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이제는 그만 헤어져야 할 시간

by 이프로

예민함을 넘어서 강박증으로 보이기도 하고 소심해서 불편함을 덤덤히 참아 넘기다가 속병이나 몸살로 나타나기도 하는 나의 증상들…이 지긋지긋한 것들의 기원은 어디였을까? 스마트폰 점유율 세계 1위인 재벌기업 총수도, 상한가를 달리는 연예인도, 심지어는 전직 대통령도 즐겨 맞는다는 수면 유도성 마약들, 프로포폴, 졸피뎀, 모르핀…세 가지를 다 (합법적으로) 해 본 나로선 재벌이나 대통령처럼 능력만 된다면, 비밀만 유지된다면 거부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다.

성욕과 식욕을 참기 어려운 욕망이라고 하지만 수면욕 역시 만만치 않은 놈이다.

천하의 건강체 장사라 해도 3일만 재우지 않으면 그는 잠을 자기 위해서 무슨 일이든 하고야 말 것이다.


나의 불면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불안은 어디에서부터 출발하였을까.

기억을 더듬어 유년기로 돌아가 보면 엄마가 어린 나를 홀로 남겨두고 어디론가 외출을 했을 때, 한참을 소리 내어 울다가 지쳐서 멍하니 천장의 벽지 문양을 바라보다가 불현듯 이대로 엄마가 안 돌아오는 것이 아닐까 두려운 마음이 들었던 적이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위로 세 형들과 누나가 얘기해 준 우리 집안의 부침.

우리 집은 일하는 직원을 여럿 둘 정도로 서울 홍제동에서 잘 나가는 규모가 큰 방앗간이었고 아버지는 콘덴서를 개발해서 사업이 흥했던 적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것은 집달리들이 들이닥쳐 세간살이에 빨간딱지들이 붙고 형제들은 온데간데없고 엄마만 한쪽에서 울고 있던 모습이다. 아버지는 밑바닥까지 망해서 대학생이던 큰형은 입주 과외를 한다고 집을 나갔고 나머지 형제들과 엄마는 이모가 얻어 준 단칸방에서 생활했던 기억이 난다. 방이 좁아서 모두 똑바로 자지 못하고 머리와 다리를 한 사람씩 바꿔서 누워야 했던 것이 어린 나에게는 기이하게 여겨졌다. 아버지는 재기에 성공했지만 다섯 식구가 겨우 영세민 처지에서 벗어난 형편 정도였고 학사장교로 입대해 해병대 사령관 부관으로 근무하다가 모시던 장군과 함께 제대한 큰형이 장군이 낙하산으로 물려받은 기업의 비서실 직원이 되면서 집안에 가장 노릇을 했다. 무능해진 아버지는 하루 종일 TV만 보며 누웠고, 한 때 우리 집에 신세를 졌던 친척들과 큰형이 내 학비를 대주는 기이한 구조에서 청소년기를 보내면서 내 안의 불안감은 더 커진 것 같다.


가난한 집안에서 예체능, 그중에서도 영화를 전공하겠다는 건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치기 어린 선언이었다. 이제는 영화과 교수가 되어 나는 매년 신입생을 맞이한다. 그들 중 몇은 나의 지도학생이 되어 개인 상담을 하곤 하는데 일부 학생은 예술대를 다니기에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데 영화를 공부하기란 정말 어렵다. 물감과 도화지를 사 오지 못하는 학생에게 어떻게 그림을 가르치겠는가? 바이올린이 없는 학생에게 어떻게 바이올린을 연습해 오라는 숙제를 내줄 수 있는가? 전공이 승마라면 말을 구해서 타는데 어려움이 없어야 하고 야구선수가 되고 싶다면 배트와 글러브를 갖고 와야 훈련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영화를 찍어야 하고 찍은 영화로 기말고사를 대신하는 영화과 수업에서 돈은 학용품이다. 돈이 있어야 장비를 빌리고, 돈이 있어야 소품과 의상을 살 수 있다. 내 작업을 위해 스태프로 도와준 친구들에게 일당을 주지는 못해도 차비를 주고 밥도 사줘야 한다. 아무리 아껴서 쓰고 아무리 스토리를 돈이 안 드는 얘기로 만들어도 당시에는 16mm 필름 작업을 했으므로 10분 안팎의 영화 한 편 제작에 기본으로 2천 불이 깨졌다. 영어가 느려서 남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학업을 쫓아갈 수 있었기 때문에 학기 중에는 아르바이트를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제작비 걱정과 등록금, 방학중의 아르바이트, 학과 공부 등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차라리 견딜만했으나 시나리오를 쓰고, 고쳐 쓰고, 스탭을 꾸리고 로케이션을 보러 다니고 촬영 계획과 스토리보드를 그리는 영화 제작 과정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촬영 날짜가 다가올수록 강도가 세어졌다. 그때 술이 없었다면 어떻게 견뎠을까. 그때 술이 없었다면 어떻게 잠들 수 있었을까?


지금은 한국에도 흔한 마케팅 방식이지만 처음 미국에서 식료품을 사러 마트에 갔다가 깜짝 놀란 것은 buy1 get 1 free, 하나를 사면 같은 제품을 하나 더 주는, 즉 우리의 1+1 행사였다. 멀쩡한 물건 하나를 덤으로 주는 것에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특히 맥주를 덤으로 주는 경우에는 망설임 없이 두 개씩 카트에 담았고 아직 집에 남은 맥주가 있음에도 또 담았다. 6개들이 캔을 사면 6개를 더 주는 것은 며칠 두고 마시면 되는데 가끔은 12개 들이 맥주 행사를 하면 맥주 24병을 사들고 오는데 혼자 사는 자취방에 냉장고가 작아서 일부는 상온에 보관해야 할 지경이었다. 그래도 한쪽에 그렇게 술이 그득한 걸 보면 마음이 넉넉했고 이따금씩 같이 작업하는 친구들을 불러다가 파티를 한번 하면 대폭 줄어들곤 했지만 며칠 째 잠이 들지 못해 뒤척이던 다음날도 쌓아놓은 맥주 캔이 많이 사라져 있었다.


현재 10년 이상 다니고 있는 신경정신과의 처방약은 평소에 잘 듣는다. 하루에 한 번 잠자기 전 약을 먹고 드러누우면 보통은 10-15분 내로 잠이 든다. 6시간쯤 잠을 자다가 깬다. 그 정도면 나로선 충분하고 고마운 수면 시간이다. 문제는 가끔씩 이 리듬이 깨질 때이다. 예방할 수 없는 이유로 리듬이 깨지면 약을 먹어도, 약을 두 번 먹어도 잠들지 못한다. 잠들었다가도 새벽 두세 시에 깨어나 다시 잠을 이루지 못한다. 예전엔 중요한 일을 앞두고 흥분이 되면 잠을 자지 못했다. 그 일이 하루, 이틀이면 끝나게 되는 일정이라면 다행이지만 한 달씩 두 달씩 이어지는 긴장의 연속이라면 나는 아마 오래전 견디지 못하고 그 일을 그만두었거나, 몸이 견뎌내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영화감독을 하지 않은 건, 혹은 하지 못한 건 그래서 참 다행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촬영장 풍경을 떠올려본다.

미술팀과 조명팀, 촬영팀이 새벽부터 나와서 땀 흘리며 세팅을 하고 카메라 이동차 달리 트랙을 깔고 기술 리허설을 하는 동안 감독은 몇 잔째인지 모를 커피를 마시며 전날 밤 수차례 검토한 오늘의 촬영 분량 콘티를 다시 확인한다. 배우와 만나서 오늘 씬의 동선과 대사 톤을 고쳐주며 연기지도를 하다가 촬영 준비가 완료됐다는 조감독의 보고를 받으면 모니터 앞으로 가서 세트장 전체를 보면서 배우와 카메라의 위치, 구도를 보고 수정 지시한다. 늘 요구한 것과 다르게, 불만족스럽게 준비가 되어있지만 촬영장에서는 함부로 스태프의 기분을 잡치게 하면 좋지 않다. 얼추 되었다고 생각하면 조감독에게 신호를 준다. 촬영 조건에 맞추어 조명이 켜지고 카메라가 얹어진 이동차는 신호만 떨어지면 움직일 만반의 태세이다. 조감독을 쳐다보면 “슛, 촬영 들어갑니다!” 호령과 함께 세트가 적막에 빠진다. 배우의 메이컵을 만져주고 있던 분장팀이 모두 빠지고 나면 붐 마이크와 연결된 레코더를 메고 있는 사운드 팀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녹음 준비가 완료됐다는 신호를 준다. 카메라에 달라붙어 포커스 링을 붙들고 있는 촬영 퍼스트, 모든 걸 기록하고 말겠다는 투지로 스크랩판과 아이패드로 무장한 채 지켜보는 스크립터, 미술팀과 분장팀은 한 발짝 떨어져 세트와 배우의 비주얼을 재차 확인한다.

감독이 외친다. “자, 카메라!” 촬영 감독이 마침내 리코딩 버튼을 누른다. “롤링!” 나는 배우를 다시 쳐다보고 한 호흡 멈췄다가 정말로 모두들 완벽한 상태인지 확인한다. 팽팽한 긴장이 촬영장에 가득하다.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정도의 집중과 긴장, 적막.

이쯤 되면 신인 연기자나 초보 스태프들은 기가 질려 자신의 역할을 하얗게 잊어버리고 울음을 터뜨리기도 한다.

“액션!” 연기가 시작되고 카메라는 물 흐르듯이 콘티에서 계획된 대로 그림을 담는다. 연기가 종료되면 나는 다시 외친다. “컷!”

이제 모든 배우와 스탭이 일제히 나를 쳐다보며 다음 말을 기다린다. “오케이”면 이번 컷의 작업이 종료되는 것이고 “한번 더!”를 외치면 다시 같은 촬영을 반복한다. 이렇게 테이크의 수가 누적되면 촬영장은 무거운 스트레스가 쌓이고 배우와 스태프의 피로도는 올라가지만 한 두 번 만에 오케이가 나오면 모두들 즐겁고 신이 난다. 그들의 퇴근 시간이 빨라지는 것이다. 하지만 책임은 오롯이 감독의 몫이다.


내가 장편 상업 영화를 연출했더라면 영화가 죽든 내가 죽든 둘 중의 하나는 아마도 결단이 났을 것이다.

아내는 나의 이런 예민함과 소심함을 조용히 지켜봐 주고 도와주려 애쓴다. 자신의 갱년기를 강조하며 거실로 나가서 자고 내가 침실에 들면 암막 커튼을 쳐주고 아이들에게 아빠가 자는 시간이니 각별히 조용하도록 주의를 준다. 학기 중에는 새벽부터 일어나 도시락을 싸주고 학기초에 민감할 때는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 신경을 쓴다. 가끔 새벽에 잠이 깨어 누워있다 보면 도어록 키패드 소리가 나면서 누군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아내가 새벽기도를 갔다가 돌아오는 것이다. 아내가 이른 시간에 하나님께 간청했을 내용은 안 물어봐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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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더 이상 내 가족들을 나 때문에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다. 가장인데 가족에게 평화롭고 사랑스러운 환경을 보장해 주지는 못할 망정 나 때문에 집안 분위기가 다운되는 것은 참을 수 없다. 아이들과 아내에게 이제껏 주었던 그 어떤 선물보다 근사하고 행복해할 선물을 주고 싶다.

아이들은, 그리고 우리가 어릴 때는 선물을 받는 것을 좋아했다. 어른이 되고 난 후, 아끼는 사람이 생겼을 때, 그 사람에게 선물을 줄 때, 선물을 받는 것보다 선물을 준비하고 선물을 건네주는 그 순간이 받는 것보다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큰 희열과 기쁨을 준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내가 아끼는 아내와 아이에게 내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 그것을 줘야겠다.


금주. 단주.


술과 관련된 것들을 하나씩 정리하고 금주와 관련하여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책이나 기관들을 찾아본다. 이때 우연히 나는 유튜브에서 김슬기라는 젊은 여성이 <세바시>라는 강연을 통해 자신의 알코올 중독 경험과 금주 성공 스토리를 말하는 것을 보았다. 눈이 번쩍 뜨이는 강의였다. 저토록 젊은 여성이 알코올 중독으로 인생 밑바닥까지 내려갔다가 금주를 하고 새 삶을 찾았다는 것이 놀라웠다. 강의를 몇 번씩 돌려보고 강의 중 그녀가 언급한 책 <드링킹, 그 치명적 유혹>을 주문했다. 단숨에 읽어 내려간 책은 나에게 너무나도 선명한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었다.

술을 끊지 않으면 나는 가족들을 괴롭히다가 끝내 술에 취해 죽고 말겠구나. <혼술에서 중독까지, 결핍과 갈망을 품은 술의 맨얼굴>이라는 부제를 단 그 책은 나의 증상과 흡사하여 소름이 돋도록 충격적이었다. 술을 사랑한 저자는 자신과 술의 관계를 연인으로 표현했고 살기 위해 헤어졌다고 고백했다.

이 책의 여운은 길고 깊었다.


그리고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 어설프게 퇴근길 버스가 잠시 신호대기에 걸린 순간, 나는 도롯가 현수막에서 시 보건소에서 알코올 중독 치료 모임을 한다는 메시지를 보게 됐다. 내용을 제대로 확인할 겨를도 없이 버스가 지나쳐버려 나는 집에 갔다가 다시 현수막이 있던 곳까지 산책 삼아 나와서 시 보건소에서 개설한 알코올 중독 치료 모임의 연락처를 적어갔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나는 엄숙하게 말했다. 이제는 술을 그만 마시겠다.

주방 베란다 창고에 있던 술들을 모두 꺼내 버렸고 휴대폰에는 금주 관련 앱을 설치했다. 현수막에서 보고 적어 온 보건소에 연락했더니 문진 검사를 하자고 했다. 검사를 진행한 보건소 직원은 내가 자발적으로 금주를 결심한 것을 칭찬했고 AA모임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도 놀라워했다. 그렇게 첫 AA 모임에 참석했다.


놀라웠다.

한 시간쯤의 강의가 있었고 그 후 한 시간은 한 명씩 돌아가면서 자신의 음주 습관이나 한주 동안 어떻게 금주를 버텼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는데… 모두들 어마어마한 음주량에, 대부분은 자발적으로 온 것이 아니라 음주로 인해 폐쇄 병원에 있다가 의사의 지시로 오거나, 이런 모임에 참가한다는 조건으로 휴가나 외출 등 뭔가를 얻어낸 비자발적 참가자들이 많았다. 끔찍한 음주 사고나 폭력 등 형사 사고를 일으킨 사람들, 장취(며칠씩 술만 마시고 취해 있는 상태) 경험자들 등 나는 이들에게 놀라고 좀 무섭기도 했다.


보건소에서는 다음 주에도 참석해 달라는 문자가 오기는 했지만 나는 더 이상 모임에는 가지 않기로 했다. 좋은 모임이고 나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었지만 내 음주량과 음주 습관은 거기 온 이들과 비교할 때 가소로운 수준이라 그곳에 가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금주 의지가 생기기보다는 내가 아직 정상범주의 음주 애호가라는 자만심이 생기거나 아직 나는 애교 수준이라는 헛된 착각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술과 함께였던 취미들을 접었다. 대피소나 산에서 자고 오는 산행을 가지 않고, 정 산이 가고 싶으면 운전을 해서 당일로 다녀오는 산행을 아내와 함께 갔다. 방학이 되어도 스페인 산티아고를 가지 않고, 며칠씩 걸리는 지리산 둘레길이나 제주올레길 트레킹도 하지 않았다. 대신 나는 달리기를 시작했다. 이미 서브 4 수준의 마라토너인 형과 형수의 도움을 받아 훈련을 하고, 뛰지 않는 날은 짐에 가서 근력 운동을 했다. 평소에도 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어서 달리기에는 금방 재미가 붙었다. 술을 마시지 않으니 저녁 식사 시간 이후에 시간이 많이 남아서 그동안 못 읽었던 책을 읽었다. 샤워를 하면서, 체중계에 오르면서 서서히 내 몸이 바뀌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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