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집을 부수고 나서 한 일

by 이프로

어처구니없게도 그렇게 한 집안의 베란다 유리창들이 박살나는 사건을 접하면서 놀랐던 사람들 중에는 나도 끼어있었다.

처음엔 분노에 가득 차서 의자를 힘껏 던졌다가 산산조각이 나면서 깨져나가는 거대한 유리창을 보면서 겁이 덜컥 났다.

꿈치곤 꽤나 생생한 걸…나는 꿈을 꾸듯, 혹은 꿈에서 깨어나려는 듯 반복해서 집어던지고 의자와 베이비 체어와 선풍기 등 눈에 보이는 것들을 다 파괴했다.


다음 날 일어나 잔해를 보고 있자니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도 모르겠고, 무엇보다도 아내와 아이들이 어디로 갔는지가 궁금하고 또 불안했다. 곧바로 전화기를 집어 들었지만 무슨 말을 한들 이렇게 전쟁터 같은 집으로 아내가 돌아올까 싶었다.

인테리어 가게에 전화를 해서 거실 베란다 유리창 교체를 부탁했다. 업체 직원은 처음엔 집에서 실수로 유리창 한 장을 깨뜨린 줄 알고 가볍게 응대하며 즉시 교체가 가능하다더니 내가 교체해야 할 유리창의 개수와 크기를 말하자 잠시 말이 없었다. 직원은 다시 정색을 한 목소리로 지금 당장은 그만큼의 재고가 없으니 주문을 해야 하고 사다리 차도 필요하다며 시간을 다시 정하자고 했다. 다른 날 오려고 하는 기색이 보이자 나는 황급히 밤늦게라도 좋으니 꼭 오늘 안에 와달라고 간절히 부탁을 했다.

다음날 일어나서 또 깨진 채 휑한 베란다를 볼 자신이 없었다.

인테리어 업체와 통화가 끝나고 몇 시간쯤 지난 후 청소 업체가 와서 깨진 잔해와 거실 청소를 하고 갔다. 모두들 먼저 예약된 건들이 있어서 나에게 기다려 달라고 했지만 나는 추가금을 지불할 테니 최대한 빨리 처리해 달라고 사정을 했다.

내가 저지른 일이지만 폭격을 맞은 듯한 집안을 보는 것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청소업체가 오기 전 멍하니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어서 그 사이 나는 큰 유리 조각들과 부서진 의자를 재활용품 수거지에 내놨다.

유리조각들이 너무 크고 무거워서 여러 번에 나누어 옮겨야 했는데 엘리베이터에서 다른 주민과 마주칠까 두려워 한가한 낮시간에 신속하게 날랐다. 땀을 뻘뻘 흘리며 일을 마치고 공터 한쪽 그늘 벤치에서 가쁜 숨을 쉬며 앉았다.

한가한 오후의 아파트 공터에는 지나는 사람 없이 조용했다. 나는 고개 들어 아파트 창을 쳐다보지 못했다.

내 이웃들은 모두 창가에 달라붙어 내가 앉아있는 모습을 내려다보면서 혀를 차고 있을 것 같았다.


‘간밤에 그 난리를 친 게 저놈이야?’

‘저런 놈이랑 한 아파트에 사는 건 너무 불안해.’

사람들이 수군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나는 고개를 숙인 채 땀을 닦았다.


유리 조각이야 그냥 수거해 가겠지만 내가 부서뜨린 의자들을 처리하려면 경비실에서 재활용 스티커를 구입해야 했다. 쭈뼛거리며 경비실에 가서 문의하는데 괜히 눈치가 보였다. 어젯밤 근무자가 이 시간까지 계속 근무하지는 않겠지만 아마도 밤 사이에 있었던 난동에 대한 내용을 전해 들었을 것이다. 나이 든 경비원은 죄인처럼 자신 없이 다가오는 나에게 짐짓 아무것도 모르는 척 슬쩍 재활용 스티커를 전해주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경비원들은 대개 주민과 마주치면 이런저런 인사도 하고 재활용 스티커를 사러 온 주민들과는 버리는 물건에 대해 묻기도 하던데 나에게는 아무 말도 없었다.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다리가 부러지고 등받이가 박살난 의자 두 개와 엄청난 양의 깨진 유리조각이라면 대충 무슨 사단이 벌어졌었는지 짐작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연이 있는 걸 알 텐데도 괴로움에 일그러진 내 표정을 보고 그냥 모르는 척 넘어가 주는 것 같았다. 그 별것 아닐 수 있는 경비원의 마음 씀씀이가 눈물 나도록 고마웠다.

집으로 돌아와 창고에 넣어 둔 식탁 의자를 두 개 꺼냈다. 아직 아이들이 어려서 둘 다 베이비 체어에 앉아서 식사를 하기 때문에 주방 식탁 의자는 두 개만 사용하고 두 개는 창고에 넣어 두고 있었는데 하나는 부서진 주방 의자를 대체하고 다른 하나는 내 서재에서 쓰던 의자를 대신해서 일단 쓰기로 했다. 오후에는 마트에 가서 어젯밤에 내가 부서뜨린 아이들의 베이비 체어와 똑같은 것을 사 왔다.


해가 지고 난 뒤에 유리창 교체가 시작됐다. 창틀에는 아직 유리가 남아 있었는데 너무 단단히 붙어있어서 깨뜨려서 빼내는 수밖에 없었다. 금방 끝날 줄 알았던 유리조각 수거와 교체 작업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남은 유리 조각들을 제거하느라 이제는 듣기만 해도 소름이 돋는 유리 깨지는 소리가 한 시간 가까이 이어지다가 끝이 나고 사다리 차로 올려 온 새 유리를 창틀에 끼워 넣는 것으로 마감됐다.

유리 교체를 위해 내 집에 들어와 베란다 유리창이 모조리 박살이 난 현장을 본 인테리어 업체 직원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실수나 사고로 깨진 유리가 아니라 일부러 부순 것이라는 것은 자명했다. 집안에 아이들 장난감은 있는데 아이들은 안 보이고 애들 엄마도 없으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짐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계속 죄인의 모습으로 주방 한쪽에 앉아 유리창 테두리에 실리콘 마감을 하는 인테리어 업체 직원들을 외면한체 멍하니 앉아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이젠 어지간히 원상 복구된 집안을 다시 한번 깨끗하게 청소했다. 그리고 혹시라도 남아있을 유리 조각들을 찾아 거실 구석과 소파 아래, 베란다 구석을 샅샅이 살펴보고 청소기를 돌리고 또 돌렸다.

그리고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내가 집안을 때려 부수고 난리를 치고 있을 때 아내는 애 둘을 안고 그 야심한 시각에 어디로 떠난 것이 아니라 앞집 아주머니의 배려로 그 집에서 하룻밤을 지냈다. 다음날 아침 내가 아직 깨어나지 않았을 때 아내는 집에 들어와 아이들 옷가지와 간단한 짐을 싸들고 친정으로 피신했던 것이다.

내 전화를 받은 아내는 별로 말이 없었고 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지금 데리러 가겠다고 했다.

늘 막히던 고속도로는 한가했고 그 많던 신호등도 모조리 초록색으로 이어지는 바람에 순식간에 처가가 있는 마포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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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모님께 무릎 꿇고 잘못했다고 용서를 구했다. 어디까지 얘기를 들으신 줄은 모르겠지만 장모님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보시면서 날 일으키셨다. 아이들은 다행히 내가 저지른 일을 모르고 있는 눈치였다. 둘째는 ‘아빠, 경찰 아저씨들 도둑 잡았어요?’라고 물으며 그날 있었던 일이 우리 집에 도둑이 들고 아빠와 경찰 아저씨가 힘을 합쳐 해결하는 동안 엄마가 자기들을 데리고 외할머니댁에 피신 와 있는 걸로 알고 있었다. 엉성한 거짓말이었지만 아이들에게는 꽤 믿을 만한 스토리였는지 아빠를 원망하기보다는 가족을 도둑으로부터 보호한 용감한 아빠로 여기고 있었다. 처가에 오래 머무르지 않고 교통체증을 핑계로 서둘러 아이들과 아내를 태우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는 며칠 사이에 수척해진 모습이었고 목소리가 잠겨있었다. 조용히 아이들 저녁을 챙겨준 뒤 나와 마주 앉아 식사를 했다.

아이들이 잠들고 나서 방에 있는 아내를 거실로 불렀다. 그리고 아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아내 손을 잡았다. ‘여보 내가 잘못했어, 용서해 줘.’

아내도 울고 나도 울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아내가 집에 돌아오는 것으로 나의 만행을 용서해 주자 나는 당연히 술을 끊었다.

처음에는 아내도 나의 금주가 얼마나 갈까 싶은 눈치였는데 몇 달 동안 흔들림 없이 지속되자 비로소 아내에게서 미소가 보였다.

언젠가 저녁 식사 후 아내와 이야기를 하던 중에 내가 난동 피웠던 날 이야기가 나왔다. 그날 밤, 집에 돌아와서 전쟁터 같은 난리 현장을 본 아내는 실성한 듯한 내 눈빛과 부서진 유리창과 의자를 보고 나니 다음엔 저 의자를 나에게 던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아내는 이미 지난 일이고 나를 비난하자고 꺼낸 말을 아니었는데도 나는 아내의 말을 듣고 나서 너무 아내에게 미안해졌다.

그건 아니라고, 내가 어떻게 당신에게 그런 짓을 할 수 있겠냐고 강하게 부정해야 했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광란의 현장에 있었다면 누구라도 아내와 같은 생각을 하는 게 당연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청소업체가 모든 잔해를 다 치우고 나서도 나는 박살난 거실 유리창의 깨진 조각 하나를 보관하고 있었다. 내가 생각해도 내가 저지른 일은 너무나도 엄청난 가정폭력이었고 같은 일이 또 생기는 건 나 스스로도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다.

둘째 아이 손바닥만 한 깨진 유리 조각을 나는 책상 앞에 붙였다.

매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내 책상에 앉을 때마다 나는 저 깨진 유리조각을 보면서 내가 술에 취한 채 저지른 만행을 기억할 것이다.

사랑하는 내 아내와 아이들에게 다시는 이런 끔찍한 일을 겪지 않게 매일매일 각성하고 긴장해야 한다.

아내는 내가 붙여 놓은 유리조각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행히 집안은 금세 평소의 모습을 찾았다. 아내도 예전처럼 명랑해졌고 우리는 아이들을 공원에 데리고 가서 뛰어노는 모습을 보며 웃었다. 아내가 잠시 집을 비운 사이 나는 내가 비상시 먹으려고 사 둔 술들을 모조리 싱크대에 쏟아버렸다. 예쁘다고 사 모으던 각종 술잔들도 재활용 수거일에 내놨고 와인 오프너와 와인 스톱퍼 등 이런저런 술 관련 액세서리들을 다 갖다 버렸다.

다시 술을 마시게 될까 두려웠다. 학교는 개강을 해서 나는 바쁜 척을 하며 주중을 보낼 수 있었지만 주말이 되면 혹시라도 다시 술 생각이 날까 봐 일부러 교회 친구들과 약속을 잡거나 산에 올랐다. 산에서 내려와 하산길에 늘어선 막걸리 집에 들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산에는 항상 차를 갖고 갔다.


내가 집을 때려 부수는 사고를 치기 전 언젠가 휴일 아침이었다. 아이들도 깨지 않고 있었고 우리도 늦잠을 자고 일어나 막 침대에서 눈을 뜬 직후였다. 아내는 내 곁에 누워 잠에서 깬 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술만 안 마시면 참 좋은 남편인데…”

나는 옆으로 돌아 누우며 대답했다.

“나만큼만 마시라고 해, 당신이 집에만 있어서 그렇지, 술집에 가 봐. 그 사람들 매일 마셔, 매일. 나는 일주일에 딱 두 번만 마시잖아. 이 정도 마시는 거 갖고 뭐라고 하면 대한민국 남자 모두 욕먹어야 해.”

나는 정말로 그렇게 믿고 있었다.


일주일에 최소한 두 번씩은 마시던 술을 마시지 않게 되자 내게는 저녁 식사 시간 이후의 시간이라는 게 생겼다.

저녁을 먹으며 술을 마시다가 취해서 잠이 들거나 밖에서 술을 마시고 들어오면 바로 씻고 자는 게 일상이었던 날들에 엑스트라 시간이 생긴 것이다. 원래도 술을 마시지 않는 날에는 아이들과 같이 놀아주고 집안 일도 도왔지만 이제는 그런 일상이 중간에 술로 인해 끊기지 않고 쭈욱 이어지게 된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기도 하고 산책을 하기도 했다.

늘 밀려있던 연구와 과제도 저녁 시간에 할 수 있었고 외부 사업에 응모할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아내와 아이들은 즐거웠고 나도 술을 마시지 않으면서 얻게 된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이 썩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아내 앞에서 눈물로 약속하고 다짐했던 금주는 학기 내내 잘 지켜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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