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2월 22일. 술과 인연을 끊었다.
술을 마시지 않은지 200일을 훨씬 넘겼다. 처음에는 날짜를 세고 개월 수를 세었으나 세는 것도 멈추었다.
이제 단주는 일상이 된 것이다.
찰진 줄돔 회를 보아도 소주를 떠올리지 않고, 알맞게 그릴링 된 스테이크를 대해도 와인을 찾지 않는다.
이젠 탄산수를 마신다.
나에게는 술을 그만 마셔야 하는 이유가 백가지도 넘는다.
그중 가장 큰 이유는 내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서이다. 아내는 나를 사랑하고 결혼 후 나와 가족을 위해 헌신적으로 그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녀가 나에게 바라는 유일한 아쉬움은 나의 음주와 음주 습관이었다.
아내는 나에게 금주를 요청할 권리가 있다.
아내만큼이나 나의 음주로 고통받은 이들은 나의 두 아들이다. 미소를 띠고 사람들과 인사하는 교회에서의 아빠 모습과 취한 채 집에서 구겨져 있는 모습의 아빠 모습 사이에서 사춘기의 아들들은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수업 준비와 논문 집필로 공부에 몰두한 교수 아빠의 모습과 술 취해 흐트러진 채 엄마에게 험한 소리를 해대는 폭력 아빠의 모습은 이중적이고 가식적으로 보였을 것이다. 내 아들의 롤 모델이 되거나 존경받는 아빠가 되기에는 늦었을지언정 더 이상 아들에게 걱정과 우울함을 주는 아빠가 될 수는 없다. 아들을 위해서 나는 술을 끊어야 했다.
술은 그동안 내 몸을 많이 망가뜨렸다. 이제 50대 중반이 된 나의 건강은 나 하나만의 건강이 아니다.
내 건강이 위태로워지면 내 가족의 생활이 붕괴될 수 있고 나에게 맡겨진 200여 명 학생들의 학업에도 중대한 차질이 생긴다. 한국 영화 교육과 영상 콘텐츠 연구에 지장을 주게 되고 글로벌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K-컬춰, 대한민국 문화계에 기여할 수 있는 작은 기회가 사라져 버리게 된다. 나는 내 개인적인 욕심만이 아니더라도 내 건강을 잘 돌봐야 할 공적 의무가 있는 것이다. 이 사회가 그동안 나에게 제공해 준 유형, 무형의 혜택을 받고 자라서 이제 한 사람의 중요한 일꾼이 된 내가 건강 관리를 소홀히 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술 마시는 즐거움 때문에 내게 맡겨진 일을 제대로 마치지 못하고 중도 포기하게 된다면 국가와 공동체에 큰 폐를 끼치는 것이 된다.
직장에서 격년 간 의무로 치르게 하는 건강검진에서 그동안 나는 여러 항목에서 주의나 경계 혹은 위험 판정을 받았다.
고지혈증은 10년도 넘게 위험 범위에서 내려오지 않고 있었는데 특히 중성지방과 저밀도 콜레스테롤 수치는 당장 약을 복용해야 한다는 의사의 지시에도 불구하고 두어 달쯤 약을 복용하다가 그만둔 상태로 수년을 방치하고 있다. 혈압과 혈당은 평소에는 정상 범위에 있었지만 술을 마신 즈음에 혈압을 재 보면 고혈압군에 속하는 수치가 나왔다.
5년 전쯤 처음 발병한 통풍은 처음에는 족저근막염으로 오인하여 잘못된 치료를 받다가 말았는데 통풍이라는 병이 원래 생겼다가 진통제를 먹으면 가라앉았다가 하는 특성이 있었다. 최근에야 통풍 판정을 받았는데 음주 횟수와 비례하여 통풍의 발작 빈도수가 점점 잦아지고 있었다. 결국 작년부터 매일 요산 수치를 낮추는 약을 상복하고 언제 발작이 생길지 모르니 늘 진통제를 갖고 다니는 불편함을 안고 살고 있다.
이 밖에도 나는 술만 마시면 필름이 끊기는 블랙아웃 증상을 수시로 경험하고 있었는데 이것은 알코올성 치매로 직결되는 문제였다. 불면을 해소하려고 마시는 술의 경우 나는 일부러 곯아떨어지도록 부어라 마셔라 해댔으니 만일 나의 음주 습관을 바꾸지 않고 이어갔더라면 내가 치매 환자가 되는 것은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술을 마시면서 즐기는 기름진 안주와 2차 3차로 이어지는 술자리는 자연스레 식사량을 늘어나게 했는데 이런 음주 습관으로 내 체중은 운동을 해도 줄지 않고 복부 지방은 볼록하게 쌓여만 갔다.
치매에 걸리거나 알코올성 간질환, 심혈관계 질환, 혹은 이 모든 것이 어느 날 동시에 일어나서 내가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게 될 것이라는 예측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살려면, 나는 술을 끊어야 한다.
끊으면 살고 마시면 죽는다.
나는 신앙인이다. 내가 믿는 종교는 방탕함과 술 취함을 경고하고 몸과 마음을 경건하게 할 것을 여러 번 강조했다. 이 부분에서 나는 한 번도 제대로 내 종교의 교리를 성실하게 따른 적이 없다. 선한 행실이나 베풂보다 나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누가 볼 때나 보지 않을 때나 신실한 신앙인의 모습으로 나의 주를 닮아 가는 일에 진심인 적이 없다. 주일의 예배 시간에만 경건한 척하는 이중적이고 위선적인 탈을 벗어버리고 이제는 그만 가짜 신앙인 노릇을 그만두어야 한다. 늘 깨어있고 맑은 정신으로 나의 죄인 됨을 고백하고 내가 지은 죄를 회개하고 이웃을 돌아보아 과부와 고아를 돌보는 선한 크리스천의 모습을 가져야 한다. 술을 마시면서는 결코 독실한 신앙인이 될 수 없다.
요란하게 나의 단주를 주변에 공표하며 시작하지 않은 것은 나의 이번 단주 시도가 스스로 못 미더워서 그런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나는 단호했고 강한 의지로 단주에 임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느낄 수 있다.
단주를 시작하면서 일기를 썼다.
평소에도 쓰는 일기지만 <금주 일기>라고 제목을 붙이고 나의 금주 상황을 세세히 기록하면서 스스로 격려하고 위로했다.
지난 몇 차례의 금주 시도에서 처음 몇 달은 절대 흔들리지 않을 것 같은 엄격함으로 잘 참아내다가 모래성 무너지듯이 와르르 무너져버린 경험이 있었으므로 3개월이나 100일 등 특정일을 넘기는 것에 특별한 의미를 두지 않았다. 주치의인 신경정신과 의사에게 단주 시작을 알리자 필요할지도 모르니 갖고 있다가 복용하라고 <항 갈망제>를 처방해 주었으나 그를 민망하게 하지 않으려고 받은 것이지 그런 약의 필요성을 느끼지는 않았다.
달리기를 시작했다.
원래부터 체육관에 가서 근력운동은 하고 있었으나 주 3회 운동을 하고도 시간과 체력이 남아서 뭔가 추가로 해야 할 <꺼리>를 찾아야 했다. 시간이 남아서 불필요한 망상이나 지루함에 빠지는 것을 막아야 했고 불면을 자력으로 해결하려면 몸을 피곤하고 지치게 만들어서 졸리도록 만들어야 한다. 처음엔 수영을 했지만 어려서부터 갖고 있던 습관성 어깨 탈구로 계속하기 어려워서 한 달 만에 종목을 바꾸었다. 서브 4 기록 보유자인 형의 도움으로 마라톤을 하기로 한 것이다.
월수금은 헬스클럽에서 근육 단련을 하고 화목토는 집 주변을 달리거나 운동장 트랙을 뛰었다. 그동안 등산과 근력운동으로 몸이 단련이 되어 있어서인지 처음 달리는데도 5킬로미터를 30분에 달리는 것은 별 문제가 없었다. 달리기는 마음만 먹으면 큰 준비 없이 곧바로 시작해서 한 시간이면 운동을 마칠 수 있는 편리하고 간단한 운동이었다. 걷는 인간이 속도를 올리면 되는 달리기는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아서 발을 내딛는 동작과 호흡을 제대로 신경 쓰고 하자면 금세 땀이 나고 운동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달리고 나서 기록된 심박수와 1km를 몇 분에 달리는지를 나타내는 속도, 보폭, Vo2 max 등 각종 데이터를 보면서 내가 달린 기록을 분석해 보는 것도 달리기의 재미 중 하나이다. 이렇게 시간과 거리를 조금씩 늘리며 달리기의 매력에 빠져드는데 가을이 되면서 여기저기서 마라톤 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이 들리기 시작했다. 형의 권유대로 동네 가까운 곳에서 열리는 대회의 10K 대회에 참가 신청을 하고 처음으로 여러 사람과 섞여서 공인 대회에서 달렸다. 57분 기록이 나왔다. 혼자 달릴 때는 60분을 넘겼는데 아무래도 대회의 흥분과 여럿이 달리니 기록이 조금 나아진 듯하다.
술을 끊은 지 7개월이 넘은 지금 나의 건강은 어떻게 됐을까.
우선 콜레스테롤 때문에 복용하던 스타틴은 몸이 정상으로 돌아오면서 복용량을 반으로 줄여 5mg을 복용하고 요산 수치를 낮추려고 매일 복용하던 자이로릭도 2정을 복용하다가 1정으로 양을 반으로 줄였다. 지난 5개월 동안 한 번도 통풍 발작은 일어나지 않았다.
혈압은 3개월 동안 매일 아침과 잠자기 전 하루 2회 측정하고 기록했는데 이제는 더 이상 하지 않는다. 늘 정상 수치라서 매일 재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게 된 것이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이상이 있는지 확인만 하고 있는데 최고혈압 100에 최저혈압 80 선이다.
주 6회 운동하면서 체중은 드라마틱하게 줄었는데 한때 80kg이었던 내 체중은 현재 63-65kg이다.
그동안 입던 옷은 정장이든 사복이든 다 버렸고 다시 샀다. 속옷도 맞지 않아 버렸고 심지어 손목도 가늘어져 시계줄도 줄여야 했는데 자세히 보면 발가락도 가늘어져서 발 볼도 줄어든 것을 알 수 있다. 벨트는 구멍을 몇 개나 당겨서 채우는데 예전 구멍의 흔적이 남아있는 벨트는 버렸다.
체중이 급격히 준 것은 아니어서 옷을 한 치수 작은 걸로 샀다가 그것도 커져서 또 사게 된다. 이제는 상의는 95, 하의는 허리 29-30인치 옷을 사야 맞는데 브랜드마다 조금씩 다르니 어떤 브랜드는 심지어 90을 입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지금도 몸이 줄어드는 것이 멈춘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옷 사는 것을 미루게 된다.
옷을 다시 사는 것은 적지 않은 지출이지만 즐거운 지출이기도 하다. 뚱뚱해서 커다란 옷을 걸치다가 날씬하고 몸에 붙는 옷을 입으니 맵시가 살아나고 뒤태가 예뻐졌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얼굴이 작아지면서 어깨가 넓어지고 가슴이 나오면서 배가 들어가고 전반적으로 몸이 팽팽 해졌다는 느낌이 든다. 샤워 후 거울에 비친 내 몸을 보는 것이 이제 그리 창피하지 않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은 나의 외형이 변한 것에 놀라기도 하고 일부는 조심스럽게 내 건강이 괜찮은지 묻기도 한다. 혹시 암이라도 걸린 게 아닌지 염려하는 듯해서 나는 자신 있게 답한다. 군 전역 후 지금이 가장 건강한 상태라고.
나의 몸도 건강해졌지만 이제 내 정신 건강도 많이 좋아졌다.
나는 많이 웃고 자주 유쾌하며 작은 일에 마음이 상하거나 짜증을 내지 않는다. 내가 누리고 있는 작은 것들에 감사하고 그동안 내가 자세히 살피지 못했던 일들을 들여다본다.
술과 함께 했던 이들과의 인연은 다 정리했다. 술을 안 마시기로 한 것을 알렸기 때문인지 다행히 아무도 연락을 해오지 않는다. 어쩌면 그들과의 관계는 거기까지였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안다. 이렇게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는 나의 금주가 언제 한방에 무너질지 모른다는 것을.
나는 내가 얼마나 지독한 알코올 중독 자였었는지를 단 한시라도 잊으면 안 된다. 절대로 방심하면 안 된다.
나는 너무나도 술을 사랑했던 사람이고 아직도 그 사랑은 내 안 어딘가에 똬리를 틀고 있을 것이다.
어느 한가한 오후, 혹은 우연찮게 혼자 있게 된 밤 시간, 허술하게 흐트러진 나는 절묘한 타이밍에 권해진 술 한잔이나 거절할 수 없는 아름다운 만찬에서 귀하게 따라 준 와인 한잔을 들이켜면서 견고한 둑이 무너져 내리듯이 이제까지 지켜 온 금주를 망가뜨릴 수 있다.
술 보기를 독극물 보듯이 하면서 나에게 한치의 관용이나 여지를 두어서는 안 된다. 조건이 맞고 기회만 된다면 곧바로 상대를 내치고 배신해 버릴 수 있는 이중첩자보다 위험한 자가 바로 나다.
계속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다.
이토록 어려운 일을 나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술의 유혹을 견뎌내거나 갈망을 극복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내 가족을 생각하고 내 신앙에 의지하여 즐겁고 감사하게 금주를 이어갈 것이다.
나는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