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롤로그;

퍼펙트 콤보; 대한민국 중년 남자+산티아고 콤포스텔라

by 이프로

80년대 학번으로 오십여 년쯤 사는 동안 동남아, 일본, 미국에 유럽까지 일부는 출장비로, 일부는 용기를 내어 제 돈 주고 가 본 적도 있을 것이다.

얼마나 즐거웠든, 얼마나 후회를 하면서 돌아왔든 이제 웬만해선해 외 여 행네 글자가 마음을 설레게 하진 않는다.

하긴 뭔들, 이제 도대체 뭔들 팍팍하고 식어버린 가슴을 쿵쾅거리게 있겠는가.


파리에서 그랬었던 같다. 아니면 런던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오래된 지하철 역이어서 당연히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 편의 시설이 없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한국인 여대생쯤으로 보이는 아가씨가 꽤나 큼직한 슈트케이스를 들고 난감해하고 있었는데 안쓰러워 보여서 별다른 약속도 없이 거리에 나서던 나는 다가가서 도와줄까를 망설이게 되었다.

그땐 한낮이어서 덜했겠지만 아가씨 정도의 인상착의면 여기저기서 집시나 홈리스들이 하이에나처럼 달려들어 도와주는 척하면서 소매치기를 하거나 심한 곤경에 빠뜨리기도 한다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가 그녀를 도와줄지를 두고 망설일 때, 거의 두세 명쯤의 훤칠한 청년과 신사가 아가씨에게 다가가며 묻는 것이었다.

제가 당신 가방을 들어드릴까요?”

도와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미가 어떻게 대답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말끔한 차림의 백인들이 나서서 아가씨 힘들고 어려웠을 수도 있었던 지하철 역사 탈출을 도왔고, 지상에 나와서는 그미가 원하는 곳으로의 이동 경로까지 느리고 또박또박 설명해 줘서 그미는, 역시 남자는 유러피언이 최고야하는 벅찬 감동의 표정으로 연신 뒤를 돌아보며 멀어졌던 것이다.


며칠 내가 그 아가씨가 당할 뻔한 바로 그런 상황에 처했다. 바람이 불어서 한국에서 미리 예매를 뮤지컬을 보겠다고 시내 극장에서 저녁 공연을 봤는데 아시다시피 유럽과 한국의 시차는 7, 8시간쯤으로 공연 시작 시간인 저녁 7시는 한국 시간으로는 새벽 2시로 유럽에 이제 2, 3 지났을 뿐인 당시의 나로서는 쏟아지는 졸음을 참기 어려운 시간이었다.

유명하다는 뮤지컬을 졸며 깨며 보다가 공연이 끝나고도 정신이 멍한 채로 빠져나가는 사람들을 따라 거리로 휩쓸렸다.

한 무리의 사람들은 신호등을 건너고 다른 무리의 사람들은 철도 위를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넜다.

무작정 따라 걷던 내가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봤을 때는 그토록 많던 행인들이 대부분 사라지고 갓난아기를 안고 있는 더러운 옷차림의 젊은 아기 엄마가 내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

잔돈 가진 거 있으면


나는 절대로 거지들에게 적선을 하지 않는다.

서울에서든 지하철에서든 혹은 유럽에서든.

고개를 돌려 외면하고 뒤로 돌아서려는데 이번에는 중동계 홈리스로 보이는 청년이 다가와 손을 내민다.

다시 외면하고 지나치려는데 뒤로 여러 명의 검은 피부 사람들이 술 취한 휘청거리며 다가온다.

나는 혼자였고 일행이 아닌 것 같은 그들은 공동의 이익을 위해 연대할 있어 보였다.

머릿속이 복잡해지는데 누군가의 손이 주머니를 건드렸다.

나는 과민하게 몸을 재빨리 돌리며 거칠게 반응했다.

그런데, 상대의 손아귀 힘이 만만치 않았다.

그는 허리춤의 중간을 움켜쥐고 있었다.

그가 만일 힘이 장사여서 그대로 들어 올리기만 한다면 나는 대롱대롱 매달릴 수도 있는 자세였다.


그들이 강도는 아니었다. 손을 벌리고 적선을 요구했다, 눈을 부라리며.

겁먹은 나는 자발적으로 지갑을 꺼내 고액권 두장만을 남기고 갖고 있던 동전과 소액권들을 건네줬다.

그중 나이가 있어 보이는 친구가 나에게 다시 동전을 돌려주었는데 그것이 나에게 굴욕감을 주었다.

나이에 나는 유럽의 한 복판에서 '삥'을 뜯긴 것이었다.

몸을 다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었다고 주변 사람들에게는 설명했지만 사실은 공포에 떨면서 자존감을 지킨답시고 끝까지 웃으며 그들에게 손까지 흔들며 나는 뒷걸음쳐서 거리를 벗어났다.


다시 환하게 가로등이 켜진 시내 중심가로 돌아온 나는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조금 전까지 나를 조롱하던 집시 무리들을 향한 적개심을 불태웠다.

돈을 찾지는 못하더라도 이놈들을 혼내줘야겠다.’

나는 지나치는 좋은 체격의 백인에게 다가갔다.

저기..., 내가 지금 강도를 당했는데 그들이 저쪽에 있어. 경찰에 신고를 해주겠니?”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말이었는데 그는 강한 웨일스 악센트로 여러 번 내 말을 끊으며 이해가 어려우니 다시 말해달라고 했다. 의사를 파악한 그는 몇 가지를 내게 오히려 물어왔는데 그의 빠르고 희한한 발음을 이해할 없어서 연신 버벅거리자 그는 미안하지만 도울 없다며 총총히 사라졌다.


젊은 동양인 여자에게는 한없이 관대로왔다가 동양인 중년 남자에게는 드러내 놓고 차별을 해대는 땅에 다시 왔다, 그것도 자발적으로… 왜? 배낭여행하게?


당신은 실직 상태이다.

혹은 원하지 않았던 퇴직을 했다.

혹은 수년간 해오 자영업을 접었다.

혹은 2 전쯤 발견한 암이 몇 번의 항암 치료나 수술로 이제 어느 정도 수그리고 가라앉은 상태이다.

이유가 뭐든 당신은 그래서 지금 아침에 일어나면 딱히 곳도 일도 없는 상태다.


그런데 전생에 나라를 구했는지, 다행히 당신에게는 아직 움직일 있는 몸과 몇 푼의 여유 돈이 있다.

그런 당신에게 나는 권하고 싶다.

무료한 일상에 활기를 가져올지도 모르는, 쳐지고 늘어난 몸을 다시 추스르고 막판 뒤집기를 시도해 모멘텀을, 아니면 그냥 가성비 높은 장기간의 유럽 여행을 위해 떠나는 모험을, 이제는 한집 건너 한 사람 씩은 해보고 이런저런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다루었던 바로 그산티아고 순례길도보 여행이다.


오로지 중년에게만 적용되는 사례가 많으므로 한창 젊은이라고 여긴다면 여기서 그만 읽기를.

너무 많은 산티아고 관련 도서와 정보가 넘쳐나므로 당신에게 꼭 맞는 정보를 찾을 있을 것이다.

이 글은 산티아고 순례 정보에 맞지 않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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