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술, 나는 술을 사랑했다.
아내가, 아이들이 내가 술 마시는 것을 원치 않았지만 그래서 그들 바람대로 술을 마시지 않으려 해 보았지만, 술을 생각하면 아내와 아이들은 어느덧 우선순위에서 밀려난다. 그리고, 가족이니까 당연히 날 기다려줄 거라고 생각했다.
그뿐인가, 술을 생각하노라면 어느덧 작은 희열이 피어올라 스멀스멀 번져가기 시작하고 오래지 않아 온 몸에 기대와 행복감이 가득 찬다.
참으려 해도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번지며, 술이 줄 평안함과 몽롱함에 마시지도 않았는데 정신이 아득해진다.
아내와 아이는 그렇게 안중에서 사라진다.
술을 사랑하지만 천만다행으로 나는 연일 마시지는 못한다.
일단, 직장과 교회 등 중요한 일정이 있는 전날은 술을 마시지 않는다.
다음 날 쉴 수 있을 때에 마셔야 마음 편하게 마실 수 있고, 마음 편하게 마시는 술이 아니라면 나는 좋은 때를 위하여 기다릴 수 있다.
지나치게 취하지 않겠다고 마음 먹지만 그거야 맨 정신일 때 생각이고, 술에 취하면 내가 나를 통제하는 것이 어려워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직장이나 내가 속한 사회에서 곤란을 겪지 않으려고 다음 날 휴식을 취해도 문제없을 때, 비로소 나는 술을 마신다.
이 정도의 자제력이나마 유지했기 때문에 나는 그동안 큰 문제없이 사회생활을 감당할 수 있었을 것이다.
연거푸 술을 마시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내 몸이 거부하기 때문이다.
숙취로 고생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어쨌든 술을 마신 다음 날은 많이 마신 날이건 적게 마신 날이건 술을 가까이하고픈 마음이 없다.
그래서 나는 술 마신 다음 날 술에서 깨려고 먹는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오전부터 해장술을 마시거나, 술을 연일 마시는 사람들을 경이롭게 바라봤는데 엉뚱하게도 그것이 나 자신을 술에 끌려 다니지 않고 ‘적당히’ 술을 즐기는 이성적인 음주 애호가로 착각하게 했다.
술을 사랑하지만 매일 마시지는 않는다는 것, 이것이 나에게 묘한 자긍심을 심어주었고, 나는 절대로 뉴스에 오르락 거리는 알코올 중독자들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주장을 하게 했다.
술꾼들이 월요일부터 매일 마시고 출근하는 것을 나는 이해 못 했고, 술 때문에 직장이나 사회에서 자기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해서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의 무책임함을 비난했다.
특히 음주운전을 하거나 음주 후유증 때문에 약속을 못 지키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과 나를 비교해 보면 나는 너무나 멀쩡한 애주가일 뿐, 술로 인해 타인에게 피해를 주거나 업무에 차질을 빚는 일은 없다고 자부하고 다녔다.
내가 자랑스러워하는 나 스스로 정한 이 규칙, 즉 업무나 건강상의 이유 때문에 한번 음주 후에는 꼭 이틀, 삼일 동안 휴식일을 지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게 며칠을 버티다가 고대하던 음주가능일 오후쯤이 되면, 아... 내 몸과 정신 회로는 알코올을 부어달라고 아우성을 친다.
그날의 퇴근 무렵이면 오늘은 무슨 술을 마실까, 어떤 안주가 적당 할까를 고민하며 몸이 달뜨면서 기분 좋은 흥분이 달아오른다.
남몰래 첫사랑을 가슴에 품은 10대 소녀가 먼발치로라도 상대를 볼 수 있는 날이 왔을 때의 심경이 그럴까?
술을 마실 생각에, 술을 마실 수 있는 시간이 점점 다가오는 그 오후에, 첫사랑이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모습을 바라보는 소녀처럼 내 가슴은 두근거린다. 설레는 마음에 발걸음도 가벼워지고 마음도 한없이 여유로워진다. 만일 그런 시간 즈음에 누군가가 어려운 부탁을 해왔더라면 나는 웬만하면 오케이를 해주었을 것이다.
나의 어느 술요일 오후, 안주거리도 사고 시장도 볼 겸 아내와 함께 마트엘 갔는데 생선 코너에서 물건을 살펴보는 아내를 두고 슬그머니 각종 술이 잔뜩 진열된 술 코너로 갔다. 아무리 오래 있어도 즐거운 그곳엔 전 세계에서 온 사랑스러운 술병들이 가득가득 내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오늘은 어떤 걸로 마셔볼까 고민하면서 천천히 둘러보는데 어느새 마트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낙원으로 변해있고 내 머릿속에는 엔도르핀이 팡팡 터지면서 무아지경으로 빠져들어가는 듯했다.
거기서 갑자기 <라스 배가스를 떠나며 Leaving Las Vegas>의 니콜라스 케이지와 똑같은 모습의 나를 발견했다.
너무 행복해서 죽을 지경이라는 웃음을 얼굴에 가득 담고 위스키, 진, 버번, 와인, 코냑 등 각종 술을 쇼핑 카트 가득 집어 담으며 기뻐하는 알코올 중독자 케이지의 모습과 나는 몹시 닮아 있었다.
영화에서 니콜라스 케이지는 술 때문에 직장에서 해고당하고 아내에게 이혼당했으며 몸도 성치 않았는데도 24시간 술을 마실수 있는(미국은 주마다 심야에 주류 판매 금지 시간이 있는데 네바다주는 24시간 음주 판매가 가능하다) 라스베이거스로 와서 술을 마시다 죽는다.
니콜라스 케이지와 똑같은 미소를 머금었지만 나는 절대로 그런 부류의 알코올 중독자와는 다르다고 다시 한번 스스로를 변호한다.
술에 대한 예찬과 내가 경험했던 세계 각국의 술 문화는 밤새도록 얘기해도 지치지 않고 이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싱싱한 해산물과 잘 어울리는 소주, 특히, 그중에 겨울 방어 같은 제철 활어회와 소주는 얼마나 멋진 궁합인가. 두텁게 반죽을 부쳐서 번철에 넉넉히 기름을 두르고 부쳐 낸 녹두전이나 해물 듬뿍 얹은 파전에 막걸리가 빠진다면 그것은 완성이라 부를 수 없다. 추운 겨울 따끈하게 데운 히레사케에 일본식 닭구이나 어묵을 떠올리면 시리던 가슴속 한기가 누그러진다. 글라스 주둥이에 라임을 묻힌 소금을 발라 잔에 따라주는 데낄라는 매콤한 살사를 찍어먹는 나초와 얼마나 멋지게 어울리던가. 주머니 사정이 넉넉할 때 맛볼 수 있는 한우 등심이나 프라임급 수입 스테이크와 곁들이는 말벡이나 까베르네 쇼비뇽 와인이 만드는 마리아쥬는 어쩌란 말인가.
술은 이렇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나를 유쾌하게 하지만 반면에 이 모든 종류의 술을 마시고 나서의 엔딩은 그리 아름답지 못했다.
그렇게 맛나고 잘 어울리는 술이었건만 나는 적당한 취기에 멈추지 못하고 한잔만 더 마시자고 술을 따랐고, 그러다가 술이 떨어져서 더 마실 술이 없게 되면 한잔 더 마실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한국은 언제 어디서나 너무나도 술을 구하기 쉬운 나라여서 술이 더 필요한 내게 절망감을 준 적은 없지만 더 마시고 싶은 욕망이 절정에 달했을 때 만일 구할 수 있는 술이 없었더라면 그리고 술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절도였다면 나는 아마도 망설이지 않고 감행했을 것이다.
그렇게 한잔만 더, 하고 마시게 되면 결코 한잔만 더 마시지 않는다.
그리고 다음부터는 혹시라도 술이 떨어질 것을 염려해 미리 술을 충분히 확보해 두고 술을 마시게 된다.
나는 가끔씩 백패킹을 즐기는데, 사실 이것도 알고 보면 산꼭대기에서 별을 보며 하룻밤 아웃도어 낭만을 즐긴다는 명분을 내세울 뿐, 본래 목적은 산 정상에서 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시원한 맥주를 들이켜고 싶다는 것이다. 백패킹은 아무리 준비를 잘해도 침낭과 텐트, 버너, 코펠 등으로 15kg 이상의 배낭을 지고 산을 오르게 되는데 아무리 배낭이 무거워도 넉넉히 챙기는 것이 있으니 바로 술이다. 산 정상에서 술이 떨어졌을 때의 낭패감을 생각한다면 이미 15kg이 넘어가는 배낭인데도 술 때문에 추가로 2, 3kg쯤 늘어난 배낭이야 기쁘게 감수하고 올라간다.
땀을 비 오듯 흘리면서, 거친 숨을 몰아쉬며 눈앞에 펼쳐진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고 즐거워하는 대신, 잠시 후 정상에서 펼쳐질 나의 술상을 생각한다. 그러면 이 세상에 힘든 산은 하나도 없다.
술 앞에서 불가능은 없어 보였다. 나는 술을 정말로 사랑한 것이다.
달콤한 몽롱함으로 오래전부터 조금씩 세뇌당하고 판단 착오 현상을 일으키는 술의 가스 라이팅에 길들여진 나는 제대로 술의 노예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