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금주해야 하는 이유

by 이프로

결혼이 늦었다고 생각해서 서둘러 낳은 연년생 아들들은 나에게 큰 기쁨이었다. 내 세상의 중심은 이제 전공도 아니고 직장도 아니고 신앙도 아니고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을 위해 집에 일찍 돌아왔고 아이들에게 새로운 볼거리를 보여주기 위해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여행을 다녔고 방학중 상당 기간을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큰 아이는 외탁을 했고 둘째 아이는 친탁을 했다. 외모와 성격도 그랬다. 큰 아이는 무심하고 덤덤했으며 작은 아이는 나를 닮아 소심하고 예민했다. 사춘기가 오기 전 초등학교 다닐 때까지 아이들은 우리 부부의 말을 잘 따랐다. 아홉 시면 취침 시간이었고 중학생이 되어서도 핸드폰을 사달라고 조르거나 게임을 하러 피시방에 가는 것에 연연하지 않았다. 요구했더라면 웬만하면 다 들어주었을 텐데 뭘 사달라거나 조르는 게 없는 편이었다. 아내와 나는 아이들이 필요를 느끼기 전에 미리 준비해 두었고 아이들이 먹고 싶어 하는 간식도 떨어뜨리지 않고 다채롭게 마련되어 있었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쯤부터 아이들은 아빠가 술을 마시면 엄마와 싸우고 엄마를 괴롭힌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내가 술을 마실 때마다 아내와 다툰 것은 아닌데 심하게 싸운 한두 번의 기억이 아이들에게 깊이 각인되어서 아이들은 내가 술을 마시는 것을 좋지 않게 생각했다. 내가 술을 마시면 큰 애는 그냥 외면하고 방으로 들어가 버리고 말지만 둘째 애는 정색하고 나에게 먹지 말라고 했다. 당황스러워서 나도 모르게 안 먹겠다는 약속을 해 버리고 말았다. 아이가 지켜보고 있으니 그 후로는 둘째 애 몰래 밖에서 술을 마시고 들어오거나 집에서 먹을 때는 내서재에서 숨어서 술을 마셨다.

그러다가 하루는 그만 들켰다. 그동안 수상쩍다고 생각하던 둘째가 매복하듯 지키고 있다가 서재에서 몰래 마시고 있던 나를 급습한 것이다. 둘째 애는 정말로 나를 어린아이 야단치듯이 나무랐다. 듣고 있자니 나도 화가 났지만 취한 상태는 아니어서 가만히 생각을 했다.

어떻게 이 아이를 이해시킬 것인가.

오래 생각해 봐도 대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즈음 우리의 결혼기념일이 있었다. 나는 미리 근사한 횟집에 4인석을 예약해 두었다. 가을에 결혼한 우리의 결혼기념일 무렵은 기름지고 맛난 생선이 많이 나오는 철이었다. 특별히 비싼 메뉴를 주문해 둔 나는 콜키지 값을 내고 와인을 준비해 갔고 식전 메뉴로 나온 새우 요리에는 맥주가 어울릴 것 같아서 먼저 맥주를 한병 시켜서 마셨다. 가족이 외식하는 경우 대개 아이들이 좋아하는 식당을 가거나 뷔페 레스토랑을 갔었지만 엄마 아빠의 결혼기념일이니까 우리가 좋아하는 횟집으로 정했고 아이들이 회는 좋아하지 않았지만 아이들이 좋아하는 다양한 사이드 메뉴들이 많이 나왔으므로 잘 먹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와인을 따고 맥주를 마시는 걸 보면서 둘째 애의 입이 나오기 시작했다.


"아빠 술 마시고 운전할 거예요?"

"엄마도 운전할 수 있어."

"엄마는 밤에 운전하는 거 싫어하시는 거 알잖아요."

"그렇게 멀지도 않은데 뭘, 여기서 집 금방이잖아."


큰 애는 잠자코 음식을 먹었지만 둘째 애는 싫은 기색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말투도 불손하고 얼굴에도 화가 잔뜩 나 있었다. 아내는 아이들에게 계속 음식을 먹으라고 권하고 올려주고 했지만 둘째 애는 항의하듯이 음식을 거부했고 아내도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있었다.

"너 계속 이럴 거야?"

아들들은 말이 없었다. 가만히 보니 세 사람 앞의 음식은 그대로 있고 음식을 먹고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음식은 쉴 새 없이 들어와서 식탁이 가득 찼는데 분위기는 싸늘했다. 술기운이 올라오면서 화가 났다.

화가 났지만 화를 낼 수가 없다. 누구에게 화를 내야 할지도 잘 모르겠다.

나는 아껴 마시던 술을 물 마시듯이 벌컥 목구멍으로 넘겨 버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럴 거면 집에 가자, 가"

그때까지 지낸 결혼기념일 중 최악의 일정을 보내고 우리는 예정보다 훨씬 일찍 아무 말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이후로도 작은 아이는 나의 음주를 우리 가정을 파괴하는 근본적인 원인으로 인식하고 내가 술 마시는 것을 적극적이고 완강하게 저지했다. 술을 마시고 집안을 때려 부순 전과가 있는 나는 변변히 대응을 못하고 도망가거나 피했다. 아이 눈을 피해서 점심때 술을 마시고 들어오거나 하루는 편의점에서 맥주를 사다가 차 안에서 마시기도 했다. 차 안 룸미러에 가족을 피해 맥주를 들이켜고 있는 나와 눈이 마주쳤다. 한심하고 비루했다. 나는 지금 무얼 하고 있는가. 차에서 나오며 빈 맥주캔을 재활용 처리장에 가져다 버리는 나를 누가 봤다면 한심하게 여겼을 것이다.


아이들이 중1, 중2 때 나는 학교에서 1년간의 연구년을 받아서 우리 학교와 자매 대학을 맺은 중국의 한 대학에 교환교수로 나가게 되었다. 미국과 호주, 중국의 대학을 알아보고 있다가 여러 가지 이유로 중국이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하고 아내와 미리 사전 답사를 가서 우리가 1년간 머물 아파트를 알아보고 아이들이 다닐 국제 학교를 알아봤다. 우리가 가는 곳은 윈난 성으로 중국에서 남서쪽 국경지역에 있는 변방이었고 한족보다는 소수민족 위주로 구성된 인구구성이 중국 본연의 모습에서 많이 이국적인 지역이었다. 특히 우리가 살 지역인 윈난 성 성도 쿤밍시는 600만이 살고 있는 대도시지만 도시가 넓고 해발 2,000미터에 위치해서 일 년 내내 온화한 날씨를 보이는 쾌적함이 있었고 중국 도시답지 않게 깨끗한 것이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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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는 처음으로 휴대폰이 주어졌다. 영어도 중국어도 서툰 아이들이 버스를 타고 통학을 해야 해서 혹시라도 위급 상황이 생기면 필요할 듯해서 출국하기 전 한국에서 사주었는데 그동안은 필요 없다고 하더니 손에 쥐어주기가 바쁘게 돌변했다. 모바일이라는 신세계에 입문을 하더니 이후로는 손에서 내려놓지 않게 되었는데 그래 봐야 친구들끼리의 대화나 간단한 게임 정도인 듯 내가 궁금해서 요즘 유행하는 게임을 물어보면 나보다도 모르는 눈치였다.

나는 중국에서도 계속 술을 마셨다. 바이주, 혹은 백주라고도 하는 중국의 독주는 작은 모금을 들이켜도 도수가 워낙 높아서 찌르르하고 가슴속을 태우며 흘러 내려가는데 특히 빈속에 한잔을 들이켜면 아주 독특했다. 중국의 백주를 마시며 중국 본토의 카오야라고 하는 오리구이를 전병에 싸서 먹으면 아주 일품이었다. 쿤밍에 살고 있던 한국 교민과도 술친구가 생겼고 운남대학의 교수들과도 가끔 술을 마셨다.


중국에서 첫 학기가 지나고 12월이 돼서 둘째 애 생일이 있었다. 아이들은 중국에서 다양한 중국 음식을 시도해보고 중국식 햄버거를 파는 패스트푸드 점에도 익숙해졌는데 중국에서는 흔하지 않은 피자 레스토랑을 아이들은 좋아했다. 마침 우리가 사는 아파트 상가에 피자 집이 있어서 그곳에서 둘째애 생일 파티를 했다. 아이가 부를만한 친구는 없어서 우리 가족끼리 모여서 파티를 했는데 공교롭게도 나는 그날 저녁 술 약속이 있었다. 약속을 바꿀까 하다가 아이들과 아내는 내가 일찍 일어나도 별일 없이 음식을 먹고 집에 갈 것 같아서 나는 먼저 일어섰다. 순간 아이의 표정이 굳어졌는데 나는 늦지 않게 온다는 뻔한 말을 하고 부리나케 약속 장소로 갔다.


술집에 도착해서 주거니 받거니 일순이 도는데 아무래도 느낌이 좀 불편했다. 술 상대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아내에게 문자를 해보니 둘째 애가 단단히 마음이 상했다는 것이다. 상대가 돌아오자 나는 사정을 얘기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다행히 약속 장소가 집에서 그리 멀지 않아서 아직 늦은 밤은 아니었다. 나는 다시 아이들에게 패밀리 레스토랑에 가서 식사를 하자고 했는데 둘째 애는 차갑게 거절했다. 이미 마음이 상한 것이다.

나는 거의 애원하다시피 해서 둘째 애가 좋아하는 꼬치집으로 유인했다. 아이들은 중국에 와서 여러 가지를 보고 놀랐는데 그중 하나는 중국의 꼬치 요리였다. 한국에서 고작 어묵 꼬치나 소떡소떡 정도를 꼬치로 알고 있던 아이들은 종류가 수십, 수백 가지로 다양하고 현란한 중국 꼬치를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워했다. 간신히 꼬치 요릿집의 숯불 앞에서 마음을 돌린 아이를 보고 가슴을 가라앉힌 나는 다시 맥주를 한병 시켜서 시원하게 들이켰다.


큰 아이는 중국에 있을 때 둘째 아이는 한국에 돌아와서 사춘기를 겪었다. 둘 다 반항심이 크거나 불만이 많은 편은 아니어서 슬기로운 아내가 잘 감당했으나 아빠가 술을 마시는 것에 대한 반감은 사춘기를 지나며 아이들에게 불안과 스트레스로 자리를 잡았다. 큰 애는 덤덤하게 넘어가는 편이었으나 둘째 애는 술 마시고 주정하는 아빠가 심어 놓은 불안감으로 자신의 학업이나 교우 관계에 까지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그런 사실을 울면서 털어놓는 아이를 바라보는 마음은 찢어질 것 같았다. 아이가 울면 아내도 따라 울고 큰 애는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멋 내는 것을 좋아하고 하루에도 거울을 수십 번씩 들여다보는 둘째 아이에게 잘 보이려고 요구하지도 않은 것들을 사다 바치고 환심을 사보려고 했으나 오히려 자신의 취향과 다른 물건을 묻지도 않고 사 왔다고 아이는 단박에 거절하며 도로 내게 돌려주었다.


아이가 원하는 것은 에어팟도 아이패드도 아니었다.

아이는 내가 술을 마시지 않아야, 사나흘 안 마시는 정도의 금주가 아니라, 술을 아주 끊어야 만족할 듯 보였다.

나는 아이에게 잘 보이고 싶었다. 아이에게 자발적인 존경을 받고 싶었다.

아비 된 자의 위엄과 영을 세우고 싶었다. 자애롭고 인자한 아빠가 되고 싶었다.


그러려면 술을 끊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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