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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프로 Feb 18. 2024

살면서 겪지 말아야 할 일 - 치질

그것이 감기든 대상포진이든 병에 걸려서 좋을 건 없다. 

병을 앓고 난 후의 교훈으로 이후에는 조심해서 다시는 병에 걸리지 않았더라, 이런 사례는 없다고 봐야 한다.

병은 무조건 걸리지 말아야 한다. 

그중에서도 치질은 절대로 걸리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누가 병에 걸리고 싶단 말인가. 모두 다 피하고 싶지만 재수 없게, 어쩌다 걸리는 게 병 아닌가 말이다. 

아니다. 암이라면 저도 모르는 사이에 걸릴 수 있겠지만 치질은 안 걸릴 수 있다. 

치질은 예방하고 조심하면 안 걸릴 수 있다. 

나야 이미 치질의 구렁텅이에 빠져 만신창이가 된 몸이지만 아직 안 걸린 이들이여, 제발 조심하라. 

당신이 다음 환자일 수 있다. 


내 경우, 처음은 변비로 시작되었다. 

운동을 열심히 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군살이 빠지고 근육이 늘면서 몸이 예뻐지기 시작했는데, 여기에 더해서 달리기에 재미가 들린 것이다. 이미 군살이 없는 몸에 하루가 멀다 하고 10킬로, 20킬로를 달리기 시작하니 하루 한번 화장실 가던 간격이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다. 


힘을 주면 변을 보는 일이 가능했지만 변이 딱딱하고 항문에 통증도 약간 느껴졌는데 가끔씩은 피가 묻어 나오는 일도 있었다. 처음엔 놀랐지만 검색해 보니 병원에 가야 하는 정도의 일은 아니었다. 비데의 물줄기세기를 약하게 하고 조심하면 금방 가라앉았고 아내는 내 변비를 예방하기 위해 요거트와 키위, 바나나를 갈아주었다. 

증상은 호전됐지만 가벼운 변비는 가끔씩 불청객처럼 왔다가곤 했다. 


그러고 나서 이번 겨울 내내 나는 무려 두 달 가까운 기간 동안 감기에 걸려있었다. 

병원을 세 군데를 옮겨 다니며 링거도 맞고 처방약을 달고 살았는데 이렇게 오랫동안 약을 연속적으로 복용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겨우내 집에서 감기와 씨름하느라 아무것도 못하고 당연히 운동도 하지 못하게 되니 우울감도 커졌다. 그렇게 어렵게 감기를 이겨낼 즈음 오래 복용한 처방약 탓인지 아니면 운동을 중단한 탓인지 제대로 된 변비가 찾아왔다. 


화장실 벽을 붙잡고 간절한 마음으로 용을 쓰는 그 심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모든 힘을 몰아 쓰고 얼굴로 핏줄이 모여 머리가 터져버리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배변 노력을 했지만 결국에는 아무것도 빼내지 못하고 진이 빠진 채 화장실 밖으로 나오면 옷은 땀으로 젖어있고 하늘이 노래질 정도였다. 


변비를 누구러 뜨리고자 물과 차를 열심히 마시고 차전자피도 먹으며 어렵게 똥을 만들어 배변에 성공한 날, 날아갈 듯 상쾌해야 했지만 항문의 느낌이 너무 안 좋았다. 너무 아팠다. 나는 이것이 치질이라는 걸 직감했다. 


치질이라니, 치질이라니...

이제 감기에서 해방되어 운동을 시작하고 달리기를 시작했을 뿐인데 이제는 치질이라니...


항문밖으로 뭔가가 튀어나오지는 않았지만 배변을 할 때면 식은땀이 나고 저절로 비명이 나올 정도로 아팠다. 배변 후에도 항문 주위와 항문 안 쪽으로 콕콕 쑤시는 통증이 계속되었고 앉아있어도 아프고 누워있어도 아팠다. 검색을 해보니 수술을 한 사람들의 경험담이 많았고 병원에서 올려놓은 홍보성 댓글은 수술로 완치 가능하고 3일에서 5일 정도 입원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내 느낌으로는 내 증상이 수술을 요할 정도의 중증은 아마도 아닐 것이라는 것이었다. 치질로 본격적인 고생을 한 것은 아직 일주일도 안된 상태였던 것이다. 그리고 정말로 수술만큼은 최후까지 미루고 싶었다. 

아직 먹는 약도 바르는 약도 시도해 보지 않은 상태이니 일단 약으로 치료를 해보자는 마음이 들었다. 


치질 약은 처방전 없이 약국에서 구입할 수 있다. 

먼저 바르는 약을 항문에 바르고 좌욕이 좋다고 해서 좌욕 전용 용기를 구입해서 변기에 올려두고 5분씩 따뜻한 물로 좌욕을 했다. 낮은 수압의 비데로 항문을 세척하고 깨끗한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내고 알코올 스왑으로 항문 주위를 소독한다. 손가락도 알코올로 닦은 뒤 연고를 짜내어 항문에 펴서 바르면 연고의 국소마취 성분 때문에 일시적으로 통증이 가라앉는다. 항문 안쪽으로도 통증이 느껴져서 연고에 동봉되어 있는 항문 삽입용 봉을 연고에 끼워서 항문에 조심스럽게 삽입하고 연고를 짜 넣는다. 항문에 뭔가를 삽입하는 일은 아마도 대장 내시경이 아니고서는 처음 있는 일일 것이다. 

먹는 약은 하루에 두 번 먹으라고 했는데 증상이 심하면 네다섯 번 이상 먹어도 괜찮다고 했다. 

먹는 약과 바르는 약을 병행해서 치료한 지 3일째인데 증상은 많이 가라앉았지만 여전히 통증은 나를 괴롭히고 있다. 운동도 하고 달리기도 할 수 있지만 아침에 배변을 한 뒤에는 통증이 극에 달한다. 좌욕을 하면서 며칠 더 치료하면 배변 시 통증도 가라앉기를 기대한다.   


치질은 좌욕을 하는 과정과 항문에 약을 바르고 처리를 하는 일이 번거롭고 자존감을 떨어뜨린다. 화장실에 쭈그리고 앉아 항문에 연고를 바르기 위해 알코올과 면봉 등을 챙기면서 식구들에게도 면구스럽다. 


화장실에 오래 앉아있지 말고, 변비 생길 일을 사전에 예방한다면 치질은 피해 갈 수 있을 것이다. 

제발, 꼭 피하시라.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몸과 마음이 피폐해지는 경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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