, 일 년에 한 번 설날을 기다려온 아이들의 기대를 저버릴 순 없다. 아이들이 그렇게 푸짐한 돈을 만져보는 건 설날이 유일하다. 그날 인색해지면 일 년 내내 구두쇠 할아버지 할머니가 된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적정한 세뱃돈 액수는 우리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초등생 저학년 이하는 3만 원, 중고등학생 5만 원, 대학생 7만 원이 우리 기준이었고, 입학하거나 진학하는 아이들에게는 일부 가산했다.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에게는 주지 않았다. 다만 다른 성씨 집에 들어와 고생하는 며느리에게는 10만 원을 책정했다.

이와 별도로 어머니들에게는 따로 품위 유지비를 드렸다. 노령연금 이외에 수입이 없는 어머니들에게 설은 연중 지출이 가장 많은 날이다. 집안의 최고 어른으로서 체통은 나이만으로 지켜지지 않는다.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줘야 한다. 물론 액수에 비례하는 건 아니지만, 액수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다른 사람보다 같거나 많아야 한다.

비용은 모두 112만 원이었다. 두 어머니의 품위 유지비 50만 원이고 세뱃돈은 큰집 며느리 1인 10만 원, 대학생 셋 21만 원, 중학생 1명 5만 원, 초등생 둘 6만 원, 취학생 1명 10만 원, 그리고 딸과 아들에게 각 5만 원씩 10만 원. 지출만 있었던 건 아니다. 우리도 이제 품위 유지비 수령 대상이다. 딸 부부와 장조카 부부에게서 모두 40만 원을 받았다.

할아버지 이마에 붙인 게 딸과 아이가 만든 품위 유지비 토끼봉투다.

늙건 젊건, 설날 받는 돈만큼 강력한 향정신성 물질은 없는 것 같다. 할아버지는 딸네가 손녀와 함께 만든 토끼해 토끼 봉투에 담아 건넨 품위 유지비를 받고는 기분이 좋아 한동안 봉투를 이마에 철썩 붙이고 아이와 놀았다.

설 연휴 다음 날부터 기온이 급강하했다. 하룻밤 사이에 20도나 내려갔다. 이튿날 새벽 거실 온도가 6도였다. 그날 저녁 할배는 손녀에게 전화했다.

“주원아, 산이네 너무 추워 내일 주원네 갈 건데, 우리 윷놀이 하자.”

“우리 집에 윷 없어.”

“윷은 할아버지가 구해서 갈게. 없으면 나뭇가지 다듬어서 하면 돼.”

“그래, 좋아.”

“이번에도 내기다. 주원이도 몇 장 묻어야 해.”

“알았어. 몇 장 준비해둘게.”

“이번엔 할아버지가 이겨 난로 가스비 해야지.”

품위유지비 받은 왕할머니도 기분 최고다

심통 사나운 할배다. 천지신명이 등을 돌릴 텐데, 이길 수나 있을까?

실제로 또 졌다. 2전2패다. 아이는 이번에도 1등이다. 이번엔 저 혼자 하겠다고 해서, 이긴 상금을 독식했다. 할아버지 할머니, 엄마 아빠가 각각 한 팀이고 저는 결혼 안 했으니 혼자 하겠다는 것이었다. 참, 맹랑하다. 할아버지가 하소연하자 용돈 봉투에서 1장을 꺼내 준다. 우리 손녀 최고다.

그날 저녁 유치원에서 피아노 학원으로, 피아노 학원에서 보습학원으로 데리고 갈 때 시정 아이의 손을 꼭 잡고 걸었다. 아이는 곰탱이처럼 옷을 잔뜩 껴입었는데, 손에 낄 장갑은 없었다. 얼마나 손이 시려울까. 그러나 웬걸, 아이 손은 핫팩처럼 따듯했다. 할아버지가 아이 손을 덥혀주는 게 아니라, 아이가 할아버지 손을 덥혀주었다. 아이는 불편할 텐데, 끝까지 손을 잡아 주았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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