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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프로 Jun 11. 2024

마라톤보다 더 힘든 일= 마라톤 접수!

6월 11일 오전 10시 서울 Race 접수!

살면서 늘 투덜거렸던 것 같아서 이젠 안 그러려고 하지만 가끔은 정말 어쩔 수가 없다. 

왜, 왜! 아, 왜!!!

내가 뭘 좀 하면 왜 다 따라서 하는건데???


내가 캠핑 좀 하려니까 모두들 리빙쉘과 타프를 들고 산과 강으로 쳐 들어오고, 내가 산에 좀 오르려니까 히말라야에 한국인 등산객들로 가득 차고, 내가 한적한 스페인 순례길 좀 걸으려니까 산티아고 순례길 해외 방문객 3위가 한국이란다. 


그러니 내가 달리기를 시작할 때부터 나는 알아봤다. 이젠 모두들 또 달리기 시작하겠구나.

그리고 내 예감은 이번에도 정확히 들어맞는다. 정말로 모두들 마라톤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같은 인기 높은 <서울 Race> 마라톤 접수일에는 모두들 출근도 않고 학교도 안 가고 컴퓨터 앞에서 또는 5G 휴대폰을 앞에 두고, 심지어는 그 둘을 모두 사용하여 참가 접수를 하려고 열정적인 클릭질을 해대는 것이다. 


이제까지 나는 전적이 좋다. 

올봄에 있었던 동아 마라톤도 한 번에 성공해서 추가 모집이나 취소분, 잔여분을 찾느라 마음 쓸 필요가 없었고, 올 가을에 있을 JTBC 풀코스도 가까스로 접수에 성공했다. JTBC 접수에 실패한 이들은 일종의 끼워 팔기인 마라톤 참가권과 이어폰, 에너지젤, 호텔숙박권 등을 함께 구입하면서까지 참가 등록을 했으니 지금 대한민국은 모두 마라톤에 진심인 듯하다. 


오늘 오전 10시. 

나는 느린 와이파이를 버리고 데이터로 접속한 아이폰과 데스크톱에 서울 Race 등록 플랫폼인 동마클럽 홈페이지를 열어두고 미리 로그인을 한 상태로 9시 50분부터 대기했다. 동마클럽 홈페이지에는 아직 서울레이스 창이 올라오지 않아서 딱히 할 일은 없었지만 10시가 되자 짜잔 하고 창이 떴다. 

클릭을 여러 번 해봐야 속도만 더뎌질 뿐이라 핸드폰으로 한번, 데스크톱으로 한번 신청 창을 열었다. 

먼저 종목을 골라야 한다. 

11km와 하프 코스 중 선택. 

티셔츠 사이즈 선택.

긴 양말 받을지, 짧은 양말 받을지 선택.

개인 정보 동의.

얼굴이 촬영되어도 괜찮을지에 동의함.

이제 대망의 결제만이 남았는데 여기서부터 메롱이다.

무한 반복되는 <세트상품을 추가해 주세요>라는 메시지.

무한 반복되던 화면들...많은 이들이 여기에서 포기한 듯 하다.

이럴 때 흥분해서 포기하거나 뒤로 가기를 하면 망한다는 걸 알고 있다. 몇 번 재시도 후 핸드폰을 버리고 다시 데스크톱으로 시도한다. 여기는 아예 창도 열리지 않고 점선 동그라미만 뱅뱅 돌아간다. 다시 핸드폰으로 재시도...


마음을 편안하게 먹고, 나만 이러고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에 위안을 가지며 계속 재시도를 하고 결제창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면 될 줄 알았지... 계속 반복... <세트상품을 추가해 주세요>  그래, 세트 상품을 얼마든지 추가해 주마라고 호기롭게 기다리던 내 인내심이 바닥날 즈음, 할렐루야! 결제창이 떴다!

접수가 된 것이다. 이제 돈만 지불하면 된다. 역시 나는 접수 운이 좋아! 


그런데 결재를 하려고 보니 결제대금이 133만 원이다. 마라톤 한 번에 1,330,000원!

내역을 살펴보니 세상에! 내가 그동안 클릭했던 것이 모두 누적되어 장바구니에 담겨서 나는 무려 19번의 참가 신청을 한 것으로 되어있었고 지금 수량 변경을 한다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갈 것만 같았다. 

그래 결재하자, 까짓 거 133만 원. 

나는 주관사인 동아일보사가 나와 같은 신청자들을 잘 헤아려서 나머지 금액은 돌려줄 것이라고 확신했다. 

지불버튼을 클릭하니 결재 만큼은 번개만큼 빠르게 내 신용카드에서 빠져나갔다. 

133만원이 결재되어 변경을 요청한 화면. 결과는 변경되지 않고 전체 취소되어버렸다. 

다시 홈피에서 마이페이지를 통해 접수 결과를 확인해 보니 정말로 19개의 하프코스에 접수된 것으로 나왔다. 상세 보기에 들어가서 참가수량 조정메뉴가 있길래 18개를 삭제하고 하나만 남기는 것으로 수정했다. 

여기까지 하고 나니 한 시간이 훌떡 지나가 있었다. 세상에 접수에만 한 시간이 걸린 것이다.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일을 하다가 오후에 내가요청한 수정사항이 반영되었는지 확인차 재접속해 보았다. 헉! 내 접수는 모조리 삭제되어 있었다. 사색이 되어서 동아마라톤 사무국에 전화를 걸어봤지만 계속 통화 연결에 실패했다. 굴하지 않고 몇 차례 더 시도한 끝에 상담원과 통화가 되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상담원은 접수에 사용한 내 휴대폰번호를 사용하여 내 기록을 확인해 주었다. 

오전에 나와 같은 중복 접수자가 많아서 지금 조정 중이고 나도 거기에 해당하니 수정될 것 같다고 했다. 

수정될 것 같다니? 말끝을 흐리는 걸 보니 상담원도 확신을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내가 마음을 놓지 못하고 있는걸 안 상담원은 자기가 내 접수상태를 확인해서 전화를 해주겠다고 전화 끊고 기다리라고 안심시켜 주었다. 


오후 네시가 못되어 전화가 왔다. 내가 요청한 대로 수정했다는 것이다. 

친절한 상담원과 통화를 마치고 다시 홈피에 접속하여 내 눈으로 직접 확인을 하고 나서야 마음이 놓인다. 

오늘 하루를 마라톤 접수에 다 사용한 것과 다름없다. 

어쨌든, 나는 이렇게 접수에 성공했다. 할렐루야!    


달리기보다, 달리기만큼 힘든 마라톤 대회 접수, 21세기 AI 시대에 좀 더 나은 방법은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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