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선대 공연 임박
군부대 경험이 없는 두 명의 밤무대 여가수와 불과 네다섯 달 전 만해도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백수건달 풋내기에게는 부대 복귀마저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리가 탄 버스는 처음에는 간간히 민간인도 있었지만 춘천터미널에서 정차했다가 다시 출발하자 버스 안은 대부분 전방부대 군인들로 채워졌다.
그리고 철정 검문소가 나왔다.
사회에서는 경찰이 왠지 껄끄러운 존재라면 군대에서는 헌병이었다. 군인도 아닌 미미와 티나도 헌병이 차에 오르자 덩달아 긴장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는데 나는 더 바짝 몸이 움츠려 들었다. 당시의 나는 한눈에 봐도 군인치고는 긴 머리에 이제까지 벗고 있던 이등병 전투모를 갑자기 눌러써서 엉성해 보였고 각종 소품과 의상이 담긴 '사제' 트렁크 가방은 강원도 전방으로 향하는 버스에서 매우 이질적으로 보였다. 한눈에 봐도 일행인 듯한 짙은 화장의 아가씨 둘과 그들이 들고 있는 의상가방과 화장품 가방은 또 뭐란 말인가.
나는 체념한 채 휴가증을 미리 꺼내서 들고 있었다. 두 명이 올라와서 차 안 승객을 눈을 부라리며 고압적으로 쳐다보다가 고참 헌병이 우리 쪽으로 다가오려던 졸병 헌병을 제지하더니 지가 직접 우리에게로 왔다.
'직접 데리러 못 오면 차라도 보내주지...'나는 속으로 정훈부 장교들을 탓했다.
내가 내민 휴가증을 보더니 고참 헌병은 '문선대?' 하며 여자들을 위아래로 쳐다봤다. 묻는 것도 아니고 여자들에게 시선이 계속 꽂혀있자 미미와 티나가 주민증을 꺼내서 헌병에게 내밀었다.
'여기는 괜찮지만 좀 더 지나서는 민간인 통제구역인데 허가증은 없나?'
나에게 묻는 건지, 미미에게 묻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내가 곧 있을 공연에서 노래를 부를 가수로 초청하는 거라고 설명했지만 서류를 달라고 하는 그에게는 아무것도 줄게 없었다. 얘기가 길어지자 다른 병사들이 우리 쪽을 힐끔힐끔 쳐다보기 시작했다. 미미와 티나는 이제 겁에 질려 죄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내가 사단 정훈부와 통화하게 해 주면 정훈참모를 바꿔주겠다고 하자 헌병대 병장은 느릿느릿 차에서 내려가며 여자들에게서는 눈을 떼지 않으며 내게 휴가증을 돌려주었다.
'씨발, 군대 좋다, 누구는 근무서고 새파란 이등병노무 새끼는 서울 가서 여자들이랑 노닥거리다가 복귀하고..."
무사히 검문소를 통과한 것보다 내 계급이 드러난 게 더 창피했다. 한참을 더 달려 길이 한산해지고 불안했던 마음도 좀 가라앉자 티나가 물었다. '이등병이야?' 나는 대답 대신 피곤하다는 듯이 졸린 연기를 하며 고개를 창가로 돌렸다.
사령부로 복귀한 뒤, 검문소 두 군데에서 자꾸 서류를 요구해서 통과하는데 힘들었다고 구시렁대는 내 말에는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고 모두 여자들만 쳐다봤다. 정훈부 대위는 곧바로 여자들과 군악대 연주자들을 강당에 모으고는 무슨 곡을 부를 건지 서로 맞춰보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는 저녁도 먹지 않고 모두 같이 몰려가서 연습을 구경했다. 나를 포함해서 아직 아무도 미미와 티나의 노래를 들어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강당 입구의 작은 사무실은 미미와 티나의 분장실로 바뀌었고 두 사람은 간단히 화장을 고치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왔는데 여자들이 화장을 고치면서 향수도 뿌렸는지 넓은 강당 안에 낯선 여자들의 화장품 냄새와 향수 냄새가 번지자 사병 장교 할 것 없이 가슴이 쿵쾅거렸다.
미미와 티나는 이동할 때나 군인들과 얘기할 때는 주눅이 들어서 목소리도 기어들어가더니 반주가 시작되자 엄청난 성량으로 우리를 깜짝 놀라게 했다. 연주자들과는 키를 높여달라, 어디서는 한 음 낮춰달라 등 당당하게 자신의 요구사항을 양보 없이 관철시켰고 연주사병들과 어느 정도 합을 맞춘 뒤 노래를 불러보는데 노래 실력도 전혀 꿀리지 않았다. 퇴근하려던 정훈참모가 여가수들의 노래를 듣겠다고 하자 미미와 티나는 의상을 갈아입고 왔다. 미미는 민소매에 등이 파진 옷을 입었고 티나는 가슴선이 보이는 반짝이 드레스를 입었는데 강당 무대에 올라 춤을 추면서 경쾌한 뽕짝 두곡과 구슬픈 동백아가씨를 부르자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여자들이 합류하면서 삭막했던 연습분위기는 드라마틱하게 바뀌었다. 일단 욕을 하는 사람들이 없어졌고 별것 아닌 말에 웃음이 터지는 등 여자 두 명은 정훈부 전체를 화기애애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나는 군악대 밴드 단원 전부와 공연팀 모두에게 질투를 받고 있었는데 티나와 미미가 나에게만 편하게 말을 하고 부탁이나 제안이 있을 경우 나를 통해서 할 때가 많아서 두 여자와 내가 보내는 시간이 제일 많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공개적으로 나를 부를 때 거칠게 부르거나 야단쳤는데 그럴 때마다 티나는 '아우, 우리 오빠한테 사납게 하지 마요'하면서 내 편을 들어줘서 더 나를 곤욕스럽게 했다.
두 여자는 참모에게는 '참모님', 대위에게는 '대위님'이라고 부르고 나머지 공연에 참가하는 사병들에게는 다 '아저씨'라고 불렀는데 나에게만 유독 '오빠'라고 불러서 정훈부 고참들과 장교들도 모두 나를 '오빠'라고 놀리듯 불렀다.
두 여성이 나에게 의지를 하고 믿어준 것은 내가 그들을 처음부터 데리고 온 것도 있었지만 도착한 날부터 남자들만 득실대는 부대에서 내가 그들을 위해서 여자 화장실을 지정해 달라고 요청했고 그것도 모자라서 그들이 화장실을 갈 때마다 밖에서 그들을 지켜주었고 밥 먹을 때도 모자라는 반찬을 더 먹을 수 있도록 식판 하나에 충분히 담아 갖다 주기도 했던 것이다.
이제 공연 준비는 최종 리허설 단계였다.
공연에서 실제로 사용할 단을 쌓아서 무대를 만들고 작년 공연에서도 사용했다는 조악한 미러볼과 유치한 조명을 설치하고 모두들 집에서 가져온 무대 의상을 입었다. 연주 사병들은 입대 전 밤무대에서 입었다는 반짝이 조끼와 라이방을 쓰기도 했고 나는 평소에는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고 있다가 연극을 할 때는 내가 청계천에서 사 온 의상을 입었다. 공연 전체 분량은 70분쯤이었고 이 중에서 연극은 20분쯤이고 노래가 30분 정도, 나머지 시간은 장병들의 장기자랑인데 대부분 나와서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는 시간이라고 했다.
실제 의상과 소품을 입고 최종 리허설을 했는데 내가 보기에는 너무나 촌스럽고 시골 유랑악단 같아 보여서 내가 마치 페데리코 펠리니의 영화 <길>에 나오는 '앤서니 퀸' 같고 티나와 미미는 '젤소미나'처럼 느껴졌다.
최종 리허설을 마치고 정훈참모는 장교식당 한편에 회식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이런 일은 흔하지 않은 일이었는지 고참 병사들도 좋아라 했다. 당시로는 매우 귀했던 닭튀김과 돼지고기를 한가득 차려놓았고 피엑스 방위병이 맥주를 여러 박스 갖다 놓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미미와 티나가 편하게 앉을 수 있도록 안쪽에 두 자리를 마련해 놓았는데 회식이 시작되어도 두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나중에 물어보니 중령, 대령들이 우글우글한 읍내 식당에 불려 가서 노래를 하고 같이 술을 마시고 왔다고 한다. 아마도 사령부 참모급 장교들이 정훈참모에게 부탁해서 밖으로 불러내서 오래간만에 술집 여자 끼고 술 마시는 분위기를 내 본 게 아닐까 싶다.
두 여자는 그런 일에 익숙한 듯 별일 아니라는 듯이 내게 말했다.
'군바리들이라 그런지 주물럭 거리기만 하고 졸라 짜네, 씹쌔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