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원 대청호 생명쌀 마라톤 대회 풀코스를 간신히 완주하고선 대회 측에서 준비한 샤워장에서 몸을 씻는데 급한 마음에 양쪽 무릎에 덕지덕지 붙여 놓은 부상방지용 테이핑을 잡아채듯 떼어내다가 피부가 쏠리며 물집과 쓰라린 트러블이 일어났다. 풀코스 내내 터질 것 같은 방광을 꽉 잠그고 달리느라 너무 오줌이 마려운데 화장실이 저 앞에 나타나니 몸도 마음도 급해서 여기 부딪히고 저기 긁히며 생채기들이 늘어났다. 그 와중에 25km 지점을 달릴 때쯤부터 도드라진 오른쪽 발등과 발날에 통증은 집에 돌아와서 까지도 여전했다. 테이핑을 떼면서 생긴 상처로 무릎 주변은 온통 연고로 번들번들했고 오른쪽 발등은 얼음찜질을 한다고 아이스팩을 칭칭 동여매고 소파에 대자로 뻗어있으니 마라톤 한번 달린 유세로 볼썽사나운 모습이었다.
그런데 오른발 통증은 다음날이 되어도, 그다음 날이 되어도 가라앉지 않았다. 엄지발가락을 따라 올라가는 굵은 힘줄 주변이 걷거나 앉았다가 일어설 때 통증이 느껴졌고 빠르게 걷거나 달리려고 하면 통증은 커졌다. 오른발의 우측 발날도 중간 부분에 통증이 느껴졌는데 발등과는 좀 다른 느낌의 통증이지만 이 부분 역시 걷거나 뛰려고 하면 통증의 크기가 커지는 것이 느껴졌다.
대청호 마라톤 대회는 마라톤 대회치고는 이례적으로 토요일에 열렸는데 그래서 나는 다음날도 교회에 다녀와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쉴 수 있었다. 하지만 통증은 가라앉지 않고 오히려 찌르는 듯한 통증으로 바뀐 듯해서 불안한 마음이 커져갔다. 다행인 건 어제까지만 해도 통증 부위가 부어있었지만 얼음찜질을 계속 한 덕분인지 붓기는 가라앉았고 열감도 없었다. 나는 대회를 마치고 난 이후로 계속해서 이부프로펜을 복용했는데 그래서 통증과 부기가 가라앉았을 것이다.
쉬는 동안 나는 계속 내 증상에 대해서 검색을 하고 자료를 찾아보았는데... 안타깝게도 내 증상은 전문가들이 '피로골절'이라고 말하는 병과 매우 닮아있었다. 올해 초 겨울부터 봄에 있었던 동아마라톤을 위해 달렸고 여름 내내 더위와 습도를 견뎌가며 새벽부터 달렸다. 그리고 이제 가을이 되려는 즈음에 덜컥, 피로골절이 찾아온 것이다. 이토록 오랫동안 달리기를 꾸준히 한 적이 없었으니 내 연령과 체력에 비해서 나는 몸을, 특히 발을 혹사시킨 셈이고 그것은 피로골절이라는 난감한 증상으로 이어진 것이다.
피로골절은 치료방법이 딱히 정해진 것이 없었다. 장기간의 누적된 피로와 스트레스가 미세한 골절을 일으킨 것이고 엑스레이로는 보이지도 않는 정도여서 통상의 골절 치료 방법을 쓰지는 않았다. 최선의 그리고 유일한 치료법은 '쉬는 것'이었고 피로골절 경험자들은 모두 이 '쉼'의 방법으로 병을 이겨냈는데 문제는 그 쉼의 기간이 매우 길다는 것이다. 내가 증상을 얘기하고 경험자를 찾아보니 마침 나와 새벽에 같이 달리기 연습을 했던 중년 여성이 피로골절로 고생을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녀는 한창 마라톤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실력이 쑥쑥 오르던 무렵에 메이저 풀코스 대회인 '춘마'와 '제마'를 연거푸 달렸는데 그 이후에 피로골절이 와서 무려 일 년을 쉬어야만 했다고 말했다. 내가 발이 아픈 얘기와 피로골절 치료법을 묻자 그녀는 짧게 대답했다.
"치료법은 그냥 쉬는 거예요. 달리면 안 나아요."
세상에, 정말로 억울하고 분한 통보였다.
몇백 년 만의 더위라는 올여름을 고스란히 바치고 새벽마다 뛰면서 가을 대회를 준비했는데, 이제 가을이 오자 치료기간이 일 년이 걸린다는 괴상한 병에 걸려버린 것이다. 아내는 내 속도 모르고 이참에 푹 쉬라는 말로 부아를 긁었고 유튜브나 검색 포탈도 모두 같은 소리뿐이어서 알아보는 것도 치워버렸다.
하지만, 아직 한 군데 확인해 볼 곳이 있었다.
병원.
나는 아직 의사에게 내 아픈 곳을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나을 수 있는지, 치료 좀 해달라고 처방을 요구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의사가 무슨 말을 할지 안 가봐도 알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정형외과 의사들은 마라톤을 하고 와서 발이나 무릎이 아프다고 하면 비슷한 대응을 한다.
"그렇게 뛰니 안 아플 리가 있겠습니까. 쉬셔야 합니다. 이제 쉬세요. 몸에 무리가 옵니다."
그래서 달리기를 좀 하는 사람들이 가는 병원이 있다. 한방, 양방 병원이 몇 군데 있는데 이런 곳들은 최소한 달리지 말라는 소리보다는 좀 더 나긋나긋하게 이런저런 치료방법으로 아픈 무릎과 발을 치료해 주는데 지난한 검사 끝에 오랫동안 병원에 다니게 하는 치료법을 제시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참을성이 다한 차도가 없는 환자는 또 물어물어 다른 병원으로 '마라톤 병' 투어를 시작하는데 보험 적용도 안 되는 치료를 받아보다가 결국은 당분간 달리기는 쉬셔야 한다는 첫 의사의 말이 틀리지는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만다.
열흘을 쉬고 나니 통증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고 걷고 뛰는데 아무런 이상이 없어서 내 경우는 피로골절의 극초기 단계였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 뛰어 보기로 했다. 10km를 뛰었는데 평소보다 약간 느리게 6 분주 속도로 한 시간가량 달렸다. 오랜만에 달리니 기분도 좋아지고 발도 이상이 없어서 '그럼 그렇지' 하며 안도했다.
아니었다.
집에 돌아와 샤워를 마치고 나니 똑같은 곳, 오른발등에 통증이 몰려왔다.
낭패감이 들었다. 좀 더 쉴걸 고걸 못 참고 한 시간 달린 벌로 이제는 제대로 피로골절로 도져버렸구나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