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20대의 술버릇

by 이프로

술을 마시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졸업 후부터이다. 대학에 떨어진 나는 재수 대신 미국으로 진학하기 위해 먼저 병역을 해치워야 했다.

만 18세의 나이에 육군 보병으로 자원입대했는데 친구들은 무리 중에서 처음으로 군에 가는 나를 위해 여러 번의 송별회를 벌여 줬고 나는 몇 차례 필름이 끊겼다. 소주 반 병에 맥을 못 추었고 쓴 맛 때문에 잘 마시지 못했으나 취기가 오르면 갑자기 쓰디 쓴 술이 달콤해지는 것을 느꼈다. 술맛이 달게 느껴지면 정신을 잃을 때까지 마셨다. 모두들 그랬던 것 같다. 십 대 후반 얼치기들이어서 다들 서툴렀고 다들 마구잡이로 부어댔다.


그래서 술은 어른에게 배워야 하나 보다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지만 술은 누구에게서도 배우면 안 된다.

자식을 앉혀두고, 혹은 후배들 앞에서 술을 가르치려는 사람은 자신이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

술을 자식에게, 후배에게 가르치는 것을 매너나 예절을 가르치는 것으로 미화하려 들면 안 된다.

술은 공식적인 1급 발암물질이고 한 방울이라도 마시면 몸에 악영향을 미친다.

술 한잔을 반주로 마음 편한 사람과 함께 식사를 하면 입맛이 돌고 음식의 풍미가 살아나고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긴장이 풀리고 분위기가 로맨틱 해지기도 한다.

정말로 한잔만 했을 때의 얘기다.

그렇게 시작한 반주와 사랑스러웠던 대화가 추가로 술을 병째 시키고 나면 흥에 겨웠던 목소리가 커지며 표현이 거칠어지고 대화는 언쟁으로 이어지고, 종국에는 술판을 뒤집고 누군가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면서 모처럼 나들이를 하고 있는 주변 사람들의 행복했던 기념일 식사까지 망치게 되는 것이다.


술은 낭만도 아니고, 풍류도 아니다.

술은 인간성을 말살시키고 관계를 악화시키며 판단력을 흐리게 하면서 아름다운 추억을 잊고 싶은 악몽으로 만든다. 건강했던 심신을 이기적이고 괴팍한 망나니로 변신시키면서 몸뚱이는 비대하고 질병투성이로 만들어버린다.

도대체 누가, 그 누가 술을 단 한잔만 마실 수 있단 말인가.


군인이 되고 나니 보급품이라면서 나라에서 술도 주고 담배도 주었다.

일과 시간에는 사격과 총검술로 사람을 죽이는 방법을 배우고 일과를 마친 후 내무 생활시간에는 고참병들에게서 거짓말하는 법, 공갈 협박하는 법, 아부하는 법들을 배웠으니 술과 담배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악한 일은 다 군에서 배운 듯하다.

졸병 때는 술도 못 먹고 담배도 서툴러서 내 몫을 다 동기들에게 나눠주었으나 상병 말년쯤부터는 배급되는 담배가 모자라게 되고 술 마시는 자리라면 자다가도 일어날 정도로 술을 좋아하게 되었다. 재미없고 지루한 군 생활에서 술은 해방구였고 신나는 오락이었다. 이즈음은 술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많이 마시면 토했고 술 마신 다음날은 속이 아파서 밥도 제대로 못 먹을 때도 있었다.


군에 있을 때 전두환 말년이었고 곧바로 노태우 대선이 있었는데 말도 안 되는 6.29 선언 정신교육을 마치고는 뜬금없이 술과 고기를 주었고 대통령 선거가 임박하자 기호 1번을 노골적으로 강조하며 회식을 자주 시켜줘서 술을 마실 일이 많았다. 긴 내무반에서 모두 모여 형편없는 노래를 부르며 막걸리를 말통으로 나눠마셨는데 술이 약한 병사들은 한쪽 구석으로 밀려나고 센 놈들이 중앙으로 모이는 식이 되었다. 나는 약한 편에 속해서 회식 중간쯤이면 내무반 구석에 쓰러져 잤다. 웃기는 건 술 먹고 취해서 정신을 못 차리고 헤맬 때는 고참이고 졸병이고 다 못 본 척하고 대충 넘어가 주었다.


전역 후 나는 미국 유학 준비를 하느라 무섭게 공부했다.

공부라고는 잊고 있었다가 굳었던 머리로 토플 시험을 준비하려니 남들보다 몇 배로 책을 파야 했다. 새벽부터 학원을 돌면서 사이에 비는 시간에는 학원의 빈 강의실에서 단어를 외우고 문장을 외웠다. 그때 전역 후 복학을 앞두고 나와 같이 영어 학원엘 같이 다닌 동창이 있었는데 그렇게 하루 종일 공부를 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둘이 500cc 한잔을 들이켜면 참 뿌듯했다. 오늘 하루도 알차게 살았다는 보람과 진도 나간 페이지를 볼 때의 성취감으로 한잔만 더 하자며 기어이 1000cc를 채우고 돌아갔다.


영어 공부를 하면서 동시에 영화를 전공할 생각에 당시에 영화를 배울 수 있는 곳이라면 불원천리 쫓아다녔다. 프랑스 문화원과 신촌 대학가의 영화 서클에 가면 머리가 치렁치렁한 형들이 알아듣지 못할 영화 용어와 발음하기 어려운 외국 감독들의 이름을 섞어가며 밤새 토론을 했다. 자막도 없는 유럽 영화를 보고 나면 술판이 이어지고 가끔씩은 날 선 논쟁을 하던 형들 몇은 주먹다짐을 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또 술을 마시기도 했다. 그 형들 옆에서 점심 무렵부터 술을 마시다가 담날 아침 일출을 보는 기이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형들에게서 꼭 기억해야 할 유럽과 러시아, 일본의 주요 감독들과 그들이 연출한 영화 제목을 알게 된 것은 큰 소득이었으나 영화를 하는 사람은, 혹은 예술을 하는 사람은 당연히 술을 마셔야 한다는 근거 없는 주장까지 정설인 것처럼 배우고 말았다. 그들과 어울리면서 영화에 관해 어깨너머라도 배우게 된 것은 그나마 소득이었으나 영화보다는 술을 더 많이 배운 느낌이었다.


그 당시 나에게는 낙서처럼 끄적이던 시놉시스나 스토리 아이디어 같은 것들이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나의 스토리는 술을 한잔 마시고 나면 풍부해지고 생생한 장면으로 묘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술에 취한 채 친구들에게 내가 앞으로 만들 예정인 영화의 스토리를 설명하고 어떻게 클라이막스와 반전을 만들 것인지를 늘어놓았다. 나의 주장으로 모두 종로통에 있는 개봉관으로 몰려가 함께 영화를 보기도 했는데 당시 개봉한 <지옥의 묵시록>에 관해서는 심각한 표정으로 코폴라 감독의 <대부> 같은 이전 작품들과의 차이점을 설명했다. 선배들에게 주워 들었던 영화평을 섞어가며 영화 속 사운드와 헬리콥터의 폭력성에 대해 마치 내 의견인 양 친구들에게 들려주면 친구들은 '역시 영화를 공부하려는 놈은 보는 눈이 다르구나' 라면서 술 취한 공치사를 해주어서 어깨가 우쭐했다.


정말로 술은 내 창의력과 상상력에 힘을 보태주는 것 같았다.

심지어 영어 단어도 더 잘 외워지게 하는 것 같아서 나는 이때 가끔씩 호프집에서 보캐뷸러리 공부를 하기도 하고 소주를 마시며 토플 기출문제를 풀기도 했다. 이른바 음주 공부인데 어리석게도 나는 30대까지도 음주후 학습효과가 높아진다는 내 주장을 정말로 굳게 믿었다.

미친 듯이 공부한 덕택에 나는 예정보다 빠르게 원하던 토플 성적과 입학허가서를 받고 미국에 갔다.

제대한 지 1년이 좀 지나서 미국 대학 강의실에 앉게 된 것인데 상상만 하던 미국의 필름스쿨에 입학하게 돼서 뛸 듯이 기뻤으나 학교에 다닌지 한 달도 안돼서 나는 너무나 마음이 무거워졌다. 한국에서는 모두가 나를 영어 천재라고 했었는데도 막상 수업 내용을 알아듣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숙제는 너무 많았고 특히 책을 읽어 가야 하는 교양과목 과제는 밤새 읽어도 반도 채우지 못했다. 수업 시간에는 아는 내용인데도 머릿속에서 문장을 만들어 답을 하려니 이미 그 순간은 지나가 버리고, 교수는 너무 빠른 속도로 이야기하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면 그제야 천천히 속도를 늦췄다.


그렇게 한 주의 수업을 마치고 금요일 오후가 되면 마트에 장을 보러 갔는데 식스팩이라고 부르는 맥주 6캔을 사고 닭날개 구이나 감자튀김 같은 안주거리를 샀다. 한국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을 녹화해서 빌려주는 비디오를 빌려다가 보면서 맥주를 마셨는데 두 캔을 다 비우지 못하고 한밤중에 술에 취해 한국에 전화를 걸었다. 당시는 국제 전화 요금이 꽤 비쌀 때라 낮시간인 한국의 친구 회사로 전화하면 친구가 전화를 끊고 곧바로 회사 전화로 나에게 전화를 걸어줬다. 그러면 나는 한창 일과 중인 친구에게 영어가 너무 어렵다고, 숙제가 너무 많다고 술주정을 하다가 잠에 빠지곤 했다.

가끔씩 미국인이나 다른 나라 유학생들과도 술을 마셨는데 신기하게도 술을 마시면 나의 영어는 놀랄 만큼 유창하고 빨라졌다. 영어를 배울 때 누구나 경험하게 되는 일이긴 하는데 나의 경우는 좀 더 유별나서 평소에는 입가에 맴돌던 표현이나 여려운 표현이 능수능란해지고 알아듣기만 하던 미국인들의 슬랭과 욕지거리도 태연하게 따라 했다. 인정하건대 나의 영어 실력은 이때 일취월장했던 것 같다.

술이 준 몇 안 되는 긍정적 사례이다.


이런 일상은 거의 매주 반복되었고 혼자 술을 마시다가 취하면 나는 전화기를 들었고 누군가에게 주절대는 습관이 생겼다. 그렇게 혼자 술을 마시는 것이 일상이 되었고 아침에 일어나 보면 내가 보기에도 낯선 풍경이, 기억하지 못하는 풍경이 펼쳐졌다. 전혀 기억이 없는 계란말이가 먹다 만채 식탁에 널브러져 있었고 한국 마켓에서 사다 둔 아껴 먹던 김치가 통째로 꺼내져 뚜껑이 열린 채 한쪽 구석에서 시큼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한 달에 한두 번씩은 이렇게 대취해서 필름이 끊겨 잠드는 일이 있었고 대학원 시절에는 빈도가 더 잦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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