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이 이런 맛이겠구나
지금은 모르겠지만 내가 군에 갔었던 1980년대 중반 무렵에는 102 보충대에서 한번, 사단 신병교육대에서 한번 "나의 20년"이라는 자소서 비슷한 걸 쓰게 된다. 막 입대한 병사들이 사회에서 어떤 전력을 갖고 있었는지를 파악하여 자대배치에 참고하려던 것 같다. 나는 이미 군에 다녀온 형들과 선배들로부터 이런 과정에 대해 들어서 알고 있었고 대처 방법도 특별 지도를 받았다. 지도 내용은 간단했다.
'엄청나게 부풀려라'
'뭐라도', '뭐든지' 부풀려서 내가 대단한 놈이라는 인상을 줘야 철책 근무에 일빵빵 소총수 보직을 면하게 된다는 것이다. 군에서는 어쨌든 다 재교육을 하고 갓 입대한 스무 살짜리 말이 진짜인지 뒷조사를 하는 일은 없으니 무조건 과장하고, 할 줄 아냐고 물으면 자신 있게 할 줄 안다고 큰소리로 대답하라는 것이다.
나는 그대로 했다.
입대하기 전 나는 종로 3가 관철동에서 디제이를 몇 달 한 적이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학교 방송반원으로 방송제를 준비하던 중 음향효과음이 필요해서 MBC 라디오국에 방문해서 드라마 PD에게서 앞으로는 이런 일로 방송국에 찾아오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 원하던 음향을 얻어 갔던 적이 있었다.
이런 내 이력은 '나의 20년'에 '유명 음악다방 전문 DJ'와 'MBC 라디오 스크립터'생으로 포장되었는데 나와 같이 입대한 동기생들이 모두 서울 출신 병력들이긴 하지만 육군 보병 사단에서도 내 이력은 무척 튀는 것으로 여기고 따로 빼두었다. 나는 다른 동기들과 함께 4주간 '병 공통과목' 신병 교육을 받고 나머지 2주간의 '주특기' 교육 역시 소총수 교육을 받으면서 결국 실낱같은 희망을 접어야 하나 했는데 하나님이 보우하사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신교대 퇴소하기 며칠 전 오후, 한참 퇴소식 열병 연습을 하고 있던 도중에 사단 사령부에서 지프차가 하나 연병장으로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 들어온 것이다.
그리고 나를, 그 많은 훈련병중에서 나를 콕 집어서 호출했다.
기가 막히게도 나를 찾은 것은 장교도 하사관도 아닌 같은 사병 두 명으로 사단 정훈부에서 나왔다며 내가 적어 낸 '나의 20년'을 들고 있었다. 각각 병장과 상병인 이들은 가을에 있을 문선대 공연을 위해서 공연 경험이 있는 인력을 차출 중인데 주로 사회에서 밴드 생활이나 '오부리'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군악대에로 데려가고 연극이나 무대 활동 경력이 있는 사람들은 데려다가 콩트나 단막극을 하려고 한다고 했다.
대부분 지방 밤무대 출신인 이들이 보기에 서울의 한복판 종로에서 DJ를 하고 MBC라디오에서 활동한 경험도 있다는 나는 '왕건이'에 속하는 발견이었다.
이들도 곧이곧대로 내 소개 내용들을 다 믿지는 않았다. 검증의 시간이다.
"지금 여기가 DJ박스라고 생각하고 멘트 한번 해 봐."
신병으로 군기가 바짝 든 나는 처음에는 악을 써가며 대답하다가 그들이 나를 향한 시선에 존경과 부러움이 섞여있다는 것을 간파하고 나는 어느새 사회인의 음성으로 톤을 낮췄다
"DJ 박스가 아니고 DJ부스라고 합니다." 나는 고참 사병의 오류까지 시정해 주면서 뻐꾸기를 날리기 시작했다.
"... 1960년대 뉴욕 인근에서 벌어진 엄청난 규모의 야외 공연 우드스탁에서 자신의 인지도와 진가를 선보인 지미 헨드릭스는 이후에도 왕성한 활동을 벌이며 천재적인 기타리스트로써의 면모를 이어나갔는데 그가 연주한 명곡 미국의 국가이기도 한 The Star Spangled Banner를 들어보시겠습니다. 어쩌고... "
확신컨대 그들은 내가 하는 말의 반도 이해하지 못했다. 내 말을 끊더니 그들은 황급히 다음 질문을 했다.
"야, MBC에서 했다는 거, 스크립트, 그게 뭐야, 그거 한번 해 봐"
"아, 스크립터 말입니까?"
"그래, 스크립트... 그거..."
솔직히 나도 그게 뭔지 모르고 쓴 말이었다. 스크립터는 사실 영화계에서 연출을 돕는 연출부원중 한 명을 말하는데 라디오국에서 그런 보직이 있을 리 만무했다.
"아, 그건 저 혼자서 하는 게 아니라 피디 님하고 같이 하는 거라서..."
"아, 하긴, 그렇지. 그래 그럼 그건 됐다."
뭔가를 더 묻고 나는 계속 허풍 섞인 거짓말을 지껄여댔는데 그들이 떠나고 나서, 아쉽게도 내 신변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고 나는 사단 직할 통신병으로 배치를 받았다. 그리고 무더위가 물러가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 중대장이 나를 찾는다는 소식을 듣고 중대 행정실로 갔다.
"야, 너 사회에서 뭘 하다가 온 거야? 이게 뭐야, 문선대 파견?"
나는 속으로 아싸! 하고 외쳤다. 드디어 너희가 나를 부르는구나.
다음날 오전 나는 대대장에게 파견 근무 보고를 하고 사단사령부 본부대로 갔다. 내가 제일 늦게 왔는지 이미 군악대에서 열명쯤의 밴드단원들이 와 있었고 연극과 공연 진행을 할 병사들이 와 있었다. 이등병은 나와 또 다른 한 명으로 그는 밤무대 가수였다. 지금 기억으로는 가수가 두 명, 연극배우가 세명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기타나 드럼, 관악기를 하는 밴드 출신이었는데 나는 아직 뭘 할지 정해놓지 않고 있었다.
내가 근무하던 부대에서는 만날 일이 별로 없던 대대장을 제외하고는 육군 대위인 중대장이 내가 만날 수 있는 최고 계급이었는데 사단 정훈부에서는 중령인 정훈참모가 나를 앉혀놓고 공연 계획을 설명해 주었다.
그의 요점은 이런 식으로 하는 군부대 공연에서 네가 무슨 일을 맡을 수 있겠느냐는 것인데 그건 나도 몰랐다.
나는 슬슬 겁이 나기 시작했다.
그들이 말하는 '공연'이라는 건 내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세계의 일인데 그들은 단지 내가 서울 출신이고 종로에서 놀아봤다는 것, MBC에서 뭔가 했다는 것을 엄청나게 높게 평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차라리 다 솔직하게 털어놓고 영창을 갈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가, 그들이 아쉬워하는 연극배우를 한번 용기 내서 해볼까 망설이고 있는데 정훈부 중위가 참모에게 건의를 했다.
"얘가 종로에서 DJ도 했는데, 연극보다 차라리 사회를 맡기시죠."
나는 길지도 않은 머리칼이 쭈삣 솟아 일어서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원래 사회를 맡기로 했던 병장, 그러니까 나를 훈련소에서 면접했던 병장이 자기 자리에 위기를 느꼈던지 벌떡 일어나서 말했다.
"안돼요, 김중위 님, 얘 이제 이등병인데 얘가 철책 앞에서 한 번도 안 해본 쑈 사회를 어떻게 보겠어요."
그런데 정훈참모는 중위의 말을 무척 그럴듯하게 생각했다.
"그래, 사회를 봐도 좋을 것 같다. 그런데 최병장 말대로 문선대 공연이라는 것은 얘가 듣도 보도 못했을 테니 이번 공연에서는 연극을 시키고 다음 공연에서 사회를 맡겨보자."
나는 기꺼이 다음날부터 사단 연극배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