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에 잔뜩 취하고 화가 난 채 집 안에 들어선 나는 술 마실 때부터 ‘오늘 단단히 혼을 내고야 말겠다’고 벼르고 있었던 아내가 보이지 않자 시작부터 계획이 꼬이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당시 6, 7세쯤이던 아이들은 방에서 잠들어 있었고 인기척을 내봐도 아무도 나와보지 않는 것이 아내는 잠깐 어디를 간 모양이었다.
기다려도 아내가 돌아오지 않자 잔뜩 돋웠던 화가 잦아들 기세여서 그게 또 성질을 일으켰다.
분풀이를 하려 했지만 대상이 아예 사라져 버렸을 그 시점에, 나는 뭔가가 필요했다.
그때 내 눈에 식탁 의자와, 여름이라 열어 둔 거실 베란다 통창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나라 국민 대다수의 거주 형태가 아파트이니 평수는 달라도 일반 가정의 거실 풍경은 비슷할 것이다.
주방에서 거실을 지나 베란다로 열려있는 미닫이 통 창문은 그대로 벽과 같은 크기로 천장부터 바닥까지가 유리문이었고 늦여름이었던 그때 양쪽 미닫이를 가운데로 열어 두어서 창문 두 개가 가운데 고정식 창과 겹쳐져 있었다.
화풀이 대상이었던 아내가 돌아와서 아연실색하게 하고 내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를 제대로 알리려면 집안을 박살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내린 결론에 흡족하여 나는 망설임 없이 식탁 의자를 들어서 그대로 거실 유리창을 향해 휙, 던졌다.
지금 거실에 나가보면 주방부터 거실 베란다 창까지는 그 거리가 꽤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술에 취하면 평소보다 힘이 더 세어지는 것 같다.
나는 결코 가볍지 않은 원목 재질의 식탁 의자를 번쩍 들어 거대한 거실 베란다 창문을 향해서 던져버린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예상한 것처럼 거실 유리창이 박살이 나면서 산산조각 난 것이 아니라 의자가 유리창에 튕겨져 나동그라진 것이다.
‘이런 제길...’
술에 빨리 취하려고 막걸리를 연거푸 들이켤 때부터 오늘 밤 어떻게 난동을 피우면서 화풀이를 하고 아내를 굴복시킬 것인지를 계획했는데 제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튕겨져 나온 의자를 다시 집어 들고 이번에는 가까운 거리에서 세차게 의자를 유리창에 던졌다.
와장창
바로 이거지. 이제야 계획대로 일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겹쳐진 유리창 중 거실 쪽 유리창만이 부서졌을 뿐이다. 겹쳐진 베란다 쪽 유리창은 아직도 건재했다.
유리창을 부서뜨리고 나서 알게 된 것인데 아파트 유리창은 유리가 두 겹으로 포개진 이중이었고 강도도 생각보다 꽤 튼튼했다.
이제는 다리 하나가 부러진 의자를 다시 집어 들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완전한 박살인데 아직 한 겹이 남은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다시 한번 있는 힘껏 던졌다.
와장창
그래, 다 부서져 버려라.
이때부터 나는 걷잡을 수 없어진 것 같았다. 나머지 유리창도 다 부서뜨려주마.
이제는 두 번이나 집어던진 식탁 의자도 다 망가져서 나는 서재에 가서 의자를 가져왔다.
그리고 나머지 유리창에 집어던졌다.
와장창, 와장창, 와장창…
지금 기억해 보니 아내가 그때쯤 집에 들어섰고 내가 아내를 향해 따져 물으려던 말을 하려던 순간, 거대한 유리창이 몇 장 째 다 부서지도록 잠에서 깨지 않고 있던 아이들이 방문을 슬그머니 열고 거실로 나왔다.
유치원에 다니고 있던 둘째는 잠에서 깬 눈이 휘둥그레지고 아내는 재빨리 큰아이를 안고 밖으로 나가려고 현관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때 이웃집에서 경찰에 신고를 했는지 출동한 경찰이 초인종을 누르고 있었다.
나는 둘째 아이를 안고 놀란 아이가 깨진 창문 잔해를 보지 못하도록 재빨리 현관 복도로 나갔는데 큰애 신발을 신긴 아내가 어디 외출이라도 할 때처럼 내게서 둘째를 건네 안았다. 나도 모르게 아이를 자연스럽게 아내에게 건네주었다. 마치 내가 지금 저지른 일을 나도 잘 모르겠다는 식으로.
아이를 안자 마자 아내는 밖으로 나갔고 그 사이에 경찰은 집안으로 들어오려고 했다. 발 하나를 집안으로 집어넣으려는 경찰과 실랑이를 벌였다.
경찰은 이웃주민의 신고가 있어서 집안에 폭력의 흔적이나 다친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기를 원했고 나는 영장이 없으니 들여보낼 수 없다고 문을 닫았다. 복도에는 위 아래층 이웃들이 나와서 기웃거리기 시작했고 계속 초인종을 누르며 인터폰으로 문을 열어달라는 경찰은 사상자가 없는지 직접 확인하지 않고는 돌아가지 않을 기세였다.
미쳐서 날뛰며 집안을 때려 부수던 나는 아이들이 놀란 눈으로 나오는 모습을 보고 제정신으로 돌아왔던 것 같다. 아이들이 방금 내가 한 짓을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재빨리 아내에게 아이들을 넘기고 나가도록 내버려 두었다. 계속 실랑이를 벌이며 물러갈 생각을 하지 않는 경찰을 들어오게 해서 결국 나도 안 다치고 다른 사람도 다친 이가 없다는 것을 확인시켜서 돌아가게 했다.
그리고 나는 기억도 없이 안방 침대로 기어들어가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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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그락, 달그락 소리가 주방 쪽에서 나는 것 같았다. 몸이 욱신거렸다. 다시 눈을 감고 잠에 빠졌다.
시간이 좀 지나자 이번에는 유리조각을 쓸어 담는 소리가 들렸다. 또 눈을 감았다.
열어 둔 창밖에서 새소리가 들렸고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이 늦은 오전의 햇빛이 환하게 방안에 들어와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이제는 인기척이 사라진 적막한 집안이었다.
거실로 나와 보니 내가 ‘꿈 일거야’라고 생각했던 간 밤의 흔적이 적나라하게 펼쳐져 있었다.
거실 쪽으로 퍼진 유리 조각들은 누가 치웠는지 욕실에 있던 플라스틱 아기 욕조에 담겨 있었는데 깨진 유리 조각들이 너무 크고 많아서 베란다에는 아직도 유리 파편이 넓게 널브러진 채 그대로 있었다.
아내에게 연락을 받았는지 다녀 간 사람은 누나였고 집안을 치우고 주방에는 북엇국을 끓여두고 갔다.
휴대폰을 열어보니 미국에 있는 형에게서 새벽 시간에 다급한 듯 여러 통의 전화가 걸려왔었고 내가 전화를 받지 않자 이메일을 보내온 것이 보였다.
유리창 파편들과 베란다 한쪽에 나동그라진 부서진 의자 두 개를 보고 있으니 어젯밤 내가 저지른 일들이 스치듯 지나간다.
이제 뭘 어떻게 해야 하나. 아이들과 아내는 어디로 간 걸까.
나는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유리가 깨어진 채 뻥 뚫린 베란다 창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확 뛰어내려 죽어버릴까.
뒷감당을 어떻게 해야 할지, 귀찮고, 막막했다.
그런 내가 역겹고 싫어서 정말 죽어버리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이 모든 일은 막걸리를 혼자서 세 통 연거푸 마시고 저지른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