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위수여식과 교수회의
이번 학기부터 바뀐 행정 조교는 오늘 학부와 대학원 학위수여식이 있으니 참석하라는 공지와 졸업식을 마친 이후에 전체 교수회의가 있고, 회의 뒤에는 각 단과대학별로 회식이 있을 예정이라고 식당과 시간을 알려왔다.
대학에 자리를 잡고서, 그러니까 교수가 되고 나서 나는 실로 오래간만에 졸업식이라는 걸 경험하게 되는데 내가 그동안 학교를 다니면서 나 자신의 졸업식은 국민학교와 중학교 졸업식을 끝으로 참석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졸업식은 대학에 낙방한 뒤 후기 대학이라도 가겠다고 했는데 집에서는 가지 말라고 해서 어수선한 마음에 가지 않았고 샌프란시스코에서 다닌 대학교 졸업식에는 당시 현직 대통령 영부인이었던 힐러리 클린턴이 연사로 온 떠들썩한 행사였는데도 졸업 전에 로스앤젤레스로 취업이 되는 바람에 참석하지 못했다. 대학원 졸업식은 어서 한국에 빨리 돌아가서 영화를 찍겠다는 마음에 귀국을 서두르느라 불참하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이제껏 사각모를 써 본 적이 없네.
한국에서 대학교 졸업식은 학위수여식이라고 부른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내가 평교수가 아니라 보직을 맡은 교수였다면 엄숙한 표정으로 졸업식 단상에 가운과 사각모를 쓰고 앉았을 텐데 학장이나 처장, 총장들이 앉는 자리니 나야 올라갈 일이 없다. 내가 임용된 2000년대 초반에만 해도 졸업식은 학교의 큰 행사였다. 아침부터 학교 앞 도로가 방문객들 차량으로 막히고 경찰들이 출동해서 교통통제를 해야 했고 학교에는 대목을 노리고 출동한 꽃다발과 기념품, 간식거리를 파는 행상들이 교정 안까지 들어와 진을 치고 졸업하는 학생들과 친구, 가족들이 곳곳에서 사진을 찍고 서로를 축하하는 떠들썩한 분위기가 하루종일 이어졌다.
그런데, 정확히 언제부터라고는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이제 더 이상 그런 졸업식 분위기는 느낄 수 없다. 최근 2, 3년간의 졸업식이야 코로나 때문이라고 하겠지만 코로나 이전에도 졸업식에 참석하는 학생들의 숫자가 현격하게 줄어들었다. 내가 소속된 예술대학뿐만 아니라 어문대와 공대 등 다른 단과대학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주인공인 졸업생의 참석이 줄어드니 당연히 하객들도 줄어들고 행상들도 정문 앞에서 행사 시간을 전후로 잠깐 머물다 철수하는 것처럼 보였다.
졸업식의 의미가 예전처럼 지난 4년여간의 어려운 대학생활을 견뎌낸 것을 축하하고 사회로 진출하거나 또 다른 세계로 나아가는 새로운 출발점이라는 의미가 이제는 많이 퇴색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졸업은 했는데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다. 대학을 졸업하면 사회인, 즉 직장인을 의미했었는데 이제는 대학을 졸업하면 취준생이 된다. 졸업 전 취업 같은 일은 이제 매우 희귀한 일로 받아들여져서 취업을 위해 일, 이년 시간을 보내는 일이 다반사가 되었다. 당사자가 이렇게 우울한 현실을 의식해서인지 졸업식같이 가도 그만, 안 가도 그만인 행사는 뒷전으로 밀려난다. 교수도 졸업생에게 활짝 웃으며 축하해 주기에는 사정을 알기 때문에 멈칫한다.
'열심히 해 봐, 다 잘될 거야'같은 말을 무슨 근거로 할 수 있겠는가?
졸업식이 끝난 후에는 전체 교수들이 모이는 교수 회의가 있다.
이름은 회의인데 한 번도 회의를 해 본 적은 없는 것 같고 주로 지난 학기 우수 교원의 포상과 퇴직 교원을 알린 뒤 학교나 재단의 공지와 각종 지표들을 알리는 자리인데 지난 10년이 넘는 동안 대한민국 대학은 계속 위기와 구조조정의 살얼음판을 지나고 있어서 이 시간은 대체로 우울하고 지루하다.
마른 수건을 쥐어짜듯 15년째 등록금 동결이라는 정부 방침을 따르느라 학교는 이제 해볼 수 있는 모든 절약책은 다 동원하는 듯하다. 거기다가 '학령인구의 지속적 감소'라는 살벌한 현실을 견뎌내느라 매년 학과 모집 정원을 곶감 빼먹듯이 뽑아가 버리는 바람에 우리 학과 같은 경우 내가 임용될 때의 신입생 모집 정원 60명에서 이제는 절반인 30명으로 줄어들어 버렸다.
학생 숫자에 비례해서 학과 예산이 책정되기 때문에 학생이 줄면 학과는 힘들어진다.
이런 일은 비단 우리 학교뿐만 아니라 전국의 대학이 비슷한 사정인데 인서울 대학만큼은 아직도 전국에서 몰려드는 학생들 때문에 우리처럼 지방에 있는 학교보다는 사정이 좀 나을 것이다.
재미없고 우울한 회의라서 교수들의 참석률이 떨어지자 안 온 사람들에게 불이익을 주려고 출석 체크를 한다. 출석 체크만 하고 도망가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출석 체크를 회의 시작과 종료 시점에 두 번씩 한다. 교수나 학생이나 지루한 시간에는 다들 도망가려고 한다.
교수회의 식순에 퇴임교원에 대한 순서가 있다. 이제는 간략하게 어느 학과의 어느 교수가 퇴임하는지 알리고 넘어가는데 예전에 교수들이 많지 않고 학교 분위기가 좋았을 때는 퇴임 당사자가 연단에 나와서 간단하게 소회를 말하는 시간도 있었는데 이제는 퇴임자가 아예 교수회의에 참석하지 않을 때가 더 많은 것 같다. 교수들은 대부분 65세인 정년을 채우기 때문에 근속연수가 30년 혹은 그 이상 되는 경우가 많다. 한 직장에서 30년을 일하고 떠나는 자리인데 후배 교수들의 축하와 인사를 받는 일이 생략되어 버리고 나가는 사람이나 보내는 사람이나 소 닭 보듯 하거나 후다닥 식순을 읽어버리는 것으로 넘어간다. 떠나는 교수들은 아마도 아쉽고 섭섭할 것 같다. 그래도 교수회의 때마다 학교 사정이 어려워지고 학생이 줄어든다는 우울한 지표만 되풀이되므로 난국을 앞에 둔 후배 교수들에게 유쾌하게 웃으며 '잘 있거라, 나는 간다'소리를 하기가 면구스러울 것이다.
오늘은 또 어떤 지표와 교육부의 압박 내용이 공지될지 시작도 안 한 교수회의 내용이 두렵다. 신학기를 맞아서 희망차고 밝게 교수들의 사기를 충천하게 하는 교수회의가 그립다. 학과 통합, 학과 폐지, 정원 감축... 어느 학과 인원을 얼마만큼 줄일지를 논의하는 자리가 되어버린 교수회의가 부담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