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술과 영화와 불면이 만났을 때

by 이프로

영화 연출을 해보려고 한국으로 돌아왔으나 준비하던 영화는 제작자의 간택까지는 받았지만 번번이 투자 단계에서 진전이 더디게 가다가 엎어지고 시간은 자꾸 흘러만 갔다.

영화감독이 되는 법이 정해진 것은 없으나 대개의 경우 대학 때나 아마추어 시절 연출한 단편영화 한두 편쯤이 알아줄 만한 영화제에서 수상한 실적이 있어야 하고 그다음엔 제작자나 기획자에게 보여줄 장편 창작 시나리오가(업계에서는 ‘책’이라고 부른다) 있어야 한다. 한국에 돌아와서 나는 국내에 몇 안 되는 연줄로 이 회사 저회사 돌아다니며 내 포트폴리오와 시나리오를 보여주기도 하고 공모전에 출품하기도 했는데 내 작품은 프로듀서들이 솔깃해하기도 하고 제작 후보작까지도 올라갔다. 그러면 그들은 내가 다른 영화사를 알아볼까 봐 불러내서 밥도 사주고 술도 사주는데 투자를 받기 전 까지는 영화사도 제작하겠다는 확답을 못주니 이제부터 좀 더 ‘임팩트’ 있게 책을 수정을 해보라는 희망고문이 시작된다.

시나리오를 수정하거나 새로운 스토리를 개발하고 있으면 혹시라도 내가 다른 계약을 할까 봐 침 발라놓듯이 술시가 되면 불러내서 진도가 어느 정도 나갔는지, 이놈이 진짜 한방이 있기는 한 건지 확인도 해볼 겸 술도 사주고 밥도 사준다. 영화사 직원들이 내 앞에서는 ‘감독님’, ‘작가님’이라고 불러주니 세상에서 공사판 감독보다도 못한 것이 제작 들어가기 전 영화감독인 줄도 모르고 나는 이미 감독이 된듯한 착각에 빠진다.


내가 만난 영화감독들은 멋진 주연배우들과 함께 홍보를 위한 시사회에 참석했을 때의 번듯한 모습과는 좀 다른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대개의 경우 일거리가 떨어진 예전의 감독이거나 영화를 개봉하긴 했지만 수준이 좀 의심스러운 완성도의 처녀작이자 유작을 갖고 있는 자들이었는데 여러모로 이상했다. 원래 좀 이상한 사람들이거나 이상하게 보이려고 일부러 노력하는 또 다른 종류의 이상한 사람들로 보였다. 정말로 기상천외한 사람들도 있고 지나치게 기발한 나머지 미친놈과 별로 다를 것이 없는 이들도 있었다. 가끔씩 영화 말고 다른 일을 했어도 충분히 성공했을 것 같은 천재형이 있었고, 심성이 순수하고 맑은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지나치게 조심스럽고 목소리가 작아 귀를 기울여야 대화를 할 수 있는 조용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동성애자도 있었고 불순한 성적 취향을 갖고 있는 성도착자들도 눈에 띄었다. 성실하게 시나리오를 쓰고 또 스토리를 찾아서 소설과 시, 신화, 웹툰 등을 찾아 헤매는 감독들도 많았지만 해가 지면 펼쳐지는 영화계 술자리에는 모두들 얼굴을 내밀었다. 이런 자리에 프로듀서들이 많이 모이기 때문에 나처럼 무소속인 예비 감독들은 술을 찾아 투자자를 찾아 부나방처럼 모여들었다.


‘또라이’와 ‘비정상인’이 무척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영화판에서 자주 발견되는 공통점은 대부분 술을 잘 마시고 알코올 중독자들이라는 것이다. 안 마시는 사람은 입에도 대지 않았지만 대신에 다른 수상한 ‘약’을 하는 것 같았고, 마시는 사람들은 대개 술고래들이었다. 이것은 비단 감독뿐만 아니라 스태프들도 비슷했다. 그중에 프로듀서들은 기도 세고 말 술을 먹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늘 또라이 지존급인 감독들과 작가들을 대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 안 그래도 불안해서 술이 고픈 나는 여기저기 고개를 디밀고 공짜 술을 얻어먹고 다녔다. 문제는 아직 입봉도 안 한 내가 이들 무리에 섞여 또라이 흉내를 내고 감독 인양 같이 마시고 놀다 보니 나도 감독이라는 착각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멀쩡한 남자에게 예비군복을 입혀 놓으면 흐트러진 동네 아저씨가 되듯이 나도 ‘감독’이라고 불리는 자리에 참석하게 되면 낮술이고 새벽 술이고 마다하지 않고 마시는 걸 당연히 여겼다. 미국에 오래 있다 돌아온 나는 학연도 없고 지연도 없어서 보여줄 게 없으니 술 잘 마시는 거라도 보여줘야 한다는 듯이 어느새 술판에서 ‘술 좀 마시는 놈’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술을 연이어 못 마시는 나였지만 ‘감독님’이라 불리고 ‘감독님’들과 어울리려면 내가 정한 룰이 깨지는 것이나 내 몸이 조금 불편해지는 거야 당연히 감수했다. 당시 나는 30대 초반의 젊은이였으니 몸이 견뎌준 것 같다. 이런 자리에서 나 같은 미생 감독은 주는 술을 마다하지 않고 마셔대며 그들이 궁금해하는 미국의 영화 프로덕션 환경과 내가 배웠던 필름스쿨의 교육 내용을 슬쩍 알려주면서 미국에서 오래 살면서 겪은 기이한 경험담을 들려주면 대부분 국내파인 그들은 귀를 쫑긋하고 경청했다. 그걸로 나는 내가 얻어 마시는 술값을 갈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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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한했다.

술자리는 차기작을 준비하는 감독들의 차원 높고 예술적인 토론이나 구상 중인 스토리에 대한 허심탄회한 의견 교환으로 고상하게 시작했다. 서로가 갖고 있는 남다른 재능이나 표현력을 칭찬해 주기도 하고 발표작이 있는 감독에게는 연출력이 돋보인 부분들을 세심하게 자신의 시각으로 풀어내 보이면서 창작의지를 고취시켰다. 그러다가 누군가 최근 발표된 유럽이나 영미권 감독의 작품이나 원작 소설을 두고 자신의 느낌과 인상 깊었던 쇼트 구성에 대해 진솔하게 이야기하면 다른 감독이 국내 작가 누구의 작품과 연관 지으며 비평을 이어간다. 이제 술이 몇 순배 돌아가면 프로이드와 라깡을 소환하다가 별로 연관도 없어 보이는 키에슬로프스키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를 호출한다. 처음 마시기 시작한 고급술이 떨어지고 격이 떨어지는 소주나 국산 위스키가 등장할 즈음, 난데없이 아도르노도 나오고 황석영이 나왔다가 기형도도 나온다. 그렇게 누가누가 잘났나 하고 저마다 읽은 책, 주워들은 풍월, 다른 술자리에서 배운 음담패설을 늘어놓다 보면 먼저 취한 사람이 툭 튀어나와 시비를 걸기 마련이었다. 그게 감독일 때도 있고 프로듀서일 때도 있는데 그러면 패가 갈려서 언쟁을 벌일 때도 있고 한둘이 맞서 싸우게 두고 나머지는 빙글거리며 관전을 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엔딩은 추하고 치졸했다.


술에 취해서 언성은 높아지고 고상했던 작가의 입에서는 믿지 못할 육두문자와 유치한 조롱이 쏟아졌으며 어쩌다가 영화인 공동의 적으로 여겨지는 선배 감독이나 정권에 아부했던 작가들의 얘기가 도마에 오르면 부관참시가 무색할 난도질과 과장된 뒷담화가 이어졌다.

논리가 떨어지는 언쟁이 심심해지면 격해진 누군가는 술잔을 집어던지고, 가끔은 주먹다짐도 하는 그들은 더 이상 예술가도 영화인도 아니고 그냥 술 먹은 개였다. 그런 그들을 보면서 놀라기도 하고 속으로 그들을 비난하기도 했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서 나도 술이 취하면 그들이 했던 술주정들을 비슷하게 따라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미국에서 학부와 대학원을 다니면서 제작비가 모자라 빚까지 내면서 영화를 찍다가 돌아온 나는 영화는 찍어보지도 못하고 영화를 찍어 본 놈들과 술만 퍼마시고 술버릇만 나빠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늦은 아침, 전화가 걸려왔다. 술이 덜 깬 목소리로 받아보니 미국에 계신 모친이었다. 급하게 목소리 톤을 고치고는 아무 일 없이 잘 지내고 있으며 밥도 잘 챙겨 먹고 있다고 거짓말을 했다. 묻지도 않은 거짓말로 엄마를 안심시키며 전화를 끊고 벽에 기대어 앉아 이제까지 한국에 와서 술 마신 일 외에 무슨 다른 일을 했을까 돌이켜 봤다.


내가 쓴 창작 시나리오 한편으로 백만 원의 개발비를 받았고, 원작이 있는 수필을 시나리오로 각색을 하는 작업비로 5백만 원을 받았다. 로버트 드니로 전기를 번역하는 일로 출판사에서 선인세 3백만 원을 받았고 그게 내가 수억 원을 들여 7년여를 유학한 후 한국으로 돌아와 영화와 관련된 작업을 하면서 벌어들인 수입의 전부였다. 대학원 마지막 학기에 학자금 융자를 최대한 뽑아서 한국에서 버틸 생활비로 갖고 나왔는데 이제 잔고 바닥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그때 한 대학에서 4학년 졸업작품 워크샵 수업을 맡아달라는 연락이 왔다. 주중에 아르바이트로 시내 어학원에서 꼬마들과 성인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었는데 일이 너무 재미없어서 따분해하던 차였다. 학교에서 대학생들과 영화를 만드는 수업을 하라니 재미없지는 않을 것 같았다. 불과 얼마 전까지 나 역시 학교에서 영화를 만들던 처지가 아니었던가. 그렇게 봄학기부터 시간강사 생활을 시작했다.

나는 파격적으로 수업했다. 이제까지 다른 교수들은 어떤 식으로 수업을 해왔는지 모르지만 나는 학생들을 자극하면서 도발했고 신임 강사치고는 다소 거칠게 제출된 시나리오의 엉성한 서사구조를 비판하고 그들이 만들어온 캐릭터의 허술한 인과관계를 노골적으로 지적했다.

학생들의 반응은 극과 극이었다.

내 지도 방식에 열광하는 학생도 있었지만 여러 학생들 앞에서 자신이 며칠 밤을 새워 써온 시나리오가 산산조각 난 당사자 학생은 억울해서 눈물을 보이거나 서운한 선을 넘어서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나는 수업 시간이 끝난 뒤에도 해당 학생들을 남게 한 뒤 왜 내가 지적한 부분이 옳고 네 시나리오가 개연성이 떨어지는지 조목조목 설명했다. 옳은 말을 하고 있지만 듣는 사람의 감정은, 그리고 이제 처음으로, 혹은 두 번째 영화를 찍어보는 입문 과정의 학생 감독에게는 가혹한 수업 방식이었다.


그렇게 수업을 하고 나면 나도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학생들을 데리고 학교 앞 술집으로 갔다. 아무리 싸구려 대학가 앞 술집이지만 학생들 열명 이상과 함께 서너 시간 동안 밥과 술을 마시면 세 시간 수업을 하고 받는 강사료로는 턱없이 모자랐다. 술에 취해서 나오면 학생들은 저희들 자취방으로 날 데리고 가고 라면을 끓이고 소주를 사 왔다. 그렇게 밤새워 학생들과 술을 마시며 다시 시나리오와 캐릭터, 갈등에 대해 얘기하면 수업시간에 분개해했던 학생들도 어느덧 내 얘기에 수긍하고 나를 부르던 호칭도 ‘교수님’에서 ‘형’으로 바뀌어 있었다.

맨 정신으로 수업하면서 학생들을 달아오르게 했다가 술 마시면서 풀어주는 방식으로 학생을 지도하다 보니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수업을 하러 나가는 건지 아마추어 감독들과 술자리를 하러 가는 건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주중에는 프로듀서, 감독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고 수업이 있는 날은 학생들과 어울려 술을 마셨다. 중요한 영화가 개봉하는 날이나 친분있는 감독의 영화 시사회가 있는 날에는 맨 정신으로 가려고 했지만 술이 덜 깨서 영화는 못 보고 졸다가 올 때가 있어서 혼자서 다시 영화를 봐야 했다. 몸이 성한 날 시나리오를 쓰고 수업 준비를 했다.

서른이 넘은 총각이 혼자 사는 집안이 지저분하게 보이거나 냄새가 날까 봐 틈나면 청소하고 청결하게 유지했다.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하고 돌아온 날, 집에 와서도 빌려온 자료를 좀 더 들여다보거나 수업 준비를 하다가 시계를 보면 자정이 훌쩍 넘어있었다. 불을 끄고 창밖을 내다보면 커다란 아파트 단지들이 멀리서 따뜻한 불빛을 밝히고 있었다. 나 말고는 모두 평안하고 안정돼 보였다.


그런 날 밤은 여지없이 불면으로 시달렸다.

대학원 때부터 달고 살았던 증세지만 사실은 미국 가기 전 유학 준비할 때부터 시작된 것 같다. 엄마와 이모도 불면증으로 젊어서부터 고생하신 걸 보면 유전일 가능성도 있었다. 이미 불면증에 관해서는 한방, 양방의 의사들의 도움도 받아보았고 민간요법과 항간에 떠도는 숙면에 좋다는 모든 방법들을 시도해 보았다. 백방이 소용없다는 것이 바로 나의 불면증세였다. 타고난 불안과 염려 증세는 앞날을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영화판과 만나자 환상의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수면 시간이 부족한 나를 코너로 몰았다. 여기에 타고난 예민한 성격은 시계 소리도 견디지 못해서 밤이면 시계 배터리를 빼놔야 했고 약간 거슬리는 층간 소음에도 과민 반응이어서 윗층이 모두 잠에 빠지고 나서 움직임이 멈춰야 비로소 나의 어설픈 수면을 시도나마 해볼 수 있을 정도였다.


이런 불면이 3일쯤 이어지는 것은 흔한 일인데 그쯤 되면 나는 수면제의 용도로 술을 찾게 되었다. 오늘 밤은 기필코 잠을 자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도수 높은 술을 준비해서 빠르게 많이 마셨다. 그러면 나는 비로소 며칠 만에 잠에 떨어져 누적된 피로를 풀고 긴장을 내려놓는 깊은 잠에 빠지는 것이다. 이런 나의 잠을 나는 ‘음주 후 숙면’이라고 표현했지만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술 마시고 필름이 끊긴 상태와 아마 별로 달라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만나는 의사들은 하나같이 나처럼 술을 마시고 자는 잠은 수면의 질이 떨어지고 결국은 술에 의존만 하게 되어 불면 증세를 더 악화시킬 뿐이라고 입을 모았지만 그들은 모두 잠을 잘 자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내 증세는 알고 있을지 모르지만 3일 동안 한잠도 못 잔 사람의 심정을 이해하지는 못했다. 온몸은 피곤하고 컨디션은 최악인데 신경은 극도로 예민하여 작은 일에도 과민 반응하거나 화를 내게 되는 상태가 되면 나는 마음을 추스르며 오로지 한 생각뿐이었다.

술, 술, 술을 마셔야 해. 빨리 마시고 죽듯이 쓰러져야 해.


술을 마신 날이 열흘이라면 그중 닷새는 마시고 싶고 좋아서 마신 날이고 나머지 닷새쯤은 수면용도로 마신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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