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석이는 나와 고등학교 3년을 같은 반으로 다닌 둘도 없는 내 친구였다. 학교를 다닐 때보다는 학교 졸업한 이후에 더 친해졌다.
나는 미국 유학 준비를 하려고 종로에 있는 학원에 다닐 때였고 신방과에 다니던 준석이는 제대 후 복학하기 전까지 영어학원에서 미진한 영어공부를 하기로 해서 우리는 같은 학원엘 다녔다. 그는 내가 영화 공부를 하러 미국에 가려는 계획을 높이 평가했고 미친 듯이 영어를 파고드는 나에게 아낌없는 격려와 응원을 해주었다.
그때는 준석이나 나나 호프집 맥주 두세 잔이면 취할 정도의 주량이었으나 고등학교 때부터 술 담배를 시작한 그는 나보다 술도 세고 힘도 셌다. 준석이는 한때 형편이 좋은 집안의 장남이었으나 당시에 집안이 기울어가고 있었다.
그래도 대학가에 건물 하나를 갖고 있어서 우리 중에 가장 용돈이 넉넉했고 지갑도 빨라서 술값 계산을 자주 했다.
준석이는 쾌활하고 밝았지만 욱하는 성질이 있었고 화가 나면 물불을 가리지 않아 자주 싸움에 휘말렸다.
날렵한 몸에 주먹이 빠르고 매웠던 준석이가 사람을 때리고 돌아오면 준석이 아버지는 자식을 나무라기보다는 허허 웃으며 치료비와 합의금을 대주었다고 한다. 언젠가 술자리에서 자기가 이제껏 사람을 때리고 물어준 돈이 자동차 한 대 값은 훨씬 넘을 거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것 같다.
가장 친한 친구이니 나와 함께 가장 자주 술을 마셨다.
과묵해서 속 얘기를 안 하던 준석이는 내가 털어놓는 솔직한 얘기에 귀를 기울였고 술이 몇 순 돌아가면 준석이도 그제야 자기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준석이가 복학할 무렵 여자 친구가 생겼는데 얼마나 좋아했는지 여자 친구 얘기만 나오면 입이 귀에 걸렸다. 나에게도 소개를 해줬는데 과연 이지적이고 고귀한 이미지의 미인이었다. 자기에게 과분하다고 여기는 여자 친구와 데이트를 하고 돌아와서는 밤새도록 나에게 데이트하면서 있었던 일을 시시콜콜하게 보고하면서 사랑에 푹 빠진 그의 모습을 보았다. 그 아름다운 사랑 얘기를 늘 술에 취해서 했으니 어디까지가 실제이고 어디부터 환상인지 모호했다.
그 무렵 미국 대학에서 기다리던 입학허가서 I-20가 나왔고 나는 준석이와 코가 삐뚤어지게 술을 마시고는 미국으로 떠났다.
준석이는 내가 미국에서 필름스쿨 1학년 과정을 힘겹게 마치고 2학년으로 올라갈 때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했다.
준석이 여자 친구는 동갑이어서 준석이보다 먼저 졸업하고 취업을 했는데 복학생과 사회인의 데이트를 한두해 이어간 그는 만날 때마다 학생이 사회인 여자친구에게 꿀리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듯했다. 학벌도 좋은 준석이 여자 친구는 재벌 항공사에 입사했는데 여자 친구 집에서 선을 보라고 재촉하는지 어떤 날은 선보고 나서 자기를 만난 적도 있다며 우울해했다.
나는 이때 시나리오를 쓰느라 늘 머리를 쥐어뜯고 있을 때였는데 하루 종일 이야기를 구상하다가 술에 취해 준석이에게 전화를 하면 준석이는 회사 전화로 내게 다시 전화해 그동안 여자 친구와 있었던 일을 얘기하고 나는 유학생활에서 오는 외로움과 백인들 틈에서 프로덕션을 준비하고 발표하느라 똥 줄 탔던 얘기를 주고받았다.
준석이가 업무 중이라 전화를 길게 하지 못하고 중간에 전화를 끊어야 하면 나는 다시 홀로 술을 마시며 업무를 마친 준석이가 다시 전화해 주기를 기다렸다.
수년간 떨어져 있었는데도 우리는 서로 간의 일을 상세히 알고 있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통화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늘 술을 마시고 대화를 했는데 서울과 캘리포니아와의 시차가 있었기 때문에 둘 다 술에 취해 있는 경우는 드물었다.
밤 시간대인 사람이 술에 취해 얘기를 털어놓고 낮시간대의 사람이 하소연을 들어주는 식이었다.
그동안 준석이 여자 친구는 아쉽게도 집안에서 소개해 준 치과의사와 결혼을 했는데 여전히 마음은 준석이에게 있어서 결혼 후에도 두 사람은 은밀히 데이트를 해오고 있었다. 심지어 결혼 후 곧바로 임신하여 배가 부른 여자 친구와 데이트를 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듣는 내가 다 아슬아슬했다. 준석이는 이제라도 자기에게로 돌아와 준다면 자기는 받아들일 수 있다고 했는데 준석이 집안에서는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결국 준석이는 여자 친구와 아픈 이별을 하고 밀린 숙제를 해치우듯이 서둘러 중매를 통해 결혼을 해버렸다.
후다닥 결혼한 준석이는 아내와 사이가 나빴고 준석이 아내와 준석이 어머니와의 사이는 더 나빴다.
일 년이 조금 넘었을까 매일 폭음하던 준석이는 이혼을 하고 혼자서 다시 일 년여를 살다가 아내와 다시 재결합했다.
그 무렵 나는 길었던 학사, 석사 학위 공부를 마치고 졸업작품으로 만든 영화가 여러 국제 영화제에서 상을 받으며 한국으로 돌아왔다. 거처를 마련해야 했는데 선택의 여지없이 준석이네 집 근처의 오피스텔을 얻었다. 나는 곧바로 장편 영화 시나리오 작가로 일을 하게 되었고 준석이는 내가 새로운 시나리오를 쓰는데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주기도 했고 내가 쓴 시나리오를 읽어보고 진지한 평도 해줘서 적지 않은 도움이 되었다.
준석이는 대기업의 홍보실에서 일했는데 갑자기 영작이 필요하거나 홍보 문구를 번역해야 할 일이 있을 때 전화로 나를 불러서 도움을 요청했고 시간이 넉넉한 나는 시간을 들여서 준석이가 만족해 할만한 결과물을 보내줬다.
내가 한국에 돌아온 뒤에는 매일 만날 수 있으니 준석이는 퇴근 시간이 되면 나를 불러냈고 준석이 회사가 있는 을지로와 내가 일하던 충무로는 지척이어서 서로 한가한 낮에는 점심 겸 낮술도 하고 사우나도 갔다가 각자 일터로 돌아가기도 했다. 퇴근 후에는 준석이 회사 카드로 술을 먹을 때도 있고 나에게 작가 활동비로 나오는 돈으로 술을 먹기도 했다. 술을 마시기 시작할 때는 준석이 회사 동료나 나와 함께 일하는 동료 작가들도 같이 자리할 때도 많았는데 신입 직원들은 나를 준석이 회사 직원으로 오해할 정도였다.
그렇게 시작한 술자리는 다 돌아가고 나중에는 준석이와 나만 남을 때가 많았다. 그러면 우리는 만취한 상태에서 서로에게 신랄해졌다.
유쾌하게 끝난 때도 많았지만 아닐 때도 점점 늘어났다. 너무 친하기 때문에 건드리지 말아야 할 상대의 역린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었다.
전화로 자기 마음을 털어놓을 때는 상대의 신경을 긁을 일도 없고 싸울 일도 없었는데 마주 보고 얘기하니 자주 거슬렸다.
회사 일로 스트레스가 많은 날엔 준석이가 나에게 화풀이를 해댔고 시나리오가 잘 안 써지는 날에는 내가 그에게 투덜댔다.
누가 먼저 상대에게 꼬인 심사가 되어 아픈 부분을 슬쩍 건드리면 상대는 더 크게 상처를 주는 말을 했다. 그러다가 화가 폭발하면 준석이의 주먹이 날아왔고 나도 반격했다. 결혼 생활과 회사 업무 얘기에 그는 민감했고 내 스토리 아이디어는 관객이 오지 않고 투자자가 붙지 않을 것이라는 준석이의 예견은 내 부아를 치밀게 했다.
다음 날이 되어도 주먹다짐을 했던 일보다 그 직전에 분노가 폭발하게 한 말이 더 큰 상처가 되어 화가 가라앉지 않을 때가 있었다.
멋쩍게 사과를 하기보다는 다시 만나서 술을 마시는 것으로 없던 일로 하고 다른 얘기를 했다.
내가 혼자 살았기 때문에 휴일이면 준석이는 내 집에 와서 술을 마시고 갈 때가 많았다. 내가 연이어 술을 마시지 않는 것처럼 그도 매일 마시는 타입은 아니었지만 회사에서는 자기 마음대로 되지는 않는 눈치였다.
내가 한국에 돌아온 이후 우리는 자주 마시고 자주 싸웠다.
욕설의 강도가 심해졌고 저주도 서슴지 않았다.
술에 취해 눈이 돌아간 준석이는 나를 죽일 것처럼 노려보았고 내 영화에 대한 비난이 나에 대한 인신공격으로 바뀔 때, 나는 옆에 있는 맥주병으로 그의 머리를 내리치고 싶은 충동을 억눌러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촬영을 앞두고 한창 고민이 많을 때였다. 나는 마음이 바빠서 술 마실 기분이 아니었는데 준석이가 불러냈다. 다른 고등학교 동창도 한 명 같이 있었는데 빨리 마시고 돌아가서 일을 하려던 나는 자꾸 준석이 말을 끊었고 준석이는 처음부터 심사가 뒤틀려 있는데 말을 자르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준석이는 준비 중인 내 영화 이야기를 비꼬기 시작했고 대충 넘어가려던 나는 심사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나도 준석이가 진행 중인 홍보 영상 프로젝트를 비난하기 시작했고 아직 대취한 정도도 아니었는데 우리는 술집에서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주변에 덩치 큰 손님들이 우리에게 경고했고 준석이가 일어나 맞받아칠 기세로 대응하자 덩치들이 술집에서 나가버렸다.
주인이 와서 우리에게 주의를 줬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독설을 주고받던 준석이와 나는 곧 주먹질을 하면서 술집 밖으로 나갔다.
내 안경이 어디론지 날아갔고 준석이 셔츠가 찢어졌다. 몇 번을 땅에 뒹굴고 치고받다가 같이 있던 친구가 뜯어말리는 바람에 준석이와 나는 서로 길에서 헤어지게 되었다.
다른 날과 다른 싸움이었다.
준석이는 정말로 나를 저주했고 나도 그를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았다. 서로에게 자신의 약점과 슬픔, 서러움을 비밀리에 털어놓고 위로해주고 용기를 북돋아 주었던 우리는 이제 더 이상 그 아픔을 위로하거나 감싸주지 않았고 오히려 남들에게 폭로하고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어느 부위를 어떻게 건드려야 상대방이 치명적인 아픔이 되는지 알고 있는 우리는 술에 취해 광분하여 서로의 상처에 소금을 비벼대며 고통에 신음하는 상대의 모습을 즐겼다. 술에 취했을 때나 맨 정신일 때나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예전의 아껴주던 그 친구가 아니었다.
나는 지나가던 택시를 집어타고 집으로 돌아왔고 한동안 그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이렇게 어처구니없게 나는 술에 취한 채 사랑하는 친구를 잃었다.
한동안 일부러 일에 묻혀서 살았고 준석이에게서도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나는 그동안 준비했던 영화가 두어 차례 엎어지고 대학에서 시간강사를 시작했고 곧이어 교수로 임용되었다. 한두 번 연락을 해볼까 생각한 적도 있지만 예전 일을 돌이키니 준석이가 나를 반가워할까 싶었다. 준석이 집 근처 오피스텔에 살던 나는 전세 계약이 만료되어 이사를 하면서 휴대폰 번호를 바꿨다.
집을 옮기고 결혼을 하면서 다른 고등학교 동창들과도 소식이 뜸해지면서 이제는 완전히 연락이 끊어졌다.
내 젊은 날, 내가 한창 공부하고 창작 욕구에 가득 차 한 명의 영화인으로 성장하려 할 때 얼마나 나에게 큰 도움과 영향력을 주었던 친구인가. 내 일에 자기 일처럼 기뻐하고 내가 잘되기를 누구보다도 바랐던 내 친구였다. 준석이는 나에게 형제 같은 친구였고 내 모든 걸 주어도 아깝지 않은 생명 같은 친구였다.
그러나 우리 사이에 술이 있었다.
우리는 똑같이 폭음하고 광분했다.
그리고 이 미친 짓을 반복했다.
나를 유쾌하고 나른하게 늘어지게 하던 그 좋았던 술이 내 몸처럼 아끼는 내 친구를 떠나가게 했다.
나는 술로 친구를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