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격리

by 이프로

당일 예약하여 결재를 마치자 정확한 에어비앤비 숙소 주소가 뜨면서 호스트와 연락이 가능하게 되었다. 내가 묵고 있던 그랑비아 거리의 호텔에서 5km쯤 떨어진 아토차역과 레티로 공원 근처였는데 호스트에게 이른 시간에 체크인이 가능한지 부탁을 했다. 체크인 시간이 오후 3시인데 그때까지 나는 갈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호스트가 허락을 해주어서 숙소로 갔다. 정오 무렵이었는데 인파가 가득한 도심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아무도 내가 코로나 확진자라는 것을 알수 없었을 테지만 두번이나 양성 판정을 받은 나는 몹시 행동이 위축될 수 밖에 없었다. 일부러 한적한 길로, 사람들과 떨어져서 걷다가 인적이 좀 잦아들자 속도를 내서 걸었다. 숙소에 미리 와있던 호스트는 활짝 웃으며 나를 반겼는데 집안 시설과 세탁기 등 사용설명을 마치고는 키를 건네주며 악수를 하자는 듯 손을 내밀었다. 난감했다. 그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배낭과 보조가방을 양손에 들고서 악수를 할수 없도록 만들었는데 내 연기가 통했는지는 모르겠다.


은의길을 걷자고 함께 온 나를 포함한 다섯명의 동행은 모두 코로나 접종과 부스터샷까지 맞고 왔다. 나를 제외한 이들은 스페인이 초행이고 산티아고를 처음 걷지만 나와 함께 지리산 둘레길과 제주 올레길, 여러차례의 국립공원 산행으로 평균 이상의 체력과 산행 경력이 있는 건강한 장년들이다. 내 체력은 이들과 견주어서 뒤지지 않는다고 할수 있었고 나 역시 개인 체력 단련과 산행으로 평균 이상의 신체 조건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왜, 왜 나만 코로나에 걸린 것일까? 그동안 함께 식사하고 같이 걸으며 같은 공간에서 생활했었다. 내가 다른 점을 굳이 들자면 나만 얀센 접종자였다는 정도. 얀센과 모더나로 추가 접종을 받았는데 이 조합이 취약하다는 소리를 들은 것도 같다.


심호흡을 하고 배낭 속 옷가지와 세면도구 등 살림살이를 꺼내 정리했다. 이제부터 일주일간 격리가 시작된 것이다. 재 스페인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알려온 바에 의하면 코로나 확진자는 7일간 자가격리를 해야하고 격리 도중 약이나 생필품을 사는 이유로 외출은 가능하다고 했다. 치료나 재검은 확진자가 알아서 해야 하고 스페인 정부에서는 별도의 조치는 없다고 했다. 구글맵으로 집주변을 검색해보니 근처에 마트와 과일가게, 식당, 카페가 많고 지하철역과도 아주 가까웠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져서 가까운 마트에 가서 며칠간 먹을 생수와 바게뜨 빵, 요거트, 햄, 치즈, 허브차를 사왔다. 왜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최소한만 먹으며 버티자는 생각이 들어서 간식이나 다른 부식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재빨리 필요한 물건들을 담아서 사람들과 마주치지 말고 다시 숙소로 돌아와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다. 식사때가 되어도 배고픔이 느껴지질 않았고 음식을 봐도 식욕이 생기지 않아서 음식보다는 물과 차를 주로 마셨다.


내가 우선 해결해야 할 일은 오늘 탑승하지 못한 핀에어 마드리드-헬싱키-인천 항공권을 다음주 수요일로 일주일 변경을 하는 것이다. 마드리드-헬싱키 구간은 노쇼로 날린다쳐도 헬싱키-인천 구간이라도 살려야 추가 지출을 막을수 있다. 그런데 핀에어 상담센터는 사람이 아니라 챗봇이라는 AI 상담원과 일차 면담을 거쳐서 사람과 바꿔주는 식이었다. 그런데 대기자가 많아서 한번 접속을 하려면 기본 3시간은 기다려야 했고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에 상담원이 응대하는 것을 놓치면 다시 처음부터 3-4시간을 대기하는 피말리는 도돌이표로 이어졌다. 그렇게 대여섯 시간을 대기한 끝에 마침내 Aleksandar라는 상담원에게 내 사정을 얘기하고 일주일 뒤로 항공권을 연기해 달라고 부탁했는데 이미 마드리드-헬싱키 구간은 사용한 것으로 간주한다면서 추가 요금 230유로에 재발행을 해주겠다고 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여기고 결재를 했다. 결재후 이메일로 새로운 항공권이 날아왔는데 아뿔사, 항공권에는 내 이름이 아닌 오늘 탑승한 동행의 이름으로 발권이 되어 있었다. 싱담원은 내 이름을 호명하면서 상담을 시작해서 내가 누구인줄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도 나도 발권을 하면서 탑승자 이름을 확인하지 않은 것이다. 결재를 하기 전에 항공권을 보여달라고 했어야 했는데 마음이 급해서 결재부터 덜컥 하고 만 것이다. 상담원은 이미 나와 연결을 끊은 상태이고 이름을 바로 잡으려면 다시 서너 시간의 대기와 그동안 있었던 일을 새로운 상담원에게 다시 다 설명해야 하는 끔찍한 과정을 되풀이 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새벽부터 양성 판정을 받고 심신이 황폐한 상태로 숙소를 구하고 종일 휴대폰을 들고 씨름한 끝이라 너무 피곤했다. 자포자기 상태가 되어서 침대에 드러누웠다. 그 상태로 그냥 잠이 들었다.


IMG_2953.jpg?type=w1600 핀에어 상담원과 항공권 관련 채팅

새벽에 잠깐씩 잠에서 깨어날 때마다 핀에어에 접속하여 상담원과의 접속을 기다렸다. 새벽이면 접속 상태가 좀 나아질까 했는데 오히려 상담대기자가 너무 많다면서 나중에 다시 시도하라며 대기조차 허용을 하지 않았다. 불도 켜지 않은 캄캄하고 낯선 방에서 지치고 힘든 몸을 제대로 뉘이지도 못하고 휴대폰을 들고 씨름을 하고 있는 자신을 보고있자니 씁쓸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닥친 것일까. 언제까지 그렇게 넋두리를 하고 있을수가 없었다. 해외에서 양성 판정을 받은 이들을 검색해보면 짧으면 2주, 길게는 몇달까지 음성을 기다린 사례들이 있었다. 이제 장기전으로 들어간다 생각하고 대비를 해야했다. 다시 가까스로 상담원과 연결이 되었으니 이번 상담원은 거두절미하고 이름이 잘못된 발권을 내탓으로만 돌렸다. 몇번 설명을 했으나 이름 정정 비용으로 300유로를 추가로 요구했다. 해가 뜨기도 전에 지쳐버린 나는 전의를 상실하고 그러마고 결재를 하려고 했다. 그때 혼자 출국한 동행에게서 연락이 왔다. 벌써 한국에 도착한 것이다. 방역 차량을 이용해야 했던 동행은 대기시간 동안 나를 대신해 한국의 핀에어에 연락을 했다. 한국의 핀에어는 처음부터 상담원이 응대를 하고 내가 코로나 양성 판정때문에 탑승하지 못한 사정을 이해해 주었다. 핀에어 헬싱키 상담원과 있었던 그간의 사정을 설명했더니 선뜻 내가 어제 지불한 추가 요금으로 내 이름의 다음주 항공권을 발권해 주기로 했다. 격리에 들어간지 꼬박 24시간이 걸려서 항공권 문제 하나가 해결된 것이다.


골치 아픈일이 해결되고 이제 제대로 격리가 시작되었다. 빨래를 하고 줄을 매달아 널었다. 샤워도 하고 면도도 하고 따뜻한 물을 끓여 계속 차를 마셨다. 다행히 숙소의 TV는 넷플릭스와 유튜브 연결이 되서 내 계정으로 로그인을 하고 나니 내가 보던 드라마와 영화들이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한글 자막으로 나왔다. 나는 격리 기간동안 <애프터 라이프 앵그리맨>이라는 영국 드라마와 <나의 아저씨> 그리고 다쿠멘터리 <로마제국>을 봤다. 하루 종일 드라마를 보다가 허리가 아프면 일어서서 보기도 하고 좁은 방에 갖힌 채 스쿼트도 하고 팔굽혀펴기도 하면서 예전에 봤던 <프리즌 브레이크>나 로버트 드니로가 나오는 <케이프 피어> 그리고 박찬욱의 <올드보이>를 떠올리기도 했다.


나흘째 아침에 외출을 했다. 마드리드 영사관에서 권고한 대로 안티젠검사(신속항원검사)를 해보기로 했다. 동네에는 약국이 곳곳에 있었는데 어느곳에서나 손쉽게 안티젠검사 키트를 3유로 정도에 구할수가 있었다. 정확도는 PCR보다 떨어지지만 웬만한 증상은 걸러진다고 했다. 여러개를 사서 날마다 해보려다가 일단 두개만 사서 돌아왔다. 검사를 원하는 만큼 할수 있었지만 계속 양성이 나온다면 내가 심리적으로 다운이 될것 같아서 하루 간격으로 두번만 해보고 PCR 검사를 하기로 했다. 돌아오는 길에 계란과 식수, 바게뜨, 콜라, 스페인 라면, 까요스 통조림을 사왔다.


시간이 흘러서 일주일을 미룬 귀국일과 그에 앞선 PCR검사 일정이 다가오자 다시 마음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또 양성이면 어떡할 것인가.


처음이야 경황없이 당했다지만 또다시 무방비 상태로 있을수는 없었다. 플랜A야 당연히 음성 받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지만 사실 그럴 가능성은 희박해 보였다. 그럼 다시 일주일 연기하고 또 숙소를 구하고, 또 항공권을 구하고…이건 아닌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는 아직 원래 발권해 둔 귀국편 항공권이 살아있었고 그 기간동안 차라리 지금 프랑스길을 걷고 있는 동료들과 합류해서 걷다가 돌아오는 편이 정신건강에도 낫고 무작정 숙소에서 스트레스 받으며 대기하는 것보다 유익해보였다. 다만 건강한 동료들에게 나는 아직 위험할수도 있으니 몇 코스 앞서 거나 뒤쳐져서 따로 걷는 편이 안전할 것이다.


다시 프랑스길 지도를 펼쳤다. 플랜B는 렌페를 타고 레온으로 가서 프랑스길 후반부를 걷다가 원래의 귀국일에 돌아오는 것이다. 3주쯤의 시간동안 트레킹을 하다보면 그동안 내 코로나 증상도 좋아져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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