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나마 다행이라고라?
그래, 몸이 안 다쳤으니 얼마나 다행이냐.
이만하길 얼마나 다행이에요. 사람은 안 다쳤잖아요.
정말 다행이다. 차가 무슨 대수냐, 네가 지금 병실에 누워있다고 생각해 봐.
나는 좀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지금 잘된 거라는 건가?
불행이나 불운을 대하는 사람의 심리는 늘 같은 방식이다.
내가 이번 사고로 다리가 다쳤다면 '그래도 얼마나 다행이냐 머리를 안 다쳤으니'라고 할 것이고, 다친 사람이 나 하나뿐이라면 '그래도 다른 사람 안 다치게 했으니 얼마나 다행이냐'라고 할 테고…
우리 대부분은 변고가 있을 때마다 입을 맞춘 듯이 늘 더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최악너머 극악을 상상하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그래도 여전히 구겨지고 부서진 내 빨간 새 차는 도로에 나오자마자 다시 정비소로 실려 가버렸는데 말이다. 심통이 난 중학생 아이가 고집불통으로 떼쓰듯 유치한 감정이 폭발하려 했다.
마음을 가라앉힌다. 그러다가 다시 트럭이 내 차를 찢고 받아버리는 장면이 떠오른다. 신용카드로 전액 결제한 자동차 대금이 빠져나가는 날이 며칠이지 하는 생각이 들면 또다시 분노가 피어오른다. 다시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누그러뜨린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내게 일어난 일은 정말로 불행 중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 말고는 별다른 도리가 없다. 우리는 늘상, 매일매일이 다행인 것이다.
천둥 번개 치는 날 외출했었는데 벼락을 안 맞았으니 얼마나 다행이야, 싱크홀이 부지기수라는데 가다가 땅이 꺼지지 않았다니 난 행운아야. 난데없이 유성이 내 머리위로 떨어지지 않았으니 축복인걸.
불행이 닥친 상황에서 위안을 얻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지금보다 더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을 떠올리는 것이다. 그게 유일한 방법이고 해법이라는 게, 속절없이 속상하다.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생겼을까.
내게 일어난 안 좋은 일은 내가 그동안 저지른 나쁜 짓이나 심성을 곱게 쓰지 않아서 내려진 벌이겠거니 하면서 내 지난 행동 중에서 충분히 선하지 못했던 부분을 떠올려내고는 반성하고 근신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평소에 도덕적이고 선량하다고 볼 수는 않지만 대체로 법을 잘 따랐고 남에게 해악을 끼친 적은 없다. 하지만 내 내면을 들여다보면 나는 길거리든 버스 안에서든 수시로 음탕했고 비밀이 보장되는 적당한 유혹이 있다면 단호하게 뿌리칠 자신이 별로 없는 윤리적이지 못한 속물 남자였다. 그런 생각을 하고 다니니까 난데없이 화물트럭에 들이 받히는 것이고 차를 사고 나서도 만져볼 새도 없이 다시 공장에 들어가는 신세가 되는 것이다.
이건 정말 우울한 생각이었다. 심지어 난 크리스천이 아닌가. 나의 불운과 불행은 늘 지난날 내가 저지른 과오에 대한 형벌이라고 생각하고 있자니 이것도 선뜻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그렇게 따져본다면 내게는 불운이나 불행적인 사건과 사고보다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더 많은 행운과 선물들이 쏟아진 인생인데 그러면 나는 그런 축복을 받을 만한 선행과 주변인에 대한 배려를 했단말인가? 상벌에 따라서 행운과 불운이 생기는 거라면 나는 그 누구와 비교해도 꿀리지 않을 도덕적 삶을 살았어야 마땅한데 미안하게도 나는 그런 인품을 갖지는 못했다.
내게 일어난 이 기가 막히고 억울하기도 한 자동차 사고 사건을 곰곰 생각해 보니 이번 자동차 사고가 내 생애에 처음 일어난 교통사고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동안 한국과 미국에서 무려 35년 동안을 자동차를 운전하여 학교를 오갔는데 한 번도 운전을 하다가 누구를 다치게 한적도 없고 내가 다친 적도 없으며 자동차나 다른 기물을 부서뜨린 적도 없었던 것이다. 나는 매년 자동차 보험을 갱신하면서 아내에게 농담처럼 말하곤 했다.
'여보, 그동안 내가 내기만 하고 받아 써 본 적이 없는 낸 자동차 보험금으로 다른 곳에 투자를 했다면 어마어마한 부자가 됐을거야'
하지만 그 보험금 덕택에 나는 35년 동안 안심하고 고속도로에 오를 수 있었고 안개 자욱한 샌프란시스코의 급경사길을 걱정하지 않고 오갈수 있었던 것이다.
한국에서건 미국에서건 어쩌다 과속 딱지를 떼거나 불법주정차 과태료를 물게 되면 한동안은 운전도 조심하고 주차할 때도 규정을 어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벌써 며칠째 속을 끓이며 왜 이런 재수없는 일이 내게 일어났을까를 반복해서 생각하다가 내린 결론은 아직 없지만 분명한 것은 이번 일로 나는 35년 무사고 운운하며 자신만만해했던 나의 운전 습관에 확실한 경각심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내 운전에 만전을 다하는 것은 물론 내 주변 차들의 상황도 주시하면서 방어운전을 할 것이고 특히 화물차를 비롯한 대형 차량들에게 후하게 양보하여 사각지대가 큰 차들을 배려할 것이다. 운전을 하는 일은 아무리 오랜 경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일은 아니며, 가까운 길이든 먼 길이든 동네 뒷길이든 고속도로든 긴장을 늦출 수 없다는 사실을 늘 기억할 것이다.
아직도 공장에서 돌아오지 않은 내 새 차를 떠올리면 마음이 아프지만 그만큼 나는 도로에 선 나와 다른 이의 안전을 제일 먼저 챙길 것이다. 인생에서 교통사고는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새 차를 받자마자 일어났다면 비교적 특별해 보이긴 하지만 오래 타던 차에 사고가 났다고 당연하거나 그럴 수도 있는 일로 넘길 수는 없는 일이다. 느슨했던 내 운전습관에 정신이 번쩍 들게 찬물을 끼얹은 이번 사고를 나는 훨씬 더 비극적이고 가슴 아픈 사고를 미연에 막는 계기로 삼을 작정이다. 일어나지 않을 일을 가상해서 편리하게 합리화하는 것으로 비출수도 있지만 이 사건은 나에게 분명한 교훈을 주었다. 나 홀로 타고 있을 때가 많지만 가족을 태우고 다닐 때도 많은 내가 이즈음에 한 번쯤 운전이라는 행위에 대해 진지하게 되새기고 새롭게 긴장하는 일이 꼭 필요했던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비싼 수업료, 값진 교훈. 이걸로 됐다. 이제 안전 운전하고 도로의 다른 차들을 배려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