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다시 술을 마셔야 했던 이유들

by 이프로

술을 다시 마시게 됐지만 술에 취한 채 또다시 내 안의 폭력성이 튀어나올까 봐 늘 조심하고 조심했다. 내가 조심하고 적절한 선에서 절제하려는 노력을 아내도 아는지 전학 온 학생처럼 쑥스럽게 술병을 꺼내 식탁에 올려놓으면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저녁 식사와 함께 술을 마시면서 나는 아내에게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나 외부 사업 일, 교회 일 등 내게 일어난 대부분의 일들을 얘기했다. 아이들이 지내는 얘기를 묻기도 하고 내 생각과 연구 계획을 말하거나 아내의 의견은 어떤지 묻기도 했다.

미국에서 오랫동안 자취를 했기 때문에 시장 보는 일은 자연스럽게 내 일과 중에 하나가 되었는데 결혼 이후에도 마트는 항상 내가 가거나 아내와 함께 갔다. 이것저것 집어 들다가 술안주로 보이는 음식을 사는 것도 이젠 그러려니 했다. 술을 다시 먹되 이젠 반주로, 격조 있게, 조용히 먹자는 게 내가 스스로 정한 타협안이었고 나는 취했더라도 그 선을 넘지 않으려 애썼다. 그런 나를 늘 괴롭히는 놈이 있었으니 불면과 과민이었다.


나는 별것 아닌 일로도 마음이 쓰였고, 신경을 거스르는 일이 생기면 무시하려고 해도 잠자는 일이 어려워졌다. 교수라는 직업, 특히 예술대에서 창작하는 학생을 지도하는 교수라는 일은 학기초에 바짝 긴장해야 했다. 더군다나 나는 교수가 되는 일에 별로 준비가 없어서 처음 10여 년 동안은 매 학기 초마다 쉽지 않았다. 한국에 돌아온 직후 영화사에서 돈이 안 들어오고 생활비라도 벌어야 할 때 잠깐 영어 학원에서 강사 생활을 한적은 있었지만 영어 강사와 영화과 교수는 많이 달랐다. 더군다나 누구를 체계적으로 가르쳐 본 경험이 많지 않아서 ‘교수법’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매 학기가 시작되는 무렵, 그러니까 방학이 끝나는 즈음에 나는 초 긴장상태가 되었다. 다음 학기에 맡을 과목의 수업 준비를 하는 것은 당연한데 내 전공의 경우 여느 과목들의 수업 준비와는 다른 부분이 많은 편이었다.


학교마다 조금씩 다른데 우리 학교 영화학과는 이론, 제작, 연기 전공으로 세부 전공이 나누어진다. 나는 제작 전공 교수로 단편영화를 한 학기 동안 완성하는 3, 4학년 과정의 제작 워크숍 수업을 메인으로 맡았고 1, 2학년 대상의 제작 기초 과목 수업도 해야 했다. 내 수업이 다른 전공 교수들과 가장 다른 점은 내 수업에는 교과서나 진도라는 게 딱히 없다는 것이다. 방학중에 학생들이 제출한 시나리오를 심사해서 그중에 졸업작품으로 제작해도 좋을 작품을 선정하면 나머지 학생들은 선정된 시나리오를 읽고 자기가 참여할 팀을 택해서 스태프진을 구성했다. 시나리오를 쓴 학생이 연출을 맡게 되고 다른 학생들은 촬영, 조명, 편집, 미술, 프로듀서, 사운드 등의 스태프를 맡으면 1, 2학년 후배들이 각 팀의 어시스턴트로 참여하는 구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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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닌 미국의 학교에서는 1인 1 작품이었는데 우리 학교는 완성도를 높이고 제작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 학기당 6개-8개 팀이 구성되어 각각의 작업을 완성한다. 매 학기 선정하는 시나리오가 달라지니 시나리오가 멜로인지 액션인지, 혹은 호러나 스릴러 등 장르에 따라서 지도해야 할 내용이 바뀌고, 또 학생들의 역량과 내공이 조금씩 다르다 보니 가르쳐야 하는 부분도 팀마다 달랐다. 정해진 교재와 진도가 있으면 한 번의 수업 준비로 매 학기 비슷하게 진행하면 될 텐데 내 수업은 매 학기 수업을 준비해야 하는 내용이 바뀌는 것이 당연했다. 연출작으로 선정된 시나리오는 경험이 많지 않은 학생들의 작품이다 보니 대개 부족한 부분이 있는 상태다. 극적인 부분을 손 보거나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를 효율적으로 각색해야 하는 부분이 있기 마련이었다. 교수가 시나리오를 대신 써 줄 수는 없으니 학생에게 수정을 해오라는 지시를 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학생이 수긍을 하면 좋은데 안 그런 경우가 생긴다. 혹은 학생도 수긍은 하지만 다시 써 온 시나리오가 달라진 것이 없거나 오히려 더 나빠진다. 이런 다양한 경우가 촬영 시기와 맞물린다. 또 제출한 자기 시나리오가 탈락했다고 이유를 따지거나 떨어진 학생들끼리 뭉쳐서 항의하기도 한다. 이런 일들이 학기초에 몰려서 일어나고 나는 그들을 달래거나 혼내어서 학사 일정에 차질 없이 프로덕션이 진행될 수 있도록 6-8개 팀을 조련해야 하는 것이다.


학교의 장비와 실습실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촬영과 후반 작업 일정을 분배하는데 일찍 촬영에 들어가는 팀은 시나리오를 손 볼 시간이 적다. 촬영일이 다가오면 함량 미달이어도 그때까지 진행된 시나리오로 일단 촬영을 시작해야 한다. 촬영일이 학기 후반이어서 각색에 여유가 있는 팀은 반면에 후반 작업 시간이 부족하다. 편집과 사운드 작업에 할애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해서 색보정은 손도 못 대는 경우도 생긴다. 이런 다양한 작업 전개 속도를 가진 8개 팀을 한 학기 동안 지도하면서 1, 2학년 수업을 병행하는 것이다. 업무량이 많다고 볼 수는 없지만 초보 교수였던 나는 실제 수업을 진행하는 것보다 수업 준비와 학생들끼리 촬영을 나가 있는 동안 일어나는 각종 사건사고, 후반 작업에서 혹시라도 종강 전까지 완성이 되지 못할까 하는 불안함이 늘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촬영장에는 늘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모두 초보 운전인 대학생들이 스타렉스 같은 큰 차에 장비를 싣고 이동하다가 일어나는 교통사고는 인명사고만 아니라면 감사할 뿐이고 20대의 혈기에 허락 없이 몰래 사유지나 촬영 금지 지역에서 도둑 촬영을 하다가 경찰서에서 연락이 오거나 통행이 금지된 군사지역이나 일몰 후 위험한 해안가나 벼랑 같은 지역에서 촬영을 하다가 쫓겨나는 일도 흔하다. 마음 약한 학생이 감독을 맡으면 감당 못할 스트레스에 촬영 중간에 도망가기도 하고 가끔은 저희들끼리 언쟁을 벌이다가 싸움이 나기도 해서 유별난 학기에는 지도교수가 아니라 사건 처리 담당자가 된 기분도 든다.


이런 일들을 감당하다가 맞이하는 주말은 누적된 불면과 피로로 예민한 상태인 경우가 많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의 온 몸뚱이는 나에게 아우성친다.

알코올을 부어줘! 콸콸콸 부어줘. 나는 숨 쉬지 않고 마시고 배가 터지도록 마신 뒤 쓰러지겠어!


나는 내 몸이 시키는 대로 술을 꺼내 식탁에 앉았고 전쟁터에서 돌아온 군인처럼 기진맥진한 내게 아내는 정성껏 안주거리를 만들어 주었다. 의사들은 음주가 내 수면의 질을 떨어뜨리고 불면을 더 악화시킬 것이라고 약속한 듯이 입을 모아 말했지만 맹세컨데 이 시기에 내게 술이 없었더라면 나는 정말로 잠을 못 자서 죽었을지도 모른다.

한 주 내내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입술이 터지고 피로와 스트레스로 인한 구내염이 독버섯처럼 입술 안쪽과 혀에 구멍이 뻥뻥 나도록 번지고 있던 이때 술은 내게 심신을 달래고 위로해주는 약이었다. 술에 취해 몽롱해져서 졸다가 아내의 성화에 양치를 하고 침대로 자리를 옮겨 곤하게 잤다. 다음날 아침까지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면 쌓였던 피로는 얼마간 풀어져 있었다. 과음하지 않으려 스스로 주량을 정해놓고 있어서 와인 한 병쯤이 내 정량이었는데, 사실은 와인을 따서 열어두고 ‘브리딩’을 한다고 기다리면서 맥주를 한 캔 마셨고, 기분이 좋은 날이나 맛있는 안주가 있는 날이면 와인 병을 비우고 나서 맥주를 한 캔 더 마시는 날도 있었다.


아내는 나와 최근접 거리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어서 나의 과민 증상과 불면을 목격했다. 내가 술에 너무 의지하고 있다고 걱정했으나 또한 술이 나에게 일정 부분 긴장을 이완시키고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효과는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그래도 그럴 때마다 술을 마실수는 없었고 나도 그렇게 무기력하게 알코올 의존자가 되기는 싫었다.


그 무렵 나는 처음으로 신경정신과를 찾아갔다. 한국에 살며 신경정신과 진료를 받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다. 우선 모든 보험사에서 나는 기피 인물이 되었고 실손보험이나 생명보험은 가입이 불가능했다. 이유를 설명해주는 곳은 한 곳도 없었지만 신경정신과 방문자는 곧 우울증 환자로 인식했고 언제든 자살을 시도할 수 있는 고위험군으로 여기는 듯했다. 그게 벌써 10년도 넘은 일인데 아직까지도 보험사의 이 관행은 바뀌지 않고 있다.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이자 성인 사망원인 1위가 질병이 아니라 자살인 나라이니 그러려니 했다.


신경정신과 의사는 처음에 졸피뎀을 처방해 주었다. 나는 졸피뎀이 무엇인지 몰랐으니 약을 먹으면 몽롱해지면서 잠에 빠져들게 하는 이 약을 사랑했다. 매일 밤마다 이 약을 먹고 잠을 이루게 되었다. 술을 마시는 날은 저절로 잠에 떨어졌으니 약을 먹지 않아도 되었다. 초기에 의사는 한 달이 넘는 분량을 처방해줘서 병원 한번 다녀오면 꽤 오랫동안 편했는데 몇 달이 지난 후 4주 처방으로 법이 바뀌었고 연예인들이 이 약을 먹고 사고를 치면서 졸피뎀은 금지약품이 되면서 다른 약으로 대체됐다.

다니던 학교 근처의 신경정신과 병원을 집 근처의 병원으로 바꾸면서 그동안 먹었던 약의 처방전을 보여줬더니 새로운 의사는 내가 먹었던 약들은 너무 강하고 지금은 잘 쓰지 않는 약들이라면서 새로운 처방을 내렸다. 새 의사는 내 또래의 의사로 신경정신과 의사가 아니라 상담원처럼 내 사적인 얘기들도 들어주고 자기 얘기도 하는 등 친절했다.

그는 내 증상에 진심으로 걱정스러운 낯빛으로 우려를 표했고 다양한 방법으로 내가 술을 줄이고 약도 용량을 줄이기를 원했다. 그는 내 전공과 학교 생활에 호기심이 많았고 3주에 한 번씩 약을 받으러 그와 만나면서 비밀스러운 얘기도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좋은 의사를 알게 돼서 다행스러웠지만 일주일에 두 번 마시는 나의 음주 습관은 이제 더더욱 견고하고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일상이 되어버렸다. 아내는 저녁 준비를 하면서 오늘 내가 어떤 술을 마실 것인지 확인하고 안주를 준비했고 술을 마시는 날 아이들은 식사를 마치면 약속한 듯이 제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가끔씩은 아이들과 얘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아이들은 단박에 거절했다.


“아빠랑 지금 얘기해도 내일 되면 다 잊어버릴 거잖아요.”


틀린 말이 아니었으므로 선생님께 야단맞은 학생처럼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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