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비수가 되어 가슴에 꽂히는 말을 할 때가 있다.
억울하고, 분하고, 화가 난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나는 그대로 지나친다. 마음이 약해서다.
혹은 따지고 들었다가 둘 다 기분만 잡치고 말 것이 걱정돼서 '그냥 내가 참자' 하고 접을 때가 많다.
못 들은 척, 혹은 그냥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내색 없이 그 시간을 흘려보낸다.
상대는 아마도 그 말이 내게 상처가 되는 줄 모르고 한 말이었을 것이다.
나를 포함한 우리는 얼마나 이런 일을 무심히 해버리는가.
정말로 악의 없이 한 말이 누군가에게 오래도록 남는 못 자국이 돼버리는 것이다.
나도 아마 상대가 그렇게 무심코 한 말이었을 거라고 생각하고 내가 생각해도 쿨하게 그 자리를 툭툭 털고 잊은 듯이 지나쳐버린다.
그러나 나는 안다.
잊어버린 척했던 그 말, 그냥 참자고 접었던 그 말은 수시로 찾아오는 불면의 밤에 밤새도록 내게 그런 말을 했던 상대를 공상 속에서 저주하고 목졸라 죽이면서 왜 그 자리에서 당차게 반박하거나 항변하지 못했나 자책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나에게 상처가 된 그 말을 끄집어 내 생생하고 또렷하게 기억해 낼 것이다, 술에 취한 채.
술에 취하면 나는 제 정신일 때는 별 일 아니라는 듯이 지나쳤던, 혹은 제대로 맞대응을 하지 못했던 그래서 상처로 남은 말을 떠올린다. 그리고 놀랍도록 정교하게 당시 상황을 기억해낸다. 내가 어떤 말을 하다가 그런 말이 나오게 됐는지, 당시 상대는 어떤 차림이었는지, 장소와 시간까지 주변에 있던 다른 인물들까지 큰 오차 없이 기억해 낸다. 여기에 더해 상대가 했던 말에 내가 추측해 낸 감정을 얹는다. 내게 그런 말을 한 당사자가 직장 동료거나 친구일 경우에는 혼자서 분개해하며 술잔을 거칠게 연거푸 기울이는 것으로 끝내겠지만 상대가 아내인 경우는 달랐다.
아내와 결혼 후 나는 대출을 끼고 수원에 24평 아파트를 얻어서 신혼 생활을 시작했다.
아이가 태어나고 연이어 둘째도 생기자 큰 평수의 집으로 옮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임 교수 시절이라 저축액은 턱도 없이 모자랐고 할 수 없이 수원 외곽 논밭 사이에 난데없이 세워진 신축 아파트로 프리미엄을 주고 이사했다. 주변의 택지지구에 아파트들이 세워지면 환경이 나아질 것이고 집값도 따라서 오르게 될 것이라는 계산이었는데 순진하고 낙관적인 발상이었다.
주변에 아파트는 예상대로 세워졌지만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세워져서 같은 생활권으로 묶이지는 않았고 내가 산 아파트 주변에는 오히려 공장들이 가득 들어차서 마치 공단 한가운데에 살고 있는 모양이 되었다. 편의시설을 이용하려면 차를 타고 나가야 했고 창문을 열면 공장 소음과 인근 공군 비행장의 전투기 이착륙 소음이 시도 때도 없이 생활 속에 파고들었다.
아내도 나도 서로 말은 안 했지만 우리가 이곳으로 이사한 건 일생일대의 큰 실수였다는데 전적으로 동감했다.
나는 그런 결정을 내릴 때 말리지 않은 아내를 원망했고 아내는 내가 우기다시피 계약을 감행한 것이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새 집에서 2년쯤 살았을 무렵 나는 학과장을 맡고 있었는데 학교 일을 보다가 퇴근이 늦어지는 경우가 많았고 다음날 아침 수업 때문에 일찍 일어나서 출근하는 바람에 수업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다. 이 즈음 학교가 있는 천안으로 이사를 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학교에서도 은근히 신임 교수들이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출퇴근하기보다는 천안으로 거주지를 옮기라는 묵언의 압력이 있던 시절이었다. 우리는 살던 집을 전세를 주고 학교 뒷산 가까이에 세워진 새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아파트는 우리가 살던 집보다 평수도 훨씬 컸고 무엇보다도 숲 속에 지어진 신축 아파트라 쾌적했다. 시내와 상당히 떨어져 있어서 외딴섬에 사는 느낌이었지만 아이들이 어렸고 내 직장인 학교는 걸어서 갈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웠기 때문에 우리는 2년 정도만 살다가 다시 경기도로 돌아가자는 생각이었다.
아내는 당시 둘째를 낳은 지 얼마 안 되었는데 그래서 숲 속에 있는 아파트가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둘째 애가 우리가 살던 집에서 새집증후군으로 의심되는 기침과 감기를 달고 살아서 환경을 바꾸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주말이면 천안 시내에 나와서 외식을 하고 주일에는 천안역 근처에 있는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다. 45평 널찍한 집은 방이 네 개나 있어서 방 하나는 온전히 아이들의 놀이터로 사용하고 나는 가장 뷰가 좋은 방을 서재로 꾸며 사용했다.
모두가 만족한 집이었지만 2년은 훌쩍 지나갔다. 우리는 2년 더 살기를 원했지만 내 아파트에 살았던 세입자는 이사를 원했다. 새로운 세입자를 찾기 위해 애를 써보았지만 계약 만료일까지 구하지 못했다. 방법은 대출금으로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내어주고 계속 세입자를 구하며 빈집으로 비워 두든가, 아니면 우리가 천안에서 다시 돌아오는 것뿐이었다. 부동산 사장의 예측은 세입자를 금방 구하기는 어려울 것이고 집을 비워두는 시기를 길게 잡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여전히 적지 않은 대출 이자를 내고 있던 나는 또 대출을 추가로 받아야 하는 것이 큰 부담으로 느껴졌고 그렇다면 방법은 다시 살던 집으로 돌아가는 것 밖에 없었다.
천안의 숲 속에 지어진 이 편한 세상 아파트는 모든 게 널찍하고 쾌적했었다. 지하주차장에서 집으로 바로 연결되는 넉넉한 주차장은 비가 오거나 추운 날에도 외출이 편리했고 각 방마다 독립적인 보일러 컨트롤러가 있어서 아이들과 어른 방의 난방을 적절하게 조절할 수 있었다. 다시 돌아온 우리 집은 우리가 살던 집이니 당연히 익숙했지만 쾌적했던 천안 집에 비해 모든 게 불편했다. 어둡고 좁은 주차장과 부족한 주차 공간 때문에 밤늦게 돌아오면 몇 개 안 남은 주차 공간을 찾기 위해 아파트 단지를 헤매고 다녀야 했고 지하 주차장에 세운 경우에는 지상까지 계단으로 올라와 내가 사는 동까지 걸어야 했다. 집안은 전체가 하나의 온도로만 조절되는 구형 보일러였고 조용하고 평화롭던 숲 속에 살던 우리에게 전투기 이착륙 소리의 소음과 공장 소음은 꽤나 거슬렸다. 이런 환경의 변화는 자꾸 술을 마시게 했다.
그렇게 다시 옛날 집으로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어 마음이 불편할 때 아내가 한마디 툭 던졌다.
“여기는 다 불편해. 나는 이제껏 지하철이 연결되지 않는 동네에선 한 번도 살아본 적이 없어요.”
그 말은 내 아킬레스 건을 예리하게 도려냈다.
정말로 아팠다.
내 무능과 판단 착오를 직접 비난하는 말이었고 앞으로도 헤어날 수 없는 처지를 가차 없이 판단한 판결문 같았다.
나는 결혼 후 처음으로 아내를 노려 보았으나 아내는 하던 일로 고개를 돌려버려 내 분노를 눈치채지 못했다.
‘그래, 당신은 갑자기 그런 말이 자신도 모르게 터져 나온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누적된 나에 대한 불만이나 무시가 그런 말로 표현되어 나온 것일 거야. 그래서 그건 실수라기보다는 날 향한 무시가 차곡차곡 쌓여서 분출되었다고 봐야지.’
나는 이것이 아주 좋은 술 안주감이라는 예감이 들었고 날을 잡아서 아내에게 왜 그 책임을 나 혼자 뒤집어써야 하는지, 그렇게 안 풀릴 지역일 줄 알았다면 왜 이사할 때 동의를 한 건지를 따져서 아내의 언급은 부적절하고 부당하며 나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게 해야 한다고 마음먹었다.
개강을 며칠 앞둔 어느 날 나는 책을 사러 간다고 시내를 나갔다가 혼자서 막걸리를 두 통 가까이 마셨고 잔뜩 취해서 비틀거리며 단지로 걸어 들어왔다. 취한 몸은 술을 더 달라고 아우성쳤고 나는 편의점에서 막걸리를 한통 더 사서 단지 내 공원 벤치에 앉아서 나발을 불었다. 누구든 걸리면 받아칠 기세였는데 나이 든 경비원이 술을 마시는 나를 향해 뭐라고 말을 했다. 혀가 이미 꼬부라진 나는 경비원에게 말도 되지 않는 항의를 했고 슬기로운 경비원은 내 눈빛이 정상인의 것이 아님을 보고 나를 피해서 사라졌다.
이제는 며칠 밤을 나를 괴롭혔던 아내의 불평을 따질 차례였다. 결혼 후부터 조교수 시절까지 얼마 안 되는 봉급에 몇 푼이나마 추가로 수당을 더 받기 위해 기본 시수 보다 더 많은 수업을 하고, 외부 사업도 병행하면서 연구수당을 벌어왔다. 그것뿐인가, 학회 프로젝트에서 몇 푼 안 되는 연구비를 받겠다고 다른 학교 꼰대 교수들 챙겨가면서 정부 사업을 한다고 사흘이 멀다 하고 서울을 다녀오며 내가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가.
물려받은 유산 한 푼 없이, 탈탈 털어봐야 십원 한 장 안 나오는 처가에도 불구하고 내 힘만으로 버티고 있는 나에게 아내의 발언이 얼마나 큰 망발이었음을 깨닫게 하고 반성하게 해야 한다. 그때까지 나는 아내를 야단 칠 논제와 명분이 뚜렷했다.
하지만 반쯤 남은 막걸리를 한 번에 들이켜면서 이미 대취한 몸속으로 쏟아져 들어온 술은 아내에게 해야 할 말은 잊게 하고 적개심과 증오라는 감정만 증폭시켰다.
그렇게 앞뒤 다 잘라버리고 어마어마한 분노를 폭탄처럼 집어 들고 집에 들어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