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읽기 쉬운 마음이야
당신도 스윽 훑고 가셔요
달랠 길 없는 외로운 마음 있지 머물다 가셔요 음
내게 긴 여운을 남겨줘요 사랑을 사랑을 해줘요
할 수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새하얀 빛으로 그댈 비춰 줄게요
그러다 밤이 찾아오면 우리 둘만의 비밀을 새겨요
추억할 그 밤 위에 갈피를 꽂고 선 남몰래 펼쳐보아요
잔나비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
양성판정을 받은 후 느껴지는 열패감은 말할 수 없이 크다. 아무리 막으려고 해도 부정적인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무슨 잘못을 했길래 내가 이런 벌을 받는 걸까’로 시작해서 ‘마음을 곱게 쓰지 않은 탓이다’로 번졌다가 세상도 원망하고 주위사람들에게 화살을 돌리기도 한다. 이런 나를 가족과 지인들은 위로해 주고 걱정해 주고 기도해 주었다.
격리 중인 나에게 뭐라도 보내주려고 애쓰신 손길들, 아침저녁으로 스페인 시간을 계산해서 전화로 메시지로 안부를 물어주시던 한국의 까미노 선배님들, 조속한 회복과 복귀를 위해 기도해 주신 신우들, 내 격리기간 동안 수시로 연락하면서 의리를 보여주던 동행들, 직장 복귀가 염려되어 연락했더니 아무 걱정 말고 몸조리에 신경 쓰라던 동료들, 금전적인 손실이 커지자 계좌로 송금을 해주던 가족들…
스스로도 곧바로 마음을 가다듬고 이런 시련에 신의 뜻이 있음으로 여기고 회개하며 기도했다. 돌아보니 이제까지 얼마나 많은 행운과 축복이 이어진 인생이었는지, 양성판정을 받아 격리를 하고 있는 이 순간도 누군가의 평생의 버킷리스트였을 까미노를 걷다가 생긴 일이었고 마음만 먹는다면 나는 앞으로도 매년 까미노를 올 수 있는 특혜를 받은 자였다. 그러자 좀 더 주변을 살피고 챙기지 못한 일들이 생각났고 이런 마음을 고난을 당했을 당시에만 잠깐 일시적이고 우발적인 충동처럼 넘겨버리지 않도록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또 나는 코로나라는 시련을 통해 조금 성장하는구나 라는 생각에 원망의 코로나가 감사의 코로나로 바뀌었다.
예정했던 출국이 코로나 양성 판정으로 정확히 일주일 늦춰지면서 비용이 발생했는데 우선 3회에 걸친 코로나 PCR 검사비용이 220유로, 공항과 검사소를 오갔던 교통비가 50유로, 일주일간의 에어비앤비 숙박비가 400유로, 핀에어 항공권 1차 410유로, 2차 230유로, 식비와 잡비 100유로 토털 1,410유로를 썼다. 한화로 약 200만 원이다.
격리 중 식비 지출이 평소보다 줄었고 다른 비용은 아마 스페인에 일주일간 체류한다면 평균 비용에 해당할 것이다.
원래 왕복 항공권이 있었지만 조기 귀국으로 새로 구입한 핀에어 편도 항공권 비용이 640유로로 가장 컸다. 이는 내가 처음에 발권한 인천-마드리드 구간의 에미레이트 왕복 항공권 70만 원보다 훨씬 비싼 것으로 이번 까미노 여행에서 항공권 지출이 가장 크다.
혼자서 서너 명 자리에 ‘눕코노미’로 왔으니 비즈니스 요금을 지출하고 이코노미를 탔다고 생각하면 속이 덜 쓰리다. 돈이야 또 벌면 되는 일이니 2백만 원으로 해외에서 코로나 양성을 막았다면 선방한 것으로 여기련다.
귀국 후 에미레이트가 자랑한 코로나 보험 자동 혜택을 알아보니 역시나 나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에미레이트 항공사가 보장하는 것은 내가 코로나 양성으로 인해 의료기관으로 후송되었을 때, 의무 격리시설에서 머물렀을 때 등에 해당되는 것으로 무증상인 내가 알아서 타이레놀을 먹고 에어비앤비 숙소에서 머물다가 다시 음성 판정을 받아 귀국한 것은 해당되지 않는다. 이와 관련한 문의 사항이 있어도 두바이에 연락을 하거나 외국어로만 문의할 수 있고 그나마도 한국에는 접수처가 없어서 해외로 해야 하니 에미레이트의 코로나 혜택을 받으려면 코로나로 인한 중증의 경우가 아니고서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다. 보험 청구 관련해서 영수증이 첨부된 이메일을 쓰다가 부질없는 짓이라는 생각에 그냥 접었다.
코로나 기간에 나처럼 까미노 출국을 앞두고 계신 분들에게는 10만 원대의 국내 해외여행자 보험을 가입하고 나가실 것을 강력히 추천한다. 나야 200만 원에 막았지만 누구라도 나처럼 일주일 만에 음성 판정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할 수는 없다. 스페인만 보면 대도시든 까미노 중 만나는 마을이든 비교적 마스크 착용이 보편화되어 있다. 우리가 뉴스에서 접했던 자유분방한 유럽국가의 마스크 미착용은 거의 보지 못했다. 코로나 백신 접종을 모두 맞았고 개인 건강 상태가 좋아서 면역력이 저하된 분이 아니라면 나는 예정된 까미노를 진행해도 좋다는 의견이다.
다만 겨울은 내가 혹독한 카미노 환경을 몸소 체험하고 중도 포기하고 왔을 정도이니 날이 좀 풀려서 봄철이 된 후에 가실 것을 강력 추천한다. 좀 과장해서 토마토 먹으러 스페인 가던 사람인데 이번 겨울 여행동안 토마토는 물론이고 그 어떤 과일도 만족을 주지 못했다. 스페인 하면 떠오르던 달콤한 체리, 납작 복숭아는 아예 볼 수조차 없었고 토마토는 이마트에서 마감시간에 떨이로 파는 것과 품질이 다를 게 없었다.
먹거리뿐만 아니라 영업을 하는 레스토랑, 바르, 카페 등 업소와 다른 뻬레그리노를 찾아보기가 어려워서 스페인의 넉넉한 인심과 일과를 마치고 나누는 까미노 친구 사귀기가 빠진 여행이어서 아쉬움이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