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끼리만나요, 별이 빛나는밤에, 두시의 데이트, 디스크쇼...
국민학교 때 집에 있던 테레비는 아마도 17인치였던 것 같다. 그전에 이모네 집에 있던 테레비는 '금성사' 테레비였는데 무슨 이유에선지 브라운관 앞에 양쪽으로 여닫는 문이 있었고 아마 잠금장치도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집안에서 자치적인 언론 통제(?)의 필요성을 느꼈던 시절인가 보다. 테레비 방송은 채널이 모두 네 개로 2, 7, 9, 11번을 로터리 다이얼을 돌리면 방송이 나오는데 2번은 AFKN이라고 부르던 미군을 위한 방송으로 미국의 공중파 채널인 ABC, CBS, NBC의 인기 프로그램을 선별해서 편집한 내용을 송출했는데 형들과 누나들은 영어 공부를 핑계로 몇 분 보다가 말다가 했던 것 같다. 테레비 방송은 6시가 돼야 시작했는데 우리 동네는 전파 수신이 잘 안돼서 엠비씨는 잘 안 나오고 티비씨와 케이비에쓰가 그나마 볼만큼 나왔는데 제일 잘 나오던 방송은 케이비에쓰였다. 여섯 시에 시작한 테레비 방송은 보통 '플란다스의 개' 나 '독수리 오형제' 같은 아이들 만화영화로 시작해서 '별똥 수색대'같은 어린이 드라마 또는 '호돌이와 토순이'같은 어린이 쑈로 한 시간쯤 하다가 어른 방송으로 바뀌는데 이때부터 채널 선택권이 없어지다 보니 중학생쯤 되고 나서부터는 내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라디오'에 관심을 갖게 된다.
아버지가 듣는 라디오는 큼지막하고 방송도 잘 잡히는데 내가 듣고 싶은 방송보다는 늘상 뉴스나 '광복 이십 년'같은 정치 드라마를 듣고 있어서 나만의 라디오를 원하게 되었다. 그때 알게 된 것이 '광석 라디오'인데 당시 돈으로 백 원 정도로 무척 싼 가격이었고 무엇보다도 건전지가 필요 없이 방송이 나오는 획기적인 물건이었다. 게다가 이 라디오는 원래부터 스피커가 없어서 이어폰으로만 들을 수 있는데 그 점이 무척 매력적이었다. 지금으로 치면 해외여행 가면 시티투어 버스 탈 때 무료로 나눠주는 한쪽 귀에만 꽂는 이어폰을 귀에 꽂으면 뭔가 비밀스럽고 나만의 의식을 치르는 것 같아서 어린 마음에 두근두근 흥분이 됐다.
시간에 맞춰 라디오를 틀면 시작되는 시그널 음악에 머릿속으로 상상의 나래를 편다. 저녁 여덟 시쯤, 밥도 먹고 숙제도 다 마친 시간에 전영록과 서금옥이 진행하는 '우리끼리 만나요'가 시작된다. 당시 전영록은 엄청난 인기의 하이틴 스타였는데 아마 실제 나이는 하이틴을 넘어 그때 이미 20대였을 것 같다. 전영록, 진유영, 손창호, 이덕화 등이 청춘스타였고 임예진이 자주 그들의 상대 배우로 나왔던 시절이다.
'우리끼리'는 지금은 무슨 내용인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지만 이후에 방송이 음악과 디제이 위주의 방송이었다면 '우리끼리'는 청취자가 보낸 엽서의 사연 소개가 더 메인이었던 것 같다. 청취자가 대부분 중고딩이었던 강시에 전국 각지에서 보내온 사연은 아날로그 세상답게 무척 사람냄새나는 내용들이었고 이때 청취자의 엽서가 하도 많이 와서 방송국에서는 엽서를 취급하는 전담 직원이 있을 정도라고 했다. 엽서도 그냥 보내는 것이 아니라 지극정성으로 치장을 하고 여러 장을 연결해서 각자의 창의력과 상상력을 펼친 엽서들이어서 이때 엠비씨에서는 아마 해마다 '예쁜 엽서 전시전'이라는 희한한 장르의 전시 행사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끼리'를 중학생 1, 2학년 때 주로 들었다면 중3 무렵부터는 '별이 빛나는 밤에'를 들었는데 내가 처음 들었을 때는 이수만이 진행하고 있었다. 그러고 얼마 되지 않아서 이수만이 미국으로 유학을 간다면서 젊은 코미디언이었던 서세원이 디제이 자리를 넘겨받았다. 서세원 시절 '별밤'의 인기는 정말 높아서 학교에 가면 다 지난밤에 들은 라디오 얘기로 쉬는 시간이 떠들썩했다. 당시 내가 다니던 학교에서는 엠비씨가 바로 옆이어서 우리는 가끔 '영 일레븐' 공개 녹화 방청을 가기도 했는데 '송골매'와 '산울림'이 한창 청춘일 때였고 혜성처럼 등장한 '사랑과 평화'가 합세해서 통기타 아니면 뽕짝이었던 국내 음악계에 '그룹사운드'라는 형식의 음악을 널리 퍼뜨렸다. 드라마 삽입곡인 '창밖의 여자'로 인기몰이를 한 조용필이 솔로로 나와서 모든 장르의 음악을 히트시키는 기염을 토하고 있었던 시절이다.
'우리끼리'와 '별이 빛나는 밤에'가 시들해지는 것은 이 두 프로그램은 말을 너무 많이 한다는 느낌 때문이었고 '제대로 된 음악'을 듣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기 시작했다. 제대로 된 음악이란 rock이었고 이를 세분화해서 브리티시 락, 하드 락, 헤비메탈, 프로그레시브 락 등 계파 공부까지 하면서 고등학생 때는 청취자 사연이 주를 이루는 라디오 프로그램과 야멸차게 결별한다. AM방송의 지직거림에 거부 반응이 생기고 FM 방송의 쨍한 음질이 귀에 꽂혔던 것이다.
당시에는 이종환의 디스크쇼와 두 시의 데이트가 이런 류의 음악을 소개하고 들려주던 프로그램이었는데 두 시의 데이트는 학교 시간과 겹치니 주말에만 들을 수 있었고 '이종환의 디스크 쑈'와 '황인용의 영팝스'는 밤 시간이어서 더 많이 들었던 것 같다. '박원웅과 함께'라는 프로그램도 있었는데 무슨 이유에선지 상대적으로 덜 들었던 것 같다.
학교에서 선생님들은 재미없고 지루한 내용만을 가르치려고 들 때 라디오 디제이들은 신나고 재미있는 이야기만을 들려주었다. 그래봐야 디제이의 원고도 사전에 검열을 다 받았던 것이라는 걸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적어도 고리타분한 계몽을 하려고 들지는 않아서 같은 얘기를 해도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보다 훨씬 현실적으로 들렸다. 지금 세대가 자주 말하는 '공감' 능력이 우수한 디제이들이었던 것이다.
천사들이 모여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앨범 재킷에 그려져 있던 '블랙 사바쓰'나 멤버 네 명이 기괴한 분장을 하고 사진을 찍은 'KISS', '교육은 필요 없고 선생은 물러가라'는 혁명적 가사 내용을 담은 '핑크 플로이드'까지 십 대 청소년이던 내 마음을 뒤흔들었던 미국과 유럽의 락 그룹들은 내 성장기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부모님들이 걱정했던 것처럼 나는 대마초를 피우지도 않았고 해괴한 가수들의 흉내도 내지 않았다. 지금의 배철수가 그러는 것처럼 당시의 디제이들은 음악성 높은 가수나 그룹을 소개하고 신곡이 있으면 들려주며 가사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주었는데 군사정권 시절이어서 애매한 내용은 대충 얼버무리고 지나갔던 것 같다.
군대를 다녀오고 대학을 마치고 내 차가 생기고 나니 라디오는 이제 차 안에서만 듣는 방송이 되었다. 라디오에 광고가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 때쯤 CD플레이어가 생겼고 좋은 음질로 끊임없이 듣고 싶은 음악만 들을 수 있게 되면서 라디오는 내 손에서 멀어졌다. 언젠가 한번 운전 중에 너무 졸려서 라디오를 틀었더니 청취자가 전화로 진행자와 퀴즈도 풀고 사연도 주고받는 대화를 하는 식의 프로그램이었는데 전화를 걸어온 청취자가 무척 웃기는 아주머니였다. 진행자보다도 더 웃겼던 것 같다. 새삼스레 요즘 라디오 방송의 청취자 참여형 방송을 알게 되었고 잠시나마 피로를 풀 수 있었다.
비디오가 라디오 스타를 죽였다(Video killed a radiostar)는 노래가 있었다. 같은 맥락으로 인터넷이 테레비를 죽이고 넷플릭스가 영화관을 죽일 것이라고 얘기한다. 영향이 있을 것이다. 그래도 언제까지 라디오는 남아있을 것이다. 비상시 소통 수단으로든 운전할 때 잠시 피로를 푸는 용도로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