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한 자세로 따뜻한 차를 마시면서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힌다.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지난 며칠 동안 내게 일어난 일들을 복기해 본다.
우선, 내 몸 상태를 돌아보자. 두 번에 걸친 PCR 검사에서 양성 판정을 받은 나는 정말로 나는 아무런 증상이 없었는가, 현재는 어떤가.
내 몸의 곳곳에 가만히 귀를 기울여본다.
몸살 증상이 있었던 날, 오한이 있었다. 심하진 않았고 몸이 무겁고 피로가 느껴졌다. 피로는 꼭 코로나 때문만은 아니고 팀을 리딩하는 것에서 촉발된 스트레스가 원인이기도 했을 것이다. 열이 오르는 게 느껴졌고 동행은 내 얼굴이 상기되었었다고 했다. 그리고 두통과 인후통이 좀 있었다. 심한 건 아니었지만 가래가 조금 있었고 침을 삼킬 때 목구멍 안쪽의 불편함이 며칠이 지나도록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이러한 증상은 감기 처방약을 두 번 먹고 푹 잠을 자고 나니 대부분 사라졌다.
특히 이번 순례를 떠난 이후 처음으로 잠을 푹 자고 일어나니 몸이 가볍고 컨디션이 완전히 회복되었다. 순례 기간 내내 나는 시차 적응에 이은 고질적인 불면과 자는 동안의 주변 코골이 소음으로 고생을 했는데 감기약을 복용한 후 간만의 숙면이 회복에 큰 도움이 되었다.
격리 초반 이틀 동안 나는 한국에서 가져간 <타이레놀 콜드>를 복용했는데 특별한 증상이 있어서 복용했다기보다는 전문가들이 코로나 치료에 <아세트아미노펜>이 도움이 된다고 한걸 들은 기억이 있었고 스페인 대사관에서도 확진자에게 이 약의 복용을 권유하고 있었다.
타이레놀 콜드는 졸음이 오는 약이어서 이 약을 복용하는 동안 잠을 많이 잤다.
격리가 시작되고 난 후 내가 가장 신경을 많이 쓴 부분은 <따뜻한 물 많이 마시기>이다. 평소에도 물 섭취량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있던 나는 아침에 깨면서부터 <카모마일 차>를 마시기 시작해서 300미리 컵에 하루에 넉 잔 이상씩 마셨고 그 사이에도 여러 번 끓인 물을 식혀서 마셨다. 뜨거운 물에서 나오는 수증기를 코로 들이마시며 건조해진 실내에서 코안의 점막에 따뜻한 습기를 쐬었다. 매일 아침 온수로 샤워를 했는데 배낭을 가볍게 하느라 가져오지 않은 보습로션이 무척 아쉬웠다.
아침식사로 삶은 계란 두 알과 사과나 오렌지를 하나 먹었고 요구르트도 가끔 먹었다. 점심과 저녁 식사로는 바게트에 치즈나 햄을 곁들여 먹었고 며칠 동안은 무설탕 코카콜라를 한 캔 씩 마시기도 했다. 간식과 술은 거의 먹지 않았는데 빵집에서 사 온 설탕 묻힌 도넛을 먹다가 버렸고 하루는 크런치에 소포장된 슬라이스 하몽을 싸서 먹었다. 격리하면서 빠진 건지 걷는 동안 빠진 건지 알 수 없으나 체중은 4kg이 줄었고 늘어졌던 뱃살은 어느새 훌쭉해졌다. 체중의 5% 이상이 빠지자 플랭크 때 가벼워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전에 한국에 전화를 걸면 저녁 식사 전 시간이기 마련인데 주로 이 시간에 아내와 아이들과 통화를 했다. 설 명절 휴일 기간이어서 아내와 아이들은 처가에 다녀오기도 하고 가장 없는 휴일을 보내고 있었다. 안부를 주고받고 나서 아이들 이야기 교회 이야기, 주변의 확진자 이야기 등 주로 한국 얘기를 많이 했다. 내가 스페인에 있다지만 집안에만 갇혀 있으니 나에게서는 별로 할 얘기가 없었다. 통화를 마치면 영화감상 시간이다. 드라마 한두 편을 보고 나면 점심시간이 되고 별로 배고픔이 느껴지지 않아서 빵 한두 조각으로 후딱 때우고 차를 마셨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와 식사를 마치고 나면 환기를 시켰는데 현관문과 창문을 열어서 맞바람이 통하도록 했다. 숙소는 일자로 기다란 구조였는데 히터가 현관 쪽 벽에 있어서 따뜻한 바람이 침실 쪽으로 오는 식이었다. 젖은 수건과 빨래를 침실과 주방 사이에 널어두거나 샤워를 마친 뒤 수증기가 방 안으로 퍼지게 두는 식으로 습도 조절을 했다. 물을 많이 마셔서 그랬을 것 같은데 소변량이 늘었다는 느낌이 컸다.
숙소 주인은 일부러 방을 많이 만들려고 그랬는지 옆집과 방음 상태가 영 부실했는데 옆 숙소에 투숙객이 있는 날은 대화 소리와 TV소리가 크게 들려서 불편했다.
넷째 날 즈음이 섣달그믐이었다. 천사 같은 마드리드 아가씨가 잡채와 라면을 갖고 찾아왔다. 며칠 전부터 나에게 필요한 게 있으면 가져다주겠다고 연락을 해왔는데, 정말로 나는 별로 아쉬운 게 없어서 괜찮다고 마음만 받겠다고 사양을 해오고 있었다. 하도 여러 차례 도움을 제안하는데 계속 사양하기가 뭣해서 신라면 세 개만 사다 달라고 부탁을 했다. 아가씨는 산타클로스처럼 직접 만든 잡채 한 접시와 쌀밥 한 그릇, 진미채 한 종지와 내가 부탁한 라면을 갖고 왔다. 스페인 집이 현관을 공동으로 사용해서 문고리에 두고 가라고 하기가 곤란했다. 마스크를 단단히 여미고 나가서 멀찌감치 떨어져서 건네받았다. 참 고마운 처녀이고 마음씨가 선한 사람이다. 스페인에서 스페인 분들께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이제는 교포 아가씨의 도움까지 받고 있다. 세상에 빚을 많이 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걸 다 갚아야 할 텐데… 필요 없다고는 했지만 잡채와 쌀밥을 보니 허기가 돌아서 프라이팬에 데워서 먹었다.
숙소 주인은 웰컴 드링크로 리오하 와인을 한병 내게 주었는데 그동안 주방에 계속 자리를 지키고 있던 와인은 잡채와 함께 좋은 마리아주를 만들었다. 오랜만의 기분 좋은 취기로 설날 기분을 냈다.
다시 PCR 검사일이 다가오자 양성이 나오는 상상에 두려움과 불안이 스멀스멀 커져갔다. 할 일도 없는데 일찍 깨는 일과에 이날은 오래동안 샤워를 하고 깨끗이 몸을 닦았다. 의식을 치르듯 차를 마시고 구입해 둔 신속항원 검사 키트를 꺼냈다. 복잡하게 여러 나라 언어로 쓰인 설명서를 보니 그냥 알코올 스왑을 양쪽 코에 넣었다가 용액에 1분간 담가서 내 콧속 물질들이 녹아들게 한 뒤 첨부된 시험용지에 스며들도록 그 용액을 3방울 떨어뜨리고 15분간 기다렸다가 반응이 나타나는지를 보는 것이다. 이 간단한 작업을 위해 나는 기도를 하고 심호흡을 하고 15분을 15년같이 기다리며 결과를 지켜봤다.
음성!
한 줄 만이 나타났다. 두줄이 나오면 양성인데 15분이 지나 20분이 경과하도록 줄은 하나만 보였다. 한 번의 안티젠 검사로 뭐가 달라지지는 않았고 마음도 그냥 그랬다. 다만 양성이 나오지 않은 사실에 안도하며 PCR보다는 정밀도가 떨어진다니 이 결과만 믿을 수는 없다는 생각을 했다. 지인들과 동행들은 내가 일주일 연기 끝에 다시 귀국을 시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아무도 내가 일주일 만에 결과를 뒤집고 한국으로 돌아올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 역시도 그것은 지나친 낙관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저 내 신앙에 기대어 기도하고 기도하고 기도했다.
월요일이 되었다. 격리 6일 차가 된 것이다. 오전에 PCR검사 예약을 했다. 처음과 마찬가지로 저녁 7:30에 예약을 했는데 역시 그랑비아 시내에 있는 검사소로 예약했다. 60유로.
사실은 출국하는 날인 수요일 아침에 마드리드 공항에서 100유로짜리 속성 검사를 받고 결과에 따라 곧바로 출국을 하던지 다시 돌아와서 레온으로 가는 기차를 타고 프랑스길을 걸을건지 하려고 했는데 월요일 오전에 2차로 시도해 본 신속항원 검사에서 다시 음성이 나오자 자신감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출국할 차림으로 공항에서 검사를 했다가 다시 한번 양성을 받고 시내로 돌아오는 모습을 떠올려보니 내가 너무 비관적이 돼서 프랑스길을 걷는 내내 마음이 우울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냥 월요일 검사하고 화요일에 결과를 받아보고 그것에 따라 Plan A로 갈지 Plan B로 갈지를 정하는 게 스스로에게 위안이 될 것 같았다.
월요일 내내 최대한 기쁘고 유쾌한 마음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통화도 하고 매시지도 보내면서 명랑한 척, 담담한 척, 아무 일도 없는 척했다. 스스로에게 양성이어도 괜찮다고 최면을 걸었다. 실제로 양성 일주일 만에 결과가 음성으로 바뀌는 일은 무척 드문 일이다.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지난주에 검사받은 클리닉은 숙소에서 5km 정도 떨어져 있었는데 걸어가려다가 마드리드 지하철을 타고 가기로 했다. 저녁 시간이어서 공기가 쌀쌀했고 한 시간을 걷다 보면 호흡기가 건조해지고 차가워질 테고 검사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것 같았다. 그렇게 전철 편으로 검사소에 도착을 했고 한번 경험이 있는 나는 능숙하게 검사 양식을 작성하고 법정에 서는 사람처럼 긴장해서 검사실에 들어갔다. 1분쯤 걸리는 검사를 마치고 거리로 나오자 그 사이에 그랑비아 대로에는 인파가 더 많아졌다.
내일이면 일단 자가격리는 풀리는 상태라 그 사실만으로 좀 홀가분해졌고 이제 화살은 내 손에서 떠났다는 생각에 그냥 산책하듯 역을 향해 걸었다. 마드리드의 그랑비아 거리는 우리로 치면 홍대 앞이나 역삼동같이 젊은 유동인구가 많은 곳인데 이 날따라 젊고 패셔너블한 사람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어서 그들과 함께 활보하는 것만으로 몸 안의 바이러스가 퇴치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다음날인 화요일은 격리가 풀리는 날이어서 오전에 숙소 근처의 레티로 공원에 산책을 나왔다. 마드리드 시민들에게 허파와 같은 역할을 하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공원으로 하루종일 산책을 해도 공원을 다 둘러볼 수가 없을 정도이다. 숙소에서 프라도 미술관 방향으로 걷다가 점심시간 무렵에 숙소 근처로 돌아왔다. 오전에 미리 봐둔 레스토랑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주일 만에 처음으로 식탁에 앉아 오늘의 메뉴 정식 밥상을 주문했다. 전채로 스페인 내장탕 수프를 주문하고 메인으로 바깔라우 스테이크, 후식으로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여기에 함께 나온 와인을 맛있게 곁들이고 나왔다. 그릇을 핥듯이 싹싹 비우자 웨이터가 웃길래 같이 웃어줬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내일 레온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먹을 간식과 프랑스길을 걸을 때 먹을 바게트와 초리소를 하나씩 샀다. 삶아서 갖고 갈 계란도 여섯 개 샀다. 시간을 보니 검사 결과가 나올 8시까지는 아직도 한참이 남았다. 집 앞의 바른에 들러 와인에 감바스를 주문해서 한잔 더 하고 들어갔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와 쓰러져서 오후 내내 잤다.
낮잠을 자는 동안에도 길게 길게 자서 8시에 깨자고 다짐을 하며 잤는데도 깨보니 6시가 안 됐던 것 같다. 정신을 차리고 그동안 늘어놓았던 내 물건을 정리했다. 양성이든 음성이든 내일 아침에 체크아웃은 해야 했다. 널어놓은 빨래도 걷어서 개고 내가 사용한 그릇들도 닦아서 원래대로 넣어두었다. 렌페 사이트에 접속해서 내일 레온 가는 기차 시간을 알아봤다. 첫차가 오전 7:00인데 이후에도 몇 차례 기차는 더 있었지만 완행이어서 시간이 두배로 오래 걸렸다. 예약은 결과를 보고 나서 하기로 했다. 프랑스길은 북쪽이라 기온이 차가웠다. 갖고 온 내복과 장갑을 꺼내기 쉬운 곳에 넣고 그동안 사용하지 않은 우비와 우산도 배낭 외부 지퍼에 다시 넣었다. 그렇게 꾸물거리며 8시가 되기를 기다리고 애써 양성 생각은 떨치려다 보니 어느새 휴대폰에 클리닉에서 검사결과 메일이 와있었다.
머뭇거린다고 결과가 달라질리는 없을 테니 후다닥 메일을 열고 첨부된 PDF 파일을 열었다.
NEGATIVE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