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 맛집; 술 취한 산비둘기 돌구이 요리

민통선 내셔널 지오그래피

by 이프로

철책을 지키는 보병 전방 사단인 21사단이 맡고 있는 지역엔 아름다운 자연 풍광을 품고 있는 곳이 많다. 대암산 용늪도 그렇고 지금이야 시래기로 유명한 양구 해안면이지만 한국 전쟁 당시 격전지였던 펀치보울 가는 길도 때 묻지 않은 자연 그대로였다. 대부분의 지역이 민통선 이북이다 보니 사람의 손길이 전쟁 이후로 끊어져서 어디를 가도 우거진 숲과 야생동물의 낙원이고 온대성 기후대의 세렝게티라 할만하다.


가을, 10월 말쯤의 늦가을이면 강원도는 이미 춥다. 하지만 낮동안에는 한여름 못지않은 강렬한 태양빛이 한을 풀듯 마지막 열기와 강도 높은 자외선을 뿜어대는데 이 즈음이면 민통선 이북 지역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이하고 야생미 넘치는 요리가 있다.


눈이 많이 오는 강원도 부대는 가을철에 미리 싸리나무를 많이 꺾어서 빗자루를 넉넉하게 만들어둬야 한다. 겨울철 제설작업에 싸리빗자루가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힘만 센 이등병들이 서까래로 눈을 밀고 나가면 그 뒤를 고참병들이 열을 맞춰서 아직 남아 있는 눈을 도로 양옆으로 쓸어내야 하는데 이때 싸리비만큼 야무지게 마사토 도로 위의 눈을 제거해 내는 빗자루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싸리나무를 찾다가 올라오다 보면 산 능선까지 올라오게 되는데 이곳에 우리의 만찬장소가 있다.


이름도 없는 천 고지 이상의 산들이 즐비한 광치 위 고개 어디쯤인데 서울 출신인 나는 이쯤 오면 방향 감각도 없고 그산이 그산 같아서 묵묵히 강원도 출신 졸병들을 따라 가는데 그런 나와 다르게 그들은 이 근방에 오면 조용히 일만 하다가 홈그라운드에 온 프로야구 선수처럼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뭔가 행동에도 여유가 느껴진다.

나는 강원도 졸병, 강원도 사람들을 좋아했다. 수더분하고, 과묵했으며 불평 없이 맡겨진 일을 힘 안 들이고 해결했으며 쩔쩔매고 있는 도시 출신 동료들을 도왔다. 과묵한 그들이 나에게 보여준 산비둘기 요리는 살아있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이었다.


능선 위에는 신기하게도 야생 능금나무가 줄을 맞춰서 도열해 있었는데 굵은 나무 몇 그루와 그보다는 가늘지만 열매를 많이 맺고 있는 나무가 섞여있어서 멀리서도 시큼한 능금 냄새가 풍겨왔다.

처음엔 능금이 뭔가 했는데 어린아이 주먹만 한 잘 익은 걸 따서 한입 먹어보니 달달한 것이 사과 맛이 났다. 야생 사과라고 보면 된다. 늦가을 능금나무들은 붉고 푸른 열매들을 저마다 한아름씩을 맺어냈는데 아무도 안 오고 아무도 안 따가니 능금은 저 혼자 익어서 바람을 맞으면 땅바닥에 떨어지는 놈들이 있었다.

바닥에 떨어진 잘 익은 능금은 바닥과 부딫힌 충격으로 익은 부분이 터지게 되는데 과즙이 흥건한 그곳에 늑가을 햇빛이 쬐이면서 이미 익은 과일을 또 한번 익힌다.


달콤한 과즙이 햇살을 받으면 공기중의 천연 효모와 결합하여 발효가 되면서 알코올성분이 발생한다. 이 달달하고 알딸딸한 과즙을 산비둘기들은 좋아했다. 사람이 먹었더라면 시큼해서 썩은 과일이라고 쳐다보지도 않았을 과일이 비둘기들에게는 과실주가 된것이다. 우리가 점심 먹고 올라와 열심히 싸리나무를 베고 이파리를 털어내어 묶어서 빗자루를 만들어서 차곡차곡 그날의 할당량만큼 지게에 쌓아 올리면 어느덧 햇살은 뉘엿뉘엿 넘어가고 점심에 먹은 짬밥은 어느덧 소화가 다 돼버려서 배가 출출해진다.

이때가 우리의 밀리터리 특식을 즐길 타이밍이다. 우리는 싸리를 베던 낫과 통신대 가설병들이 사용하는 니퍼, 그리고 빗자루로 만들기에는 두께가 너무 굵어서 한쪽으로 뺴 놓은 싸리나무 한 묶음을 들고 능금나무 길로 올라간다. 나는 선임병이니 그늘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어도 이들이 간식을 만들어 갖다 바치겠지만 그 조리 과정이 재밌고 신기해서 늘 같이 따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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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능금나무가 보일 때쯤이면 길에서 푸드덕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야생동물이 사람을 본지 오래돼서 인기척을 두려워하지 않는 동물들도 있지만 새들은 늘 경계심이 많은 동물이었다. 그런데 휙 하고 날아가버리지 않고 길에서 푸드덕거리기만 하는 놈들이 있는 것이다. 나는 벌써부터 웃음이 터져 나오려고 한다.

산비둘기가 대부분인 이 새들은 잘 익은 능금의 과육과 새콤달콤한 알코올 섞인 과즙을 먹고 있던 놈들로 늦은 오후에 마신 낮술로 야생 조류라는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고 주정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다가가도 백주 대낮에 술파티를 벌인 이놈들은 이륙을 못하고 안타까운 날갯짓을 해보지만 뒤뚱뒤뚱 저마다의 주사로 가관이다. 졸병들은 익숙하게 몇 마리를 주워 철모에 담는다.


그 사이에 다른 졸병은 얕게 땅을 파서 돌로 바닥을 덮고 거기에 술 취한 산비둘기를 내려놓고 다시 돌로 덮는다. 그 위를 싸리나무를 수북하게 쌓은 뒤 불을 피우는데 싸리나무는 불에 타도 연기가 나지 않아서 산아래에서 지키고 있는 소대장이나 선임하사도 우리가 불 피우고 있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렇게 한소끔 싸리 장작을 다 태우고 나면 숯을 걷어내고 돌 속에 파 묻혀있는 비둘기들을 꺼낸다. 이때 장갑을 한 손에 낀 병사가 비둘기의 목을 니퍼로 잘라내면 나머지 비둘기 날개며 털들은 양말 벗어 내리듯 홀라당 벗어지면서 살코기만 한 줌 나오게 된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비둘기 살코기 배를 낫으로 갈라서 내장을 빼내고 고기를 대충 찢어서 깨끗한 싸리나무 위에 찢어 놓는다.

보병들은 여름 내내 탈진을 대비해서 염정을 갖고 다니는데 염정 몇 개를 꺼내서 철모에 넣고 빻아서 고기 위에 뿌려 간을 한다. 역시 싸리나무로 만든 젓가락으로 시식을 하는데 하루 사역을 마친 출출한 20대 청년의 허기에 어디에서도 맛보지 못할 취한 산비둘기 요리라니 게눈 감추듯 없어진다.


야생 조류라서 군내가 나고 고기도 질기기 마련인데 땅속에 묻어서 돌의 열기로 익힌 고기는 부드럽고 식감이 좋았다. 새가 죽기 전까지 술에 취한 상태라서 육질에 야릇한 사과주 풍미가 남아 있는 것이 감칠맛을 더했다. 이렇게 싸리나무 사역을 나가서 술 취한 산비둘기 돌구이를 먹고 내려오다 보면 다른 소대에서도 비슷한 조리를 해 먹고 덮어버린 흔적을 발견할 때도 있다.

그 당시 전방에서 늦가을 특선요리는 구전으로만 전해지던 사병들만의 특식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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