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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취미 부자 May 25. 2022

커피 한잔 어때?

씁쓸한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이유

에스프레소바 문화가 점점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대략 20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났던 시절, 역사에서 커피  잔을 주문했다. 조그만  한잔에 담긴 고소한 향이  검은 액체를 받고서는 ‘이게 뭐지?’ 하며, 무식한 게 용기라고 머그컵에 뜨거운 물을 따로 달라하며 종업원의 의아한 눈길을 받았었다.


매우 미국적인 커피 바. Image: MapQuest

아메리카노는 에스프레소가 어색한 미국인들을 위한 커피라는 조롱 어린 배경을 갖고 있다. 미국의 커피는 드립 커피다. 팬케익 등을 파는 24시간 식당에서 “제시카” 이름표를 단 종업원이 포트를 들고 돌아다니며 항상 가득 리필해주는 연한 물 같은 커피를 따라준다. 맛과 향을 모르는, 많은 양만을 중요하게 여기는 미국인들을 위해 에스프레소에 물을 탄 커피인 아메리카노는 스타벅스의 성공과 함께 이제는 어느 곳이나 찾기 쉬워졌다.


첫 유럽여행으로부터 10년 후, 이탈리아로 출장을 다니며 오리지널 에스프레소 문화를 배웠다. 레이싱 경기장을 돌아다니며 일을 하던 시절, 이침의 일상은 모두들 한 잔의 에스프레소에서 시작되었다. 한국이었으면 소주잔으로 쓰였을 작은 플라스틱 잔에 에스프레소를 내려 인사 대신 서로 권한다. 그리고 받은 에스프레소를 입안에 훅 털어 넣고 각자의 일을 시작한다.


왜 구태여 쓴 에스프레소에 사람들이 빠져들까? 왜냐하면 에스프레소 한 잔에는 인생이 짧게 녹아있기 때문이다. 잔을 입에 대는 순간 느껴지는 부드러운 크레마의 포근함은 밝은 햇살과 그 안에 있는 우리 하루의 즐거움이다. 뒤이어 힘든 역경이, 하지만 참을 수 있는 고통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온다. 곧 그 아래 자리 잡은 설탕의 달콤함은 어려움을 이겨낸 자에게 주는 선물같이 긴 여운을 남기는 행복이 된다.


에스프레소의 설탕은 녹여 먹지 않는다.


얼마 전 춘천에 있는 에스프레소바에 다녀왔다. 처음 방문한 국내의 에스프레소바는 생각한 느낌과 너무 달랐다. 너무나도 세련된 ‘바텐더’와 로마에는 없을 것만 같은 “로마노”커피는 내가 그동안 알고 있던 에스프레소”바”에 비해 불편했다.


이탈리아에서는 에스프레소를 생활필수품으로 지정했다고 한다. 즉, 누구나 에스프레소를 즐길 수 있어야 하기에, 서서 먹는 에스프로의 가격은 무조건 1유로 아래로만 설정할 수 있는 법이 조례되었다. 그만큼 에스프레소야말로 허례허식이 없는 서민의 음료인 것이다.


이탈리아는 자기 음식에 대한 자존심이 센 나라로 유명하다. 따라서 다른 나라에는 다 있어도 배스킨라빈스, 피자헛, 스타벅스는 이탈리아에서 찾아볼 수 없는 미국 초대형 프랜차이즈라고 한다. (최근 밀라노에 스타벅스 리저브가 생기긴 했다.)


젠지의 에스프레소 촬영법

얼죽아가 대세로 자리 잡은 지 얼마 안돼, 에스프레소가 힙쟁이들의 키워드로 자리 잡았다. 이러나저러나 빨리 마시는 음료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는 듯하다. 에스프레소를 앞에 놓고 과거에 빠져있을 즈음, 에스프레소바의 점원이 한 마디 한다. “에스프레소는 식기 전 빠르게 들이켜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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