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방 부대 공연
첫 번째 공연은 최종 리허설을 겸한 사단사령부 본부대에서 있었다.
우리가 그동안 연습장으로 사용하던 강당에서의 공연이어서 무대 설치와 세팅에는 따로 시간이 들어가지 않았고 공간도 익숙해서 별 어려움이 없었다. 다만 객석에는 사병보다 하사관과 장교들이 많았고 사병들도 대체로 행정병 위주의 힘 안 쓰는 보직들이어서 이런 공연이 간절한 기색이라거나 엄청나게 환호하는 그런 무대는 아니었다. 다만 두 명의 여자 가수들에게 큰 관심을 보이고 미미와 티나도 밤에만 하던 공연을 낮에 하려니까 연습 때는 어색해하던 모습이 있었는데 이젠 완전히 자기 본업과 능력을 십분 발휘하고 있었다.
공연은 매일 두 차례 씩 점심시간과 저녁 시간을 이용해서 하는데 공연의 우선순위는 철책을 지키는 병사들 위주로 편성되어 있어서 무지막지하게 험한 길을 M60 트럭 여러 대에 바리바리 실은 무대 준비물과 악기, 조명이 여자들과 정훈부 장교가 탄 지프차를 뒤 따랐고 맨 뒤에 우리 밴드 단원들과 공연 진행자들이 탄 트럭이 길 먼지를 다 뒤집어쓰고 쫓았다.
나는 훈련소에서 신병 교육을 마치고 사단 통신대로 배치받아서 일빵빵 주특기를 받은 내 동기들이 대부분 철책 근무를 하는 연대로 간 것보다는 그래도 나름 '후방'이었는데 공연을 하러 방문하는 부대는 완전히 휴전선 철책 코 앞이었고 그곳의 병사들의 일과는 12시간씩 교대로 철책을 지키는, 말 그대로 나라를 지키는 일을 하고 있는 고난도의 근무를 하고 있었다.
한 겨울에는 영하 30도 이하까지 떨어지고 언제든지 총격전이 벌어질 수 있는 곳이어서 고통스럽고 긴장이 팽팽해서 군기도 센 곳이었다.
아무런 흥미로운 일이 일어나지 않는 이런 지역에 문선대 공연 소식은 소문이 퍼지기 시작된 며칠 전부터 병사들을 흥분하게 만들었고, 마침내 공연 트럭이 줄지어 들어오는 모습이 이들의 시야에 들어왔을 때 병사들은 환호하고 반갑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살면서 이런 뜨거운 환대와 흥분으로 나를 맞아주는 사람들은 처음이었다.
공연은커녕 TV 신호조차 제대로 잡히지 않아서 예능 프로그램 하나도 제대로 보지 못했던 이들에게 내 눈에는 그렇게 유치 찬란하게 보였던 조악한 무대장치와 창피함마저 느끼게 했던 무대의상은 이들 GOP 병사들에게는 '매디슨 스퀘어가든'의 마돈나 공연에 꿀리지 않았다.
공연 병사들 중 제일 졸병인 나는 도착하자마자 무대를 설치해야 했는데 그러는 동안에 어김없이 훈련소 동기들이 나를 찾아왔다. 먼발치로 나를 보고 반가워서 한걸음에 달려온 것이다.
우리는 훈련소에서 6주 동안 두들겨 맞아가며 박박 기고 구르던 전우였던 것이다.
이들이 찾아오면 나도 하던 일을 멈추고 손을 마주 잡고 기쁘게 인사를 했다.
그들은 나를 무슨 출세한 연예인 보듯이 했는데, 온통 초록색과 국방색뿐인 전방 철책에서 반바지에 조리 슬리퍼를 끌고 다니며 노란색 티셔츠에 라이방을 쓴 내 모습은 언뜻 보면 연예인이라 해도 통했을 것이다.
공연이 시작되면 관객들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일부러 박수를 유도하지 않아도 그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를 아낌없이 쳐주었고 별것 아닌 공연 내용에 박장대소했으며 노래가 나오면 자동으로 전원 기립해서 춤을 췄다. 그러다가 여자 가수가 나오면 이들은 이성을 잃고 무대로 달려들었다. 부대 하사관들과 몇몇 초급 장교들이 이들을 막아보지만 몇 달 만에 맡아보는 여자의 분냄새는 이들의 이성을 마비시켰다.
무모하고 용기 있는 몇몇은 무대 위로 올라오는 데에 성공해서 티나와 미미의 손을 잡아보는 행운을 누리기도 했고 티나는 가끔가다 기분이 고조되면 몇몇 병사들에게는 뽀뽀도 해줘서 이들을 미쳐버리게 했다.
낮 공연은 아무래도 관객들이 다 제정신이었고 일과 시간 중이어서 과한 리액션도 덜하고 공연도 대체로 정숙을 유지한 채 진행했지만 밤 공연은 달랐다.
일단 무대부터 높고 널찍한 곳을 찾는 것이 아니라 기울어지고 불편해도 부대에서 정해준 곳에 설치해야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자리는 북한에서 관측하기가 좋은 자리였고 공연방향도 북쪽을 향하도록 했다.
그리고 공연을 보러 오는 병사들은 하나같이 추리닝 차림으로 왔는데 북한군 병사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것들 중 하나가 남한 병사들의 추리닝과 운동화라고 했다.
공연도 일부러 북쪽을 향하는 이유도 우리 병사를 위한 공연이기도 하지만 북쪽을 향한 선전이기도 하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앰프 볼륨을 최대한 빵빵하게 키우고 밴드도 큰 소리로 연주를 했다.
장병들은 미쳐서 날뛰었고 흥분감은 가수들에게도 전달돼서 모두들 소리 지르고 기뻐서 불타는 밤을 보냈다.
밤 공연은 의례히 회식과 연계해서 하는데 술에 취한 병사들은 통제가 어려웠고 무대에 뛰어오르는 병사들을 어무리 막아도 당해낼 수가 없었다. 정말 혈기가 눈에 띄게 왕성한 놈들은 티나와 미미를 만지고 옷을 찢거나 젖가슴을 주물럭 거리기도 해서 두 여가수는 노래를 부르다가 트럭으로 도망가기도 했다.
그런데 예상외로 티나와 미미는 이런 병사들을 좋아했다.
밤무대 가수 생활을 하면서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열광과 환호였던 것이다. 자기에게 이렇게 뜨거운 박수를 보내준 이들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진심이었다.
이들을 정말 가수로 대해주었고 노래를 따라 불렀으며 이들이 웃어주면 대책 없이 흥분해서 소리를 질렀다. 공연을 마치고 녹초가 된 티나와 미미는 언제나 즐겁고 유쾌했다.
다만 이 둘을 따로 불러내서 술 한잔 하자는 장교들이나 꼰대들을 불편해했지만 그들마저도 기꺼이 상대해 주었다.
우리가 방문하는 부대의 부대장은 중대장이 됐건 대대장이 됐건 우리에게 매우 고마워했는데 공연을 마치고 떠날 무렵 우리가 타는 트럭에 맥주와 소주 박스를 한 아름 가져다주었고 연대장이나 대대장이 있는 부대를 들르면 공연 후반부에 무대에 올라와 '금일봉(金一封)'이라고 적힌 봉투를 사회자에게 전해 주기도 했다.
얼마를 줬는지, 그 돈은 누가 가졌는지 나에게는 설명도 해명도 없다가 마지막 공연이 끝나고 포상휴가를 떠나는 날 사회를 맡았던 병장과 밴드의 최고참 병장이 졸병인 우리 몇 명에게 몇만 원씩을 쥐어주었다.
군대가 좋아졌다면서 자기네들이 이등병 때는 때리지만 않아도 감사하게 생각했다는 들으나 마나 한 얘기를 덧붙이면서.
광란의 철책 투어 공연을 마치고 포상 휴가를 다녀오고 부대에 복귀했다.
두 달 남짓한 기간이었지만 참 많은 것을 보고 경험했다.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세상 사람들과 부대끼며 그들의 애환을 들었고 철책에서 힘들게 군생활을 하고 있는 동기들과 잠깐이지만 반갑게 만나서 너무 좋았다.
나는 트럭에 쌓여있는 맥주와 소주를 마구 퍼다 주었고 그들은 별로 쓸데도 없는 탄피로 만든 목걸이나 반지를 내게 주었다. 아쉽고 미안하고 고맙고 반가웠다.
군복무를 하고 있는 젊은 병사들에게 연예인 공연은 느닷없는 행운 같다.
KBS 같은 대형 방송사에서 찾아오는 공연이라면 인기 가수, 유명 연예인이 찾아오는 것이니 가장 반갑겠지만 이들은 최전방을 방문하지는 않는다. 그다음은 군사령부나 군단에서 보내주는 공연단인데 주로 전직 연예인이나 가수들이 출연진이어서 이들의 인기가 아주 좋다.
우리 같은 사단 문선대는 가장 무명의 보잘것없는 출연진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우리는 정말로 적진 코앞까지 가서 공연을 한다. 아마도 북한군들도 망원경으로 우리 공연을 다 지켜봤을 것이다.
의무복무인 군생활을 별생각 없이 하다가 이런 경험을 하게 되니 새삼 분단국가에 살고 있는 느낌이 남달랐고 '나라를 지키느라' 힘들게 생활하고 있는 젊은 20대 병사들에게 측은지심이 생겼다.
내가 만일 이런 경험을 상병이나 병장 때, 말하자면 군 생활에 익숙해졌을 때 했더라면 아마 감회가 조금 달랐을 것 같다. 나 역시 민간인에서 군인이 된 지 얼마 안 지났을 시기에 닥친 이런 경험은 나라와 국가에 대한 인식을 달라지게 했고 추상적이었던 '나라를 지키는 일'이 매우 또렷하고 분명하게 체감되었다.
이후에도 문선대에서는 나를 공연 참가 명목으로 파견을 요청하였으나 나는 자대에서의 근무를 핑계로 거절했다. 내가 속한 통신대대에서의 근무보다 문선대 파견은 훨씬 쾌적하고 편한 생활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한번 경험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왠지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