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금치산자

by 이프로

한줄기 빛 같은 소식이 인터넷에 떠돌고 있었다.


까친연 카페에 올라온 글로 산티아고 순례를 마친 분이 살라망카에서 PCR검사를 받을 때는 양성이었으나 오진이었고 마드리드 공항에서 다시 검사를 받았더니 음성이 나와서 무사히 귀국했다는 소식이었다.

‘그렇구나, 내가 양성이라니 , 이건 오진일 거야.’

곧바로 마드리드 공항에 속성 PCR검사 예약을 했다. 속성 검사는 35분 만에 검사 결과를 받아볼 수 있어서 10:20 비행기를 타야 하는 내게는 오전 7:30에 검사를 받아도 충분히 보딩 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검사 결과가 빨리 나와서인지 비용은 일반 검사비보다 비싼 100유로였다.


밤이 되어 누웠건만 잠이 올 리 만무했다. 인터넷을 뒤져가며 유사한 사례를 찾아보았는데 오진 사례는 실제로 몇 건 더 찾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사례보다 월등히 많은 사례는 한번 양성 판정을 받고 난 뒤 음성이 나오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려서 힘들었다는 고생담이 대부분이었다. 차라리 양성 판정뒤 음성으로 바뀌는 데 걸리는 시간이 어느 정도라는 것이 파악된다면 좋겠는데 누구는 2주, 누구는 4주 등 개인마다 편차가 달랐고 심한 경우 몇 달 걸렸다는 소문도 있어서 공포심을 고조시켰다.

아무리 참아보려 해도 내일 공항 검사에서 또 양성이 나온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는데… 상상도 하기 싫었다.


뜬눈으로 꼬박 밤을 지새웠다. 출국 전 비상 상황에 닥친 해외 여행객들을 돕기 위해 외교부에서 개설한 <영사콜 24시>라는 카톡 상담원이 있다는 것을 알아두었는데 급한 마음에 연락을 해보니 친절하게 응대해 주었다. 마드리드 주재 한국 영사에게 연락해서 내게 스페인 방역 당국의 양성자에 대한 지침을 알려줄 테니 현지법을 준수하라는 설명을 해주었다. 그 사이 지인들에게 나의 양성 판정 소식을 알렸고, 혹시나 내가 모르는 음성 판정받는 비법이라도 있을까 했지만 모두들 안타까운 마음에 혀를 찰뿐이었다. 동행과는 새벽 6시에 공항으로 출발하기로 했지만 내가 밤새 부산을 떠는 기색이 보이자 5:30에 일어나 짐을 꾸려 칠흑같이 어두운 마드리드 새벽 거리로 나왔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가도 넉넉한 시간이었지만 마음이 급해서 택시를 집어탔다. 행선지를 말하는 내 목소리에 초조와 긴장이 역력했다.


공항에는 나처럼 국제선 탑승 전 PCR검사를 받으려는 이들이 몇 있었다. 예약한 7:30보다 훨씬 먼저 도착해서 검사소에 얘기했더니 기다렸다가 시간이 되면 오라고 했다. 검사소는 보딩게이트로 가는 검색대 근처에 있었는데 무심히 검색대를 통과하는 이들이 그렇게 부러워 보일 수가 없었다. 나도 저기를 통과하고 싶다. 나도 검색 마친 가방을 메고 탑승게이트를 찾아 줄 서고 싶다. 한국 가는 비행기를 타고 싶다.


마침내 시간이 돼서 검사를 받았고 결과를 기다렸다. 침이 바짝바짝 말라서 갖고 있던 500미리 물 한 병을 다 마시고 물병을 더 찾았다. 동행은 옆에서 별 말이 없었다. 무슨 말을 해도 나에게 들리지 않았고 아무 말도 필요하지 않았다. 양성 판정을 받은 내 옆에 겁도 없이 붙어 앉은 동행은 숙소에서 싸 온 삶은 달걀과 사과를 깎아 주었다. 결과를 기다리며 동행이 내미는 음식을 받아먹는데 목이 메어서 사과를 먹으면서도 물을 마셨다.

결과가 나왔다.


양성.


이제 내가 코로나 확진자라는 것이 분명해졌다.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서 아직 서두를 필요가 없는데도 동행을 검색대로 밀어 넣었다. 안타까운 시선으로 나를 쳐다보며 떠나는 동행과 눈을 마주치기가 어려웠다. 온 힘을 다해서 웃음을 만들었다.

‘알아서 잘 지내다 갈게요. 한국에서 봅시다.’

방향도 모르면서 무작정 뒤를 돌아 빠른 걸음으로 자리를 떠났다. 그때 마드리드에서 우리를 도와주던 교민 아가씨가 어젯밤에 건넨 말이 생각났다.


“일단 무조건 한국으로 가시는 게 나을걸요.”


그녀는 들은 소문이라면서 여기에 있어봤자 언제 나을지도 모르고 치료도 어려우니 일단 다른 사람의 음성 검사서를 들고서라도 비행기를 타고 인천에 도착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했다. 음성인지 몰랐다고 하고 검사서는 잃어버렸다고 하면서 한국에서 치료를 받는 게 현재 내게는 최선이라는 것이다. 안 그러면 스페인에 남아서 얼마가 될지도 모를 숙박비와 검사비, 새로 구입해야 하는 항공권 등 음성이 나올 때까지 계속 치러야 하는 비용이 어마어마하게 늘어난다는 것이다. 어제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내가 양성인데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이제는 매우 솔깃한 유혹과 대안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볼 필요도 없이 내가 두 번이나 양성 판정을 받은 사실을 알고도 타인의 검사서를 들고 비행기에 오른다면 나와 함께 탑승한 승객들과 승무원들과 나아가서 온 인류에게 그것은 심각하고도 파렴치한 범죄행위였다.


시내로 돌아가는 공항버스가 보였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내가 비행기에 탑승하지 않으면 이미 항공사의 웹 체크인을 한 상태이기 때문에 노쇼(No show)가 되고 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이라도 항공사 창구에 가서 내 사정을 설명하고 티켓을 다음 주로 미루거나 환불 요구를 해야 했다. 다시 공항으로 들어가서 항공사의 예약 창구로 가서 사정을 얘기했다. 접수창구에 있던 여성에게 내 이름을 말하자 체크인도 마쳤는데 왜 탑승하지 않고 있냐고 물었다.

“제가 코로나 양성이어서 탑승을 할 수 없습니다”

대답을 들은 창구 여성은 깜짝 놀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쓰고 있던 마스크에 또 다른 마스크를 덧대어 쓰며 그녀는 바깥을 가리켰다. “Get out, NOW!” 당장 나가!


나는 용건을 꺼내보지도 못하고 건물 밖으로 쫓겨났다. 머뭇거리면 곧바로 공항 경찰을 부를 기세의 여자 직원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모습이 공항 유리문을 통해 보였다. 나는 이제 한 사람의 인격체가 아니라 치명적인 병원균을 옮기는 좀비였고 평범한 인간에게 주어지던 각종 권리와 자격을 상실한 금치산자였다. 모두가 나를 힐끔거리며 피하는 듯 보였고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은 내 정체를 안다면 누구라도 내게 침을 뱉고 돌을 던질 것 같았다. 인류의 평화와 행복을 위해 나는 94 마스크를 단단히 조여 썼다.


다행히 승객이 한 명밖에 없었던 공항버스를 타고 시내로 돌아오면서 에어비앤비를 검색하여 오늘 체크인이 가능한 독채 숙소를 알아보았다. 당일 체크인이 가능하고 호스트가 즉시 응답할 수 있는 숙소로 범위를 좁히니 아주 비싼 저택이나 변두리의 원룸이 검색되었는데 가격은 내가 묵던 시내의 호텔 요금과 별 차이가 없었다. 내겐 선택지가 없었다. 언제까지 머물러야 할지 전혀 가늠할 수가 없었으므로 일주일 단위로 숙소를 연장하는 것을 생각했다. 시내로 돌아온 시간은 여전히 이른 아침이었고 나는 다시 호텔로 돌아가 아직도 프런트에 그대로 놓여있는 내방 키를 갖고 방으로 돌아왔다. 체크아웃 시간까지 좀 쉬면서 앞으로의 대책을 세워야 했다.


배낭을 내려놓고 무너지듯 침대에 쓰러졌는데… 우울하고 착잡했다.


IMG_0773.jpg?type=w1600


IMG_0774.jpg?type=w1600


IMG_0775.jpg?type=w1600 한국 가는 비행기 탑승이 거부되고 쫓겨난 마드리드 공항과 마드리드 시내로 돌아가는 공항버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2. 감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