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개신교 세례 교인이고 집사 직분을 가진 신앙인이다.
매월 봉급의 십 분의 일을 떼어 내 십일조 헌금을 하고 매 주일에는 주일 헌금을 드리고 절기마다 특별 헌금도 드린다. 교회가 건축을 할 때는 별도의 목돈을 헌금한다. 교회에서는 사역팀의 팀장을 맡고 있어서 매주일마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일 년에 몇 차례씩 대표 기도 순서가 돌아오면 주일 예배에 교인 대표로 단상에 올라 기도를 하기도 한다.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을 외우고 가끔씩이긴 하지만 특별한 기도제목으로 교회에서 릴레이 기도자를 모집하면 빠지지 않고 참가해서 몇 시간을 기도실에서 무릎 꿇고 기도를 드리기도 한다.
봄가을에는 일주일씩 특별 새벽기도 모임이 있는데 여기에도 항상 참여하고 있다. 거기다가 우리 교회에서는 매월 첫째 주 토요일에 남성 신도들이 모여서 새벽기도모임을 하고 있는데 여기에도 참석해서 기도와 예배를 드린다.
정리하자면 나는 겉으로는 신실한 기독교인의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날 집을 부수고 아내와 아이들이 한밤중에 나에게서 도망쳐 나가게 한 일이 벌어지기 몇 시간 전 오후에 나는 대형 서점에 갔다.
이미 갖고 있는 성경이 여러 권이지만 깔끔하게 나온 영한대역 성경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동안 성경을 읽다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나오면 현대어로 번역된 성경과 대조해서 읽기도 했는데 어떤 부분은 차라리 영어로 읽는 것이 더 이해가 빨라서 아예 한 페이지에 영어와 한글로 병기된 성경이 필요했다. 이미 갖고 있는 영한대역 성경이 있었지만 구입한 지 오래되어서 책이 낡았고 새로운 현대 영어 버전의 성경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서점에는 여러 가지 영한대역 성경이 있어서 한참 동안 이것저것 비교를 해보고 그중 마음에 드는 것을 구입했다.
이제 성경을 읽다가 이것저것 찾아보는 수고가 줄고 이전보다 빠르고 재미있게 성경을 읽을 수가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게 구입한 성경을 사들고 밖으로 나오니 늦여름의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고 시내에 나온 김에 저녁을 먹고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밖에 나왔다가 집에 돌아갈 때 식사 시간과 엇비슷해지면 나는 일부러 식사를 하고 들어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아내를 도와주는 거라고 생각했다.
아직 아이들이 어려서 아내가 저녁식사를 준비하려면 내가 먹는 밥과 아이들이 먹는 밥을 따로 준비해야 했고 식사를 할 때도 아내는 아이들이 밥을 제대로 먹도록 도와줘야 했다. 그럴 때 내가 밖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들어가면 아내는 아이들을 먹이면서 같이 한술 뜨면 한 끼니가 넘어가는데 내가 있다면 아내는 나를 위한 반찬과 국이나 찌개를 끓여야 하니 일이 많아지는 것이다.
식사 후에 설거지는 내가 대신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아내에게는 또 아이들이 양치하는 걸 도와주고 잠자리를 챙기는 등 할 일이 많았다.
혼자 밖에서 먹는 저녁식사는 나에게도 편했다.
아내는 내가 술 마시는 걸 대놓고 불평하지는 않았지만 술을 마시는 나를 바라보는 아내의 눈빛에는 걱정과 근심이 비쳐서 그 앞에서 술을 마실 때면 취하기 전까지는 불편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코로나를 겪은 지금이야 혼술이니 뭐니 하면서 식당에서 혼자 술을 마시는 일이 별일 아닌 걸로 여겨지게 됐지만 몇 년 전인 당시만 해도 식당이나 술집의 피크 타임인 저녁 식사 시간에 중년 남자가 혼자 자리를 차지하고 술을 마시는 걸 환영하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그래서 나는 식당 앞을 서성대면서 식당 내부의 눈치를 보고 들어갈 것인가를 결정했다.
너무 장사가 잘되는 집이어서 혼자 들어가는 것이 완전히 민폐다 싶으면 못 들어가고 다른 집을 찾아야 했다.
식탁이 몇 개 안돼서 손님이 금방 다 들어차는 식당도 경계 대상이다.
이미 낮술을 시작해서 불콰해진 손님들이 풀어진 자세로 술을 마시고 있어도 혼자 들어가기에는 쑥스러워서 돌아 나왔다.
식당은 한가하지만 종업원이나 사장이 홀에 앉아서 손님들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집에는 괜히 눈총을 더 받을 것 같아서 못 들어갔다.
이래서 못 들어가고 저래서 못 들어가고... 저녁 무렵 만만한 식당을 찾느라 먹자골목이나 술집 타운을 여러 번 왔다 갔다 하다가 결국은 또 다른 인근의 주점가로 발길을 옮긴 적이 여러 번이었다. 그러다가 시간도 늦어지고 배도 고파져서 스스로에게 타협을 보고 들어가는 식당은 1인 식사가 민망하지 않은 해장국집이나 순대국밥 집인 경우가 많았다.
장어구이나 스시집에 혼자서 술병을 기울이며 식사를 하기란 어지간한 용기가 필요하지만 국밥에 소주 한 병을 시키는 나홀로 손님이 나 말고도 여럿 있는 식당은 결국 국밥집이나 기사식당이었다.
식당에 들어가서도 경계를 풀지 말고 살펴야 하는 것이 있다.
혹시라도 아는 사람이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미국에서 살다가 온 나는 원래 한국에 아는 사람이 별로 없지만 내가 사는 동네 근처에서는 혹시라도 같은 교회 다니는 교인이 있을 수가 있고 혼자서 술을 마시는 모습을 들킨다면 그건 너무 상상하기 싫은 일이었다.
혼자 술을 마시는 일은 이렇게 피곤한 일이다.
한 손에 성경을 사들고 들어 온 식당에 자리를 잡은 나는 국밥과 막걸리를 시켰다. 마음 같아서는 도수가 센 술을 시키고 싶지만 국밥집에서의 선택은 소주 아니면 막걸리다.
백세주나 청하 같은 술도 팔지만 도수가 낮아서 오히려 양 많고 빨리 취하는 막걸리가 나을 것 같았다.
술에 취하기 전에는 이렇게 소심하게 식당을 찾아 헤매지만 일단 술에 취하면 나는 다른 사람이 된다.
그날은 아니었지만 술에 취한 날 술집 주인과 사소한 문제로 시비가 생겨서 말다툼을 한 적도 있고 술에 취해 집에 들어가다가 아이들 생각이 나서 들른 패스트푸드 치킨 가게에서는 주문을 받는 젊은 아가씨가 굼뜨게 움직이고 느리다는 이유로 일을 제대로 하라고 야단을 쳐서 울음을 터뜨리게 한 적도 있다.
소심한 나에게 막걸리 한 통은 금방 용기를 주고 근거 없는 자신감을 주었다. 하나 더 시켜서 식은 국밥의 쪼가리 고기를 안주로 벌컥벌컥 들이켰다.
두 번째로 시킨 막걸리가 바닥을 보일 때쯤 식당 안의 눈치를 다시 살핀다. 이제는 취기가 올라 아까와는 다른 사람이 되었지만 여전히 식당에 너무 사람이 많아서 대기 손님이 있을 정도이거나 나를 향한 주인의 시선이 곱지 못하다면 겨우 국밥 한 그릇 팔아주면서 술을 또 시킬 수는 없었다.
이제는 일어날 시간이었다. 막 잔을 들이켜고 계산을 한다.
아는 사람들과 술자리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어려운 일은 집에 곧바로 들어가는 일이다.
직장 동료나 동종업계에 있는 사람들과의 회식에서는 술을 양껏 마시기가 어렵다.
그들 앞에서 취한 모습이나 흐트러진 모습을 보였다가는 후환이 두렵기 때문이다. 말실수를 해서도 안되고 맘 놓고 내 주량을 노출시켰다가는 소문이 나는 게 싫었다. 젊은 시절에는 술 잘 마시는 걸로 소문이 나는 것을 개의치 않았지만 나이가 들고 나니 양껏 술 마시고 난 다음 날 왠지 다른 사람의 시선이 신경 쓰였고, 술자리에 함께 있었던 이나 내가 술 마신 얘기를 전해 들은 이가 빙긋이 웃으며 ‘술이 세시던데요’라며 건네는 인사말이 부담스러웠다.
나는 그들 대부분과 식사 자리를 한 적이 있었고, 식사를 하기 전 평소대로 잠깐 눈을 감고 손을 모으고 식사 기도를 하는 모습을 본 사람이 있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 아무리 맛있는 안주가 나왔다 해도 주량을 점잖은 선에서 멈추게 해야 했다.
그래서 나는 집에 돌아오면 곧바로 집으로 들어오지 않고 아파트 단지 입구의 편의점에 들르는 경우가 많았다.
거기서 술을 한병 더 사서 마시고 들어가거나 집으로 갖고 들어가서 부족했던 나의 주량을 채우며 나만의 마무리를 하는 것이다.
그날은 막걸리로 시작한 주종을 바꾸지 않고 막걸리를 한병 더 사서 아파트 단지 안의 벤치에 걸터앉았다. 코앞이 집이니 안도감과 편안함이 느껴졌고 그때까지 식당이나 버스에 흘리지 않고 갖고 온 성경이 나는 아직 그렇게 취하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하는 듯했다.
나의 신앙을 성장하게 할 새로운 영한대역 성경이 한쪽에, 다른 한쪽에는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술이 한 병 가득 놓여서 내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유쾌해진 나는 그 자리에서 콧노래를 부르며 막걸리 뚜껑을 돌려 땄다.
잔 없이 나발을 불듯 막걸리를 들이켜자 그때까지 잊고있었던 아내와의 결전이 새삼스러운 적개심과 함께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래, 맞아, 오늘 아내에게 그동안 하지 못했던 얘기를 좀 하면서 혼을 내야겠어’
한번 돋워진 화는 이미 취한 몸에 2차로 들이켜지는 술과 섞이자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됐다.
‘괘씸한 년’
평소에 욕을 하지 않고 욕하는 사람들을 경멸했지만 술에 취하면 나는 욕을 했다.
그렇게 아내에 대한 분노를 한껏 끌어올리고 들이키던 술도 바닥이 나자 나는 거사를 치르는 쿠데타 군인처럼 성큼성큼 집으로 걸어 들어갔다, 한 손엔 성스러운 경전, 성경을 들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