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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프로 Jun 18. 2024

요즘 학생들끼리 호칭 "00님"!

존중이야, 거리 두기야?

지난주(6월 14일)로 이번학기 수업을 모두 끝냈다. 

2024년 1학기가 끝이 난 것인데 이제 나는 학생들이 제출한 기말고사 대체 과제와 이런저런 평가 대상 자료를 보고 성적 입력을 해야 한다. 성적 입력을 하려면 우선 출석부를 확인하여 공결 신청 학생들을 처리하고 출석 마감을 한다. 그런데 팀별 작업과 공동 과제로 수업을 진행하는 과목이 많은 내 경우에는 팀원들의 작업 참여도를 평가에 반영하는데 학생들이 같은 팀원들을 가리키는 호칭을 보면서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이들은 이제 서로를 '누구누구님'이라고 부른다. 즉 철수님, 영희 님 이런 식으로 서로를 칭하는 것이다.  교수인 내 앞에서만 이러는 걸까 싶어서 이들의 팀별 회의에 참석해 보았는데 역시 자기네들끼리도 마찬가지였다. 


"$$님, 지난번 회의록에 첨부한 파일 PDF로 올려주세요."

"@@님, 그래픽 작업 마치면 회의에서 컨펌받고 렌더링 하는 게 좋겠어요."


나는 처음에 '##님'으로 부르는 학생이 상대 학생의 후배려니 했는데 ~님으로 부르는 데에는 학번의 고하가 없었다. 엄격한 선배와 새내기 신입생이 아니어도 이들은 나 모르게 그런 식의 호칭을 합의라도 본 듯이 다른 수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좀 이상하다 여겨져서 가만히 이들을 지켜보니 아하, 하고 수긍이 갔다. 내가 지도하는 수업이 학부 공통과목 수업이어서 우리 학과 학생뿐만 아니라 다른 전공 학생들이 섞여서 수강하기 때문에 학생들끼리 서로 잘 모르는 사이가 많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건 내 오해였다. 내가 지도하는 다른 수업, 그 수업은 심지어 전공필수 과목이어서 100% '우리 학생'만 수강하는 수업인데 여기에서도 학생들은 서로를 ~님하면서 존칭하고 있었다. 

이게 뭐지?

낼모레 졸업을 앞둔 18학번 학생이 22학번 직속 후배에게 ~님이라니...

학과회의나 학교에서 마주친 다른 교수들과도 이런 얘기를 나누어봤는데 대부분 나와 비슷한 경우를 경험하고 요즘 애들이 확실히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고 입을 모았다. 다시 학생들을 관찰하고 그들의 호칭을 주의 깊게 들어보니 친한 관계에서는 예전의 경우처럼 이름을 부르거나 ~선배, ~선배님의 호칭이 사용되고 있었고 더 친한 경우에는 형, 언니도 여전히 사용되고 있었다. 하지만 예전에 비하면 좀 드물었다. 편의가 우선이고 합리적 사고와 상호존중이 공평하다는 이들 MZ들에게는 고학번의 권위나 연장자의 반말은 통용되지 않았다. 


또 다른 이유는 학령인구가 감소하고 대학 진학인구가 감소하면서 대학 내의 뿌리 깊은 학과 간 장벽과 전공고립주의가 서서히 붕괴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대학들의 학과 간 장벽은 인접 학문끼리의 교류나 학생 이동을 거의 금기시했던 것이 사실이다. 차라리 다른 대학의 인접전공 교수나 학생들끼리의 교류는 막지 않았지만 같은 학교 내에서 학과를 이동하거나 타 학과의 실습장비를 이용한다는 것은 꼰대교수들과 꼰대행정의 악의적인 비협조로 거의 불가능했던 것이다. 하지만 대학 진학 인구가 감소하면서 대학 사회는 그동안 높고 견고하게 유지해던 학과 간 장벽을 허물고 학생들이 유연하게 이 전공에서 저 전공으로 옮겨갈 수 있도록 했다. 다전공, 부전공, 복수전공은 예전에도 있었지만 이제는 흔한 선택으로 활성화되었고 거의 불가능해 보였던 학과 간 이동인 전과나 캠퍼스 간의 이동도 가능해졌다. 이렇게 학과와 전공의 순혈주의가 사라지면서 모르는 이, 낯선 이와의 수강은 흔한 일이 되었고 그럴 때 상대방을 향한 호칭은 연장자와 연하자 구분 없이 공평하게 편하면서 존중을 담은 '~님'이 적절한 것으로 선택된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의 비대면 강의 2년여를 겪으며 생긴 거리감도 호칭 변화에 한몫을 했을 것이다. 20학번 21학번, 그리고 이후의 학번 학생들은 고등학교 재학 시 비대면 강의와 언택트 행사에 익숙했다. 이들은 대부분 온라인에서 오프라인보다 더 편안하고 익숙했다. 원래부터 온라인 커뮤니티에 익숙했던 이들은 본명과 닉네임의 구분이 모호했고 상대가 선배인지 후배인지 별로 중요하지 않았지만 존중해 줄 필요는 느끼니까 공평하게 ~님 호칭이 편리했다. 게다가 최근 수년동안 N수생과 반수생의 증가는 고학번은 '어른' 또는 '연장자'라는 개념이 파괴되었다. 대학을 4년 만에 졸업하는 경우도 이제 많이 줄었다. 휴학을 하며 인턴이나 어학연수를 다녀오거나 개인적인 진로 개척활동을 하는 경우가 많아져서 고학번이 꼭 고학년을 의미하지 않았고 그렇게 복학해 보면 자기 학과지만 모르는 얼굴들이 많아졌으니 학번 따져가며 선후배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도 불필요해 보이고 선배가 후배에게 뭔가를 지도하거나 도움을 주고 후배는 선배에게 양보와 공경으로 갚는 일은 흔하지 않은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제는 캠퍼스에 편의와 합리가 무엇보다도 중요해진 것이다. 


섣불리 이런 변화를 경계하거나 환영할 수 없고 또 이 변화를 물리치거나 선택할 수도 없다. 이제 그냥 이런 세상이 된 것이고 취향껏, 개성대로 적응하며 살아간다. 21세기 인류를 20세기 시각으로 해석하는 것은 적절치 않기 때문이다. 다행인 건 이들이 서로에 대한 존중이 예전 세대보다 중요한 가치로 여겨지고 있으며 각 개인의 개성과 의사를 인정하여 획일된 통일을 지켜야 하거나 따라야 할 덕목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느 날 이들이 나에게도 '교수님'이 아니라 내 이름을 넣은 '~님'으로 부른다면 나는 당황할 것 같다. 그럴 땐 어떤 표정으로 어떻게 응대해야 할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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