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두 번째. 4년 만에 다시 뜁니다

기다린 것도 아니고 안 기다린 것도 아니고

by 채널김


마라톤을 또 나가겠다는 내 결심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코로나 기간은 꽤 길었다. 아니 나는 정말 또 나가보고 싶었는데 말이다. 그렇다고 그 기간 동안 열심히 연습한 건 아니었다. 뭐 그냥 찔끔찔끔 운동한 게 다였다. 그렇게 마라톤이라는 단어는 내 머릿속에서 점차 흐려져갔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바이러스에 어느 정도 적응하고 무뎌질 때쯤 금지되어 있던 모든 대회가 열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한동안 잊고 있었던 마라톤이 생각나는 바람에 또다시 도전해보고 싶어졌다. 이번에는 연습도 많이 하고 제대로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마침 집에서 꽤 가까운 곳에서 열리는 대회가 있었다. 오호, 멀리 이동하지 않아서 좋군. 2달 전에 미리 대회를 신청했지만 이번에도 미리 신청은 해놓고 한참을 움직이지 않다가 대회가 코앞인 일주일 전에야 정신이 들었다.


막상 뛸 생각 하니까 귀찮긴 했는데 그래도 연습은 해야지 싶어서 저녁에 무작정 동네를 뛰어다녔다. 러닝머신에서 뛰는 것도 좋지만 내가 늘 걷던 익숙한 동네를 조금 빠른 속도로 뛰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역시나 지나가는 사람구경, 간판구경, 산책하는 강아지 구경을 하다 보니 지루하지 않게 뛸 수 있었다. 그런데 지루하진 않았지만 오랜만에 뛰니까 힘들다. 30분 뛰는 것도 너무 힘들었다. 내가 왜 또 이 짓을 하나 싶어서 후회했다. 하지만 시간은 흘러가고 대회 당일, 긴장감과 함께 눈을 떴다.


출발 예정시간보다 한 시간을 일찍 도착했다.

그땐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제법 이름 있는 마라톤 대회였다. 그래서인지 내가 4년 전 기억하던 인파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모두 같은 목적으로 나오고 같은 옷을 입고 있어서 그런지 끈끈한 동질감을 느끼는 동시에 경쟁자로서 눈치도 봐야 했다. 사실 도착 전까지는 아무 생각 없었는데 지난 첫 대회는 그저 완주가 목표였다면 이번엔 조금이라도 시간을 단축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날씨는 첫 대회 때보다는 덜 더웠지만 5월의 햇빛도 따가웠다. 그래도 코스를 보니 숲이 우거진 공원을 끼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정도 몸을 풀다 보니 금세 출발시간이 다가왔다. 또 한 번 뛴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찼다. 하지만 이번에도 위기는 생각보다 빨리 왔다.



#그래도 이번엔 안 걸었다.

겨우 10분 정도 뛴 거 같은데 태양은 벌써 뜨거워지고 있었다. 목이 타들어가는 거 같은데 아직 급수대는 한참 멀었다. 그늘이 하나도 없이 뛰니 죽을 맛이었다. 선두그룹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뛰는 둥 걷는 둥 힘겹게 발을 떼고 있었다. 나도 그중에 한 사람인데 내 뒤로는 사람이 별로 없는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이번엔 쉬지 말고 느리더라도 계속 뛰어보기로 했다.


아니 근데 숲이 우거진 공원이라고 생각했던 코스는 알고 보니 언덕이 많은 작은 산이었다. 산은 아니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뛰어서 등산하는 기분이었다. 오르락내리락 거리는 길이 몇 번 반복하다 보니 부상을 당한 사람도 있었다. 아마 가파른 내리막길에서 속도 조절을 못하고 넘어진 듯했다. 그의 무릎에서 나는 빨간 액체를 보고 나는 발목에 힘을 더 꽉 주고 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번 대회에서 정말 놀라운 장면을 봤는데 유모차와 함께 뛰는 젊은 어머님을 봤다는 것이다. 초등학생 아이들과 뛰는 부모들은 많이 봤는데 유모차를 밀면서 뛰다니! 게다가 평탄하지도 않은 코스였는데 저게 가능해?라고 스스로 물으면서 뛰었다. 심지어 나보다 앞서 가고 있었다. 오르막길에서는 엄청 낑낑거리면서 오르고 있었는데 나는 뒤처진 주제에 왠지 밀어주고 싶었다.


아무튼 대단한 건 대단한 거고 저 모습을 보다 보니 나는 내 몸 하나만 잘 컨트롤하면 완주할 수 있다는 자신이 생겼다. (힘내세요 어머님!) 마음으로만 파이팅 하고 내 갈길을 가다 보니 어느새 1km 밖에 안 남았다. 진짜 꾸역 꾸역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달려온 것이다. 그 마지막 1km이 얼마나 길게 느껴졌는지 두 번 다시 러닝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다.


하지만 900m, 700m, 500m..... 피니시라인이 가까워 올수록 심장이 더 빨리 뛰는 거 같고 흥분감을 감출 수 없었다. 첫 대회 때는 몰랐는데 피니시라인을 통과했다는 알림음이 들리자 느껴지는 통쾌함은 너무 짜릿했다. 분명 10분 전만 해도 다시는 러닝 안 한다고 했는데 벌써 다음 경기가 기다려지는 기분이랄까. 그리고 받은 완주기념 메달은 비록 다들 똑같지만 자랑스러웠다. 디자인도 썩 마음에 들었다. 그렇지만 안 쉬고 뛴 거 치고는 지난번 성적보다 고작 2분 앞당겨졌다. 다음 대회를 또 나가야 할 명분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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