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중국에 1년간 교환교수로 가족들을 데리고 나가 있을 때 누나 부부가 방학 때에 맞춰서 놀러 왔다. 우리는 중국 남쪽의 '시솽반나'라는 태국 소수민족들이 산다는 열대 지역으로 여행을 가기로 했는데 중국 국내선 비행기를 타야 했다. 나는 사전에 항공권과 현지 관광 가이드, 에어비앤비 숙소를 예약해 두었다.
여행일 아침에 택시 두 대에 나눠 타고 공항에 도착했는데 새치기하는 중국인들 덕분에 체크인 수속이 느려서 겨우 시간에 늦지 않게 검색대를 통과하고 탑승 게이트 근처에 도착했다. 그런데 우리가 탑승하는 게이트에서 좀 떨어진 식당 구역에 KFC가 있었다. 중국 변방에 사느라 패스트푸드 금단증상이 심했던 우리 아이들은 백인 할아버지 로고를 보자마자 갑자기 눈이 커다래지더니 치킨을 지금 꼭 먹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허둥지둥 달려왔던 누나도 조카들에게 간식을 사주겠다고 해서 모두 한숨 돌릴 겸 잠깐 쉬었다 가기로 했다.
국내선 왕복 항공권 예약을 한 우리는 제시간에 공항에 도착해서 수속을 마친 후 보딩패스를 받았고 수하물도 다 부쳤다. 검색대도 무사히 통과하고 그때마다 여권과 보딩패스를 확인했다.
보통 이런 경우에는 승객이 보안구역 탑승구 부근에 있다는 게 확인된 것이기 때문에 승객이 탑승하지 않았다면 출발시간이 되어도 그대로 떠나버리는 게 아니라 방송을 하거나 승객을 찾으러 항공사 직원이 돌아다니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내가 그런 경험이 있다는 게 아니라 그런 민폐 승객들을 공항에서 심심치 않게 본 적이 여러 번 있었고 그렇게 늦게 탑승하는 승객 한두 명 때문에 제시간에 출발을 못 해 본 경험이 누구나 있지 않느냔 말이다.
탑승 시간이 가까웠지만 오랜만에 치킨을 먹으며 행복해하는 아이들을 채근하기도 그렇고 해서 우리는 중국 향신료 냄새가 풍기는 것 같은 KFC 커피를 마시다가 아이들을 데리고 일어났다. 좀 바쁜 마음은 있었지만 그때까지도 탑승 시간이 10분은 남아 있었다. 시간을 확인하고 게이트에 도착했는데 이상하게 탑승구에 출입을 차단하는 줄이 쳐있고 탑승 카운터에는 직원이 아무도 없었다.
'이럴 줄 알았어. 공항 사람들이 제 시간을 지킬 리 없지.'
나는 우리가 너무 빨리 온 것이라고 의기양양해하며 게이트 앞에 텅 비어있는 의자에 앉으라고 아이들에게 손짓했다. 그런데 공항 창 밖으로 보이는 에어차이나 항공기에 수하물 트럭과 공항 유니폼을 입은 직원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게 보였다. 별로 할 일이 없어진 나는 그들이 무엇을 하나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비행기 출구가 닫히고 연결된 탑승 램프 차가 철수하려는 항공기에서 가방들을 끄집어 내렸다.
헐.... 우리가 부친 짐들이었다. 내 가방이었다.
그때 보딩패스 아래쪽에 인쇄되어 있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탑승 시간 30분 전에 게이트를 닫습니다"
그제야 나는 탑승이 마감되었고 비행기에 타지 않은 우리 짐들을 끄집어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리 중에는 아무도 그 상황을 중국어로 하소연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나는 근처의 1등석 라운지로 달려가 영어가 되는 직원에게 우리가 이제라도 탑승할 수 있도록 항공사에 연락해 달라고 부탁했다.
택도 없는 소리였다.
공항 랜드사이드에서 체크인 수속을 마친 승객은 검색대를 지나 탑승 게이트로 가게 되는데 이때 승객들은 반드시 한 방향, 즉 탑승구 쪽으로만 걸어야 한다. 검색대를 지난 승객이 뭔가 필요한 일이 있다고 다시 체크인 카운터나 공항 청사로 돌아가는 일은 허락되지 않는다. 공항에서는 오로지 일방통행인 것이다.
다시 체크인 카운터로 가서 항공권을 재발급해야 하는 우리는 일방통행 공항길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야만 했다. 모두 한 방향으로만 걷던 여행객들은 마주 걸어오는 우리가 성가셨는지 아니면 신기했는지 힐끔힐끔 쳐다봤다. 마주치는 공안과 경비원들은 우리를 제지했고 그때마다 우리는 번역기를 통해 우리 상황을 설명해야 했다. 모든 경찰들에게 사정을 설명하는 우리가 딱해 보였는지 친절한 공안 아가씨 한 명이 우리를 카운터까지 호송해 주었다. 보안검색대에 다다르자 아가씨는 직원에게 뭐라고 설명을 했고 우리를 한 명 한 명 사납게 쳐다보던 검색대 직원은 우리가 나갈 수 있도록 길을 터줬다. 좀 전까지 자신만만했던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아가씨 뒤꽁무니만 따라갔다.
영어가 통하는 체크인 카운터에 도착하자 얼마 전 내 수속을 도왔던 체크인 창구 아가씨는 왜 비행기를 놓쳤냐며 핀잔을 주었다. 나는 그날 오후에 시솽반나로 가는 비행 편이 있기는 한지, 또 있다고 해도 그 항공기에 우리 가족 여섯 명이 탈 빈자리가 있는지 속이 탔지만 의외로 일은 술술 풀려서 도착 시간이 네 시간쯤 지연되었다는 것 말고는 큰 탈없이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가족들과 함께 즐거운 4박 5일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우리는 공항에 세 시간도 더 일찍 도착해서 아직 열리지도 않은 체크인 카운터 앞에서 기다렸다가 검색대를 통과해 도착한 게이트 앞에서는 두 시간도 더 기다리며 주구장창 앉아있었다. 공항에 도착할 때까지만 해도 모두 웃고 떠들고 신나는 분위기였지만 공항에서부터는 그렇게 오랫동안 기다리면서 아무도 불평하지 않고 얌전하게 있었다. 말수 적고 내 속을 헤아려주는 매형이 굳게 닫힌 탑승 게이트를 보시더니 은근하게 나에게 다가와서 작은 소리로 물었다.
'처남, 우리 늦은 거 아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