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고 나이 들어서 좋은 건 거의 없다.
젊고 어린것들은 대체로 좋다.
좋아본 시절을 겪어봤기 때문에 늙고 나이가 들면 더 서럽다. 나도 좋은 시절이 있었거늘...
40대, 나이 마흔에 들어서다 마주치게 되는 첫 번째 부당함은 "불혹"이라는 단어로 이 나이대를 칭하면서 노련하고 원숙한 '어른'의 모습을 기대한다는 것이다. 하긴, 마흔 해를 살았으니 얼마나 오래 산 것인가, 웬만한 동물들은 이미 마흔살을 맞기 전에 수명을 다해 죽어버린 지 오래인데 사람만이 그제야 어리숙한 초보티를 벗어나서 생애 전성기를 맞은 듯 활기차고 정력적으로 일하는 시기에 들어서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나이 마흔이 세상 일에 미혹하지 않을 나이라고? 어쩌면 나이 40이 가장 유혹이 많을 나이라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40대는 유혹에 흔들리지 않을 나이가 아니라 유혹에 가장 시달리는 나이이고, 그리고 안타깝게도 대부분은 그 유혹에 굴복했다가 나머지 40대를 자신의 나약함을 후회하면서 50을 맞게된다.
그리고 오십!
이제 반이 꺾였고, 지는 해다. 오십견을 비롯해서 몸 여기저기서 이상이 발생한다. 눈은 침침해서 돋보기를 찾게 되고 건강검진 후 고혈압, 콜레스테롤, 당뇨의 3종세트 협박을 받게 된다. 검진 결과를 입증이라도 하듯 지나가는 감기에 한 번 걸렸더니 오랫동안 눕게 된다. 이렇게 한두 번 된통 앓고 나면 그제야 내 한 몸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가는 한 방에 가겠구나 생각이 들어서 욕심껏 정관장을 비롯한 보양제와 비타민 등 몸에 좋다는 약과 음식을 챙겨 먹기 시작한다.
컨디션도 좋고 이런저런 수치들도 안정권이어서 잠시 방심하고 있을 때, 도적처럼 비보가 날아든다. 친했던 사촌이나 동료직원, 소식 없던 고등학교 동창의 부음이다. 죽음이 내 또래까지 다가온 것에 화들짝 놀라고 '재수 없으면 백 살까지 산다'는 말이 나와는 상관없는 공허한 농담으로 들린다. 어쩌다 듣게 되는 치매 노인의 딱한 소식이 남의 일 같지않게 느껴진다. 새삼스럽게 죽음을 진지하게 생각해보면서 주변 사람 힘들게 하지 않고 곱게 가고 싶다는 소망이 생긴다.
그래서 시작한다, 걷기, 수영, 등산, 탁구, 배드민턴...
다달이 내 봉급에서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세금을 떼어가더니 동네마다 주민센터나 시에서 운영하는 스포츠센터가 시설도 깨끗하고 가격도 저렴하다. 어찌해야 다닐 수 있나 알아보니 인터넷으로 월말에 신규 접수를 해야 하고 '싸고 좋은' 물건이다 보니 늘 경쟁이 치열해 추첨을 거치는 경우도 많다. 어찌어찌 당첨이 돼서 다녀보니 안에는 죄다 상 늙은이들 뿐이다. 70도 어린 축이고 80대도 적지 않으며 형형한 눈빛으로 체력을 과시하는 90대는 불사조라도 되는 양 잔뜩 힘을 주고 다닌다. 그 무리들 속에 섞여서 함께 운동하고 형님, 동생 어쩌구 하면서 흰소리를 나누며 교류하는 것은 영 내키지가 않는다. 단박에 늙은이임을 스스로 인정해 버리는 꼴이 되버리는 것 같기 때문이다. 늙은이 소굴을 박차고 나와서 값은 좀 나가지만 번쩍번쩍 최신 기구에 틀어놓는 음악도 세련되고 트렌디해서 저절로 젊어질 것 같은 짐gym을 방문한다. 아니나 다를까 늘씬하고 건강한 젊은 트레이너들이 활보하는 모습에 충동적으로 6개월 회원권을 결재한다.
보통은 '회원님'이라고 불러주지만 이전에는 어디서 아르바이트를 했는지 한 신참 직원이 '아버님'이라고 부르는 소리에 덜컥 짜증이 날 뻔했다. 60대가 된 이후로 가장 듣기 싫은 말이 아버님, 어르신 같은 말이다. 저희들끼리도 그렇게 부르듯이 나에게도 ~ 님이라고 부르는게 어려울 것은 없지 않은가. 호칭으로 싫은 기색을 한번 했더니 이후로 직원들은 나에게 더 깎듯이 대해주는 것 같긴 한데 진정성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자기네들끼리 시시덕거리고 유쾌하게 대화를 하다가도 내가 다가가면 말이 끊기고 슬슬 눈치를 보다가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기는 것이 나를 피하는 건가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어느새 나는 젊은 친구들이 많이 몰리는 저녁 8시쯤의 퇴근 무렵과 주말 점심시간 무렵을 피해서 짐을 다니게 된다. 북적이는 시간이 싫기도 하지만 기왕이면 한가하고 여유로운 시간에 나를 불편해하지 않는 분위기에서 운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 편하게 운동을 할 수는 있게 됐지만 내가 운동할 때 주위를 둘러보면 다 고만고만한 중늙은이들만 모여있다. 대화를 나누어보거나 묻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나와 비슷한 경로를 거쳐서 이 시간대에 오는 것이 아닌가 싶다.
보통은 아내에게 편하게 하는 소리이지만 내가 하는 말의 반 이상은 결국 사회와 주변에 대한 불평불만 뿐이라는 지적에는 나도 할 말이 없다. 젊을 때에도 옳지 않은 것을 보면 한소리 하는 성격이긴 했으나 이제는 세상만사가 제대로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아파트에서 안내하는 공지사항을 들어도 저절로 불평이 나오고 뉴스를 보다가 신문을 읽다가 세상 탓, 정치인 탓을 늘어놓게 되는데 그런 나를 보고 아내는 세상에 둘도 없는 투덜이라고 지청구를 한다. 하지만 내가 틀린 말을 한 적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럼 아닌걸 아니라고 해야지, 이만큼 살아오면서 내가 보고 배운 게 있는데 불의와 불합리를 보고 어찌 그냥 지나치라는 말인가. 나는 민주시민의 정당한 비판의식을 자유롭게 표현했을 뿐이다.
늙는 건 서럽다.
어린 아기는 기저귀 밖으로 삐져나올 정도로 똥을 푸지게 싸도 '우리 아기는 똥도 시원하게 잘 싸네' 하고 칭찬을 받지만 노인네는 젊은 자식 부부 폐 안 끼치려고 아침 일찍 일어나 동네 산책을 나가도 '노인네가 새벽부터 기척도 없이 사라져서 사람 놀래킨다'고 핀잔을 듣는다.
너희도 늙는다. 나도 젊을 땐 몰랐다. 그런데 다 한 때, 잠깐일 뿐이다.
화무는 십일홍이고 달이 차면 기운다는 것을 왜 젊은이에게는 먼 이야기로 들린단 말인가.
늙은이를 대접해 달라는 비굴한 청탁이 아니다. 너도 결국 늙은 내가 되고 그러면 느끼게 되는 장년의 서러움은 결코 작지 않으니 여기서 더 기를 죽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네 젊음이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란 말이다, 이놈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