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이름이야기 3

서양 이름에 돌림자가 있다고?

by 이프로

서양이름에 돌림자를 쓰는 것도 아닌데 가만히 듣다 보면 비슷한 라임 rhyme 또는 레토릭 rhetoric 같은 느낌이 드는 이름들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무슨무슨-슨son, 센 sen 같은 건데 예를 들면 이런 식이지요.


윌(윌리엄)-윌슨, 존-존슨, 리처드-리차드슨, 데이비드-데이빗슨, 톰(마스)-톰슨, 제프-제퍼슨, 피터-피터슨, 넬-넬슨, 로드리고-로드리게스…


예, 추측하셨듯이 아버지의 이름 뒤에 아들을 붙여서 <누구 아들>이라고 이름을 만든 것입니다.

우리의 이름(사실은 일본식이지만)에도 아들子 를 붙였던 시절이 있지만 대부분 여자 이름이었어요. 미자, 선자, 광자, 숙자… 여기서 자는 아들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한자에서 의자, 모자처럼 어미로 사용하던 자를 여자 이름에 사용했던 것 같습니다.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사용하던 로마 시절로 돌아가면 <슨> 대신에 작다는 뜻의 어미를 사용해서 이름을 붙였습니다.

카이사르-카이사리온(작은 카이사르), 옥타비우스-옥타비아누스(작은 옥타비아)

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되고 키도 커질 텐데 참 생각 없이 이름 짓지요?

sunny.jpeg?type=w1600 애플 tv+ 드라마 <파친코>의 선자


예전엔 이름의 종류가 그리 많지 않았나 봅니다. 성경에도 얼마나 많은 동명이인이 나오는지 모릅니다.

요한이라고도 하는 존 John은 하도 많아서 그중에 예수님에게도 세례를 주신 요한은 <세례 요한, John the Baptist>이라고 구분해서 부릅니다.

그게 아닐 경우 대개 출신지를 이름 뒤에 붙여서 부릅니다.

예수님도 한때 그냥 예수가 아니라 <나사렛 예수>라고 불린 적이 있었지요. 이 경우는 나사렛이 촌동네라는 의미여서 기적을 일으키고 다닌다는 예수를 당시의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깡촌 출신이라고 좀 얕보는 식으로 부른 것 같습니다.


우리 식으로 하면 그냥 광식이가 아니라 <양지골 광식이>인데 문제는 이걸 정식 이름으로 사용했다는 것이지요.

어디 어디의, 어디 출신의 라는 전치사를 붙이는 식인데 이탈리아에서는 da, de, di 프랑스에서는 de, le 네덜란드 van, 독일 von,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는 de, don을 붙입니다.

단순히 출신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그 지방의 영주이거나 공작, 후작, 백작, 자작, 남작과 같은 작위를 받은 경우에 이런 전치사를 사용했기 때문에 이름에 전치사가 붙는다는 것은 <나 예전에 귀족이었거든>하고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는 효과가 있습니다.

common.jpeg?type=w1600 빈치 출신 리어나르도


이런 이름들의 예를 들면 빈치 마을 출신 da Vinch 레너드 다빈치, van Gogh 빈센트 반 고흐, de Gaul 샤를 드골, van Beetoven 루트비히 판 베토벤, 돈키호테 don Quixote 같은 식입니다.

지금까지도 이런 이름을 성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꽤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신분제가 폐지되면서 천민, 노예 출신들이 양반들이 사용하던 성을 가져다 쓰거나 족보를 샀던 것처럼 유럽에서도 이런 전치사로 시작되는 성을 가져다 쓴 평민이나 해방 노예 집안이 꽤 된다고 합니다.

그러니 이탈리아계 명배우 로버트 드니로 Robert de Niro가 진짜 귀족 출신인지는 모르는 얘기죠.


우리의 경우랑 비교해 보면 대개 우리는 여성, 특히 기혼 여성에서 이름을 부르는 대신 출신 지역을 따서 <천안댁> <광주댁>으로 부르는 경우가 있긴 했지만 존칭이란 느낌은 별로 안 드네요.


또 한 가지 파생 이름의 종류는 여자 이름을 남자 이름에서 변형시켜 사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여자 입장에서 보자면 좀 분하지요.

알렉산더-알렉산드라, 찰리-샤로테, 에밀-에밀리아, 가브리엘-가브리엘라, 조셉-조세핀, 루크-루시아, 샘-사만다, 빅터-빅토리아, 크리스-크리스티나, 닉-니콜...

광식이 여동생 이름이 광자나 광순이인 것과는 좀 다른 것 같지요? 결혼과 동시에 자기 성을 친정에 두고 와야 하는 서양 풍습과 달리 시집온 이후에도 처녀 때 성을 그대로 사용하게 한 우리가 이 부분에서는 조금 더 진보한 건가요?


저와 미국에서 같은 교회에 다니면서 청년부 시절을 함께 보낸 누나가 제 친구와 결혼을 했는데 결혼 이후 운전면허증, 신용카드, 여권 등 처녀 때 이름이 적힌 모든 증명서를 모두 제 친구인 남편 성으로 바꾸어서 재발급받는 것을 보고 '아메리카 풍습치고는 너무 후진적인데' 하고 생각했더랬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이름 이야기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