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년, 강의전담, 초빙, 석좌, 산학중점, 명예, 객원, 외래, 겸임
나는 2002년에 전임강사로 임용되었다. 우리 학교에서 나와 같이 임용된 5명의 동기들이 있었는데 36세였던 나와 공과대학 정교수가 최연소였고 공과대학 장교수님과 디자인대학 유교수님은 기업에서 퇴사 후 임용되신 분들이라 40대 이셨다. 모두 다 같은 직급인 전임강사로 임용되었지만 나와 디자인대 유교수님만 2년 후 한차례 재임용 절차를 거쳐 2년의 전임강사 기간을 더 거쳐야 했고 나머지 세명은 처음 2년의 전임강사 기간을 마치고 승진 심사를 거쳐 조교수로 승진했다.
이유는 나와 디자인대 유교수님은 박사 학위가 없었기 때문이다.
박사가 하기 싫어서 안 한 게 아니라 나와 유교수님의 전공은 박사과정이 없는 예술 실기 전공이었다.
나처럼 전공이 예술 실기인 음악, 미술 등의 분야에서는 예술학 석사 MFA, Master of Fine Art 학위가 최종 학위이다.
긴 가방끈을 유독 사랑하는 한국인들은 수년 전 내 전공인 영화학 실기에서도 박사 과정을 개설했는데 이는 영화 종주국인 미국과 유럽에도 없는 희한한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박사 과정인데 가르치는 교수들은 다 석사라는...ㅎㅎ
개설대학인 한양대, 동국대, 중앙대 과정을 보면 논문 대신 졸업 작품 Thesis Project를 한다는 점이 석사 과정과 똑같아서 그냥 석사 과정을 되풀이한다는 느낌이다. 나 보고도 박사 과정에 참여하라고 꼬신 교수들이 몇 있었지만 너도 석사면서 왜 남보고 박사를 하라는 거냐고 했더니 입을 다물었다. 내가 박사과정에 동의하기 어려운 점은 박사 학위를 가진 자라면 그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보여야 할 텐데 우리나라 감독이나 해외 감독 중에 영화 박사가 만든 영화를 본 적도 없고 그들이 박사과정에서 만들었다는 졸업 작품을 봐도 저게 과연 박사 학위를 수여할 만한 작업인가 의문스러운 게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암튼 각설하고, 전임 강사로 임용된 나는 2년 후 재임용 심사를 거쳐서 2년 더 전임강사를 지냈고 그 후 2년 뒤 승진 심사를 거쳐서 조교수가 되었다. 조교수에서 4년인가를 채우고 부교수로 승진했고 부교수 5년 뒤 교수로 최종 승진했다. 전임강사로 임용된 날부터 교수님 소리를 들었지만 정말 '교수'가 된 것은 그로부터 13년 뒤였던 것이다. 교수를 다른 하위 직급 교수와 구분하려고 그랬는지 '정교수'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래서 성씨가 정 씨인 사람은 임용되자마자 '정교수'이고 조 씨인 사람은 평생 교수를 했는데도 '조교수'라는 학계의 오래된 농담이 있다.
나는 교수의 종류는 이게 다 인 줄로만 알았다. 적어도 2000년대 초반에는 그랬다. 퇴임한 교수에게 학교에서 '명예'교수라는 타이틀을 주는 건 들어봤지만 그거야 '전직 교수'와 별다를 게 없어 보였고 가끔 업적과 명망이 훌륭한 사람에게 '석좌' 교수를 붙여주는 것을 봤는데 이건 다분히 학교에서 정치적인 목적으로 사용한다. 우리 학교에는 이런 사람도 있다는 전시용으로, 또 당사자는 교수라는 번듯한 직함을 하나 더 챙기는 것이니 마다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래서 선거철에 유독 흔해지는 것 같고, 혹은 학교가 각종 심사나 감사를 대비해서 석좌교수를 챙긴다는 소문도 있다.
그러면 강의전담 교수, 초빙 교수, 산학중점 교수, 객원 교수, 외래 교수, 겸임 교수는 무엇인가? 이들의 특징은 모두 교수이긴 하지만 정년이 보장되어 있지 않은 임시직 교수로 예전의 강사를 좀 다양하게 분류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틀리지 않을 것이다. 내가 임용될 때만 해도 학교에서 수업을 하는 사람은 교수와 시간 강사 두 부류였다. 시간 강사들 중 상당수는 전임 교수 자리를 기다리고 강의경력을 쌓고 있는 사람들이었고 실제로 교수들 중 대부분은 시간 강사 생활을 거쳐서 임용된다.
교수와 교사는 학생들을 지도한다는 비슷한 일을 하지만 교사들이 사범대나 교육대, 혹은 교직과정을 거치면서 교수법이나 학생들을 지도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을 거치는 반면 교수는 오로지 자기 전공 공부만 하다가 임용된다. 그래서인지 학식은 뛰어나지만 학생 지도에 부적합한 교수들도 가끔 눈에 띈다. 그런 이유로 요즘 교수 임용 심사에서는 강의경력을 높은 비중으로 배점을 한다. 강의 경력이 너무 짧으면 높은 점수를 받지 못한다. 요즘에는 최소한 강의 경력이 5년 이상은 되어야 서류 심사에서 통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것도 좀 비합리적인 게 무조건 강의 경력 햇수만 따지는 것이다. 한 학기에 수업 하나만 하면서 5년을 보낸 사람과 학기마다 수업을 네다섯 개씩 하면서 3년을 한 사람을 심사할 때 5년 한 사람이 더 좋은 점수를 받게 되어있다. 이런 점을 지적하면 동감은 한다면서 그냥 정해진 점수를 주라는 학교도 있고 그냥 내부 지침이 그렇다고 심드렁하게 대답하는 학교도 있다.
이런 강사가 '시간 강사' 또는 자조적으로 '보따리 장사'라고 불리다가 다양한 이름으로 둔갑한 데에는 교육부의 대학평가와 깊은 관련이 있다. 대한민국 교육부가 하는 일은 대학교육을 어떻게 하면 힘들고 어렵게 만들까를 고민하는 부처로 생각이 될 정도로 대학에 딴지를 걸고 있는데 이는 정부 예산을 손에 쥐고 말 잘 듣는 대학은 주고 말 안 들으면 돈을 안 주기 때문이다. 그러니 대학들은 논리가 떨어지거나 비현실적인 지시에도 굽신굽신 비굴한 모습을 보이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혹은 여론에 이끌려서 칼을 휘두르는 교육부 눈치를 보는 것이다. 그런 교육부에서 대학 평가에서 요구한 것이 학생대 교수 비율을 올리라는 주문이었다. 세금으로 봉급을 주는 국립대학이 아닌 경우 교수 숫자가 적은 대학들이 대부분이어서 사립대학들이 취한 방법은 교수로 카운트되지만 교수처럼 대우를 해줄 필요가 없는 겸임교수, 강의전담교수 같은 자리를 만들어서 기존의 시간 강사들의 타이틀을 바꿔주었다.
또 세상이 '인권'이라는 것에 눈을 뜨고 시간 강사의 처우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면서 그들의 환경을 개선하라는 요구도 있었던지라 학기 단위로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강사들의 고용안정을 위해서 최소한 2년은 강의를 주고 방학중에도 봉급을 주기로 했다. 그래서 초빙 교수, 산학중점 교수 같은 자리가 생기게 되었다. 이들은 시간 강사 때 한두 과목씩 배정받았던 것에 비해 매 학기 최소 6 시수 이상 강의를 할 수 있었고 2년간 자리를 잃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이런 강사법 개정이 결과적으로 시간 강사 자리를 줄이는 결과를 초래하게 돼서 전국에서 박사 학위를 갖고 강의를 하던 수많은 강사들이 일자리를 잃게 되었다.
기존의 시간강사 처우가 형편없었던 것은 사실이다. 교수들이 강사를 말도 안 되게 혹사시키고 부려먹는다는 소문도 많이 들었다. 그들이 강사들을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강사들이 자기 졸업생이거나, 아니면 자기 '라인'에 줄 서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폐쇄적이고 좁은 교수 사회에서 자기를 심사할 가능성이 높은 교수가 말도 안 되는 심부름을 시켜도 기쁜 얼굴로 달려가는 강사들이 줄을 서고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 국내에서 대학을 나오지 않은 나는 이런 '직계' 교수가 없었고 내가 임용될 당시에는 내 전공 교수의 수요는 폭증하고 있는 상태여서 강의 경력이라고는 고작 한 학기뿐인 나에게 여러 학교가 손짓을 했고 나는 그중에서 '골라서' 지원을 했다.
박사급 학자들이 많은 인문학 전공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임용 초기에 복도에서 맞닥뜨리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강사 선생님들을 뵈면 괜히 조심스러워진 까닭이다. 강사법이라는 게 생기기 전 수없이 많은 강사 선생님들이 부당한 처우 개선과 학내 부조리 사건을 고발하는 시위도 보았다. 그래서 만들어진 강사법은 오히려 이들을 더 힘들게 만들어 버린 결과여서 안타깝기도 하다.
교수라는 직업은 단순히 직업 중 하나가 아니라 사회적인 지위까지도 생기는 것이라서 신중하고 엄격하게 임용과 심사를 해야 할 것이다. 특히 정년이 보장되는 교수 승진, 즉 tenured 정교수에는 좀 더 심도 있는 관심이 필요한데 정작 그 심사는 교수들이 맡고 있으니 국회의원들이 불체포특권을 내려놓지 못하는 이유와 비슷하게 공정한 판단을 보기 어렵다.
여섯 시간 연강으로 녹초가 된 강사 선생님이 쉴 곳도 마땅치가 않아서 강의실 복도에서 편의점 김밥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는 모습을 본다. 불공평하고 비합리적인 학계에서 이들을 구제할 제대로 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